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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아내 Dec 19. 2024

완벽하지 않아도 돼, 농사용 집게 수거


밤호박 줄기를 말리기 위해 뿌리를 뽑았다면 그다음 할 일은 농사용 집게와 받침대의 수거이다.


> 뫼비우스의 띠, 농사갈무리(뿌리뽑기) <





밤호박은 공중재배로 키운다. 공중에 매달기 위해 그물 위로 밤호박 줄기를 유인할 때 사용하는 것이 농사용 집게이다. 결속기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우리 농장은 재사용이 가능한 집게를 사용하고 있다. 바닥에 유인재배로 키우는 것보다 매끈한 모양새의 밤호박이 되지만 줄기와 잎에 의해 스크래치가 덜 나도록 받침대를 받쳐 준다. 바로 이 녀석들을 수거해야 한다.





뿌리가 뽑힌 줄기는 말라가고 있었다. 줄기가 바짝 마르면 검은색의 집게가 눈에 쉽게 뜨인다. 성질 급한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이번에도 뿌리 뽑고 이틀 만에 집게와 받침대 수거하러 하우스로 출동했다. 살아있는 잎에 가려진 집게와 숨바꼭질을 한다. 매의 눈으로 하우스를 훑으며 수레 속 바구니에 집게를 던져 넣는다. 받침대는 호박 수확하면서 자동으로 바닥에 떨어지는 게 많아 뿌리를 뽑으며 한 곳에 모아 두었다. 그것들도 함께 수레에 담아 말라가는 호박 터널을 다니다 보면 한가득 싣게 된다.  


완벽은 나의 추구미였다

처음 하우스 정리를 도왔을 때는 일을 두 번 하기 싫어서 집게와 받침대의 완벽 수거를 위해 눈을 부릅뜨고 다녔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으로 훑는 시간이 더 걸렸다. 뿌리에서 시작된 시선은 터널 모양대로 움직이며 반대편 뿌리에서 끝났다. 지금은 완벽에 집착하지 않는다. 줄기 철거할 때 걸리적거릴까 봐 전부 수거했다 여겼지만, 매년 하다 보니 완벽한 수거란 없었다. 나중에 발견하는 집게나 받침대는 모아뒀다가 다시 수거하면 그만이다. 완벽주의를 추구미로 삼고 자신을 괴롭히며 살아왔지만, 귀농해서 농사를 지으며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 다듬어 가는, 인간미 넘치는 삶. 이제 그것이 나의 추구미다.


추구미는 추구미일 뿐, 결국 또다시 눈을 부릅뜨고 집게와 숨바꼭질을 하며 나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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