고향집
돌계단 올라서면 고향집 마당
그리운 오라버니 얼굴
유리구슬 도토리 깍데기
소꿉놀이하던 나뭇잎마다 얹혀 있다
담벼락에 집을 지은 새들은
가끔씩 새알들을 남겨두고 남쪽으로 떠났고
우리는 서로 그 알의 어미라고 우기며 놀았다
지금 깜깜한 길을 따라 고향집을 찾는다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길
이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집
안개 속인 듯
구름 속엔 듯 집이 하나 있다
풀벌레 새소리 잠자리 떼 국화향
연못 옆 빨간 앵두
회색빛 고운 기와지붕 고향집 대문이 열린다
만리향 그윽이 쏟아지고
그리운 추억들이 새잎을 총총 달고 있다
초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학교 다닐 때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같은 반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그 친구랑 의기투합해서 초등학교 다니던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때 학교 부근에 살던 옛집을 보고 왔다
이미 다 바뀌고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가끔씩 꿈에서 고향집 계단을 올라가서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꿈을 꾸거나 용케 작은 대문이 열려 있어 작은 대문으로 부엌을 들어가거나 방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더 또 어떤 날을 대문이 열리지 않아 밤새 대문 밖에서 서성이는 꿈을 꾸거나 친구가 사는 옆집으로 들어가서는 담을 넘어 들어가곤 했다
누구나 고향 집은 있고 그 집이 언제나 기억 속에 있느냐 아니면 그곳에 여전히 살고 있느냐 혹은 여전히 고향이 그대로 남아 있느냐의 차이를 갖는다 고향이 사라지고 없다고 고향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부모님도 고향도 다 사라지고 없다면 고향에 대한 기억들은 더 간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태생적으로나 의도적으로나 과거를 돌이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를 돌이키는 시간에 미래를 꿈꾸는 것이 좌우명이 되어 있다
신채호의 『독사신론』에서는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니, 아아, 역사가의 책임이 그 또한 무거운 것>이라고 했고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라 했으며 D. 맥컬러프는 <과거를 잊은 국가는 기억을 잃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하고 M. 후세인 헤이칼은 <과거가 없는 자는 미래도 없다>는 말들을 남겼다 하지만 이 말들의 요지는 결국 과거 자체에 집착하기보다는 과거가 남긴 교훈을 짚고 넘어가야 나쁜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의 꿈에서 고향은 그리움과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되풀이되어 왔다 그리고 마음이 힘든 날이나 어려운 상황 앞에 놓이면 고향집 돌계단과 대문이 꿈에 나타나곤 했다 고향집 문을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재일 먼저 보이는 쇠로 만든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그네가 보인다 모래를 부어 그네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배려였다 놀이기구가 마땅찮던 과거에는 그 그네는 늘 대문이 열려 있어서 동네 그네가 되었고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네에 매달려 그네를 거는 고리의 수명이 자주 닳아서 아버지께서는 말없이 그 고리들을 바꿔 달곤 하셨다
대문간 옆 대추나무 성류 나무도 가을이면 열매를 너무 많이 달아서 오가는 손길에 남는 것이 별로 없긴 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선 오른쪽으로는 산물이 내려오는 수로가 있었고 그 수로에는 늘 맑은 물이 흘렀다 그 물을 가지고 아이들이랑 놀이도 하고 여름에는 발을 담그기도 했다
꽤 오래전에 썼지만 이런저런 기억들이 불현듯 일고 과거의 기억들이 자꾸만 깊이 들어가면서 쓰게 된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