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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아내 Jan 03. 2025

지친 나를 치유해 주는구나, 비파꽃


2020년 4월 5일.

아이들과 함께 비닐하우스 뒤쪽에 비파나무 묘목 2개를 심었다. 나뭇가지처럼 얇아서 이 녀석들이 살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뿌리를 내리고 새 잎이 나왔다. 언제나 식물들의 생명력은 신기하다. 자라기는 했지만 쓰러질 듯 얇은 그 모습에 남편이 지지대를 만들어 주었다.


매년 비파나무의 생사가 궁금해 들여다보았다. 잎 모양이 비파와 닮아 비파나무라 불린다는 것을 증명하듯 잎만 무성했다. 사시사철 푸른 상록 계열의 나무라 관상용으로 정원에 많이 심는 나무라고는 들었지만 매년 잎만 보여주니 조금 실망스러웠다.


비파 열매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언제쯤 맛보게 해 줄거니~


2024년 12월 31일.

가을 밤호박 재배가 끝나 줄기들을 철거하며 하우스 정리를 하고 있었다. 하우스 안의 줄기를 밖으로 들어내면서 하우스 뒤쪽으로 오가고 있었다. 봄날씨 같은 겨울이라 땀이 흐르고 마스크 안으로 숨이 가득 찼다. 한숨 돌리려고 잠깐 쉬면서 비파나무에게 인사를 하며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뭔가가 있다. 땅콩처럼 생긴 꽃망울이 옹기종기 맺혀 있었다. 입사하고 싶던 회사의 합격통보 소식을 들은 것 마냥 기뻤다. 꽃망울이 맺혔으니 꽃이 피고 열매가 매달리겠다는 생각에 들떴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꽃도 피었다.





2024년의 마지막 날, 4년 만에 꽃을 보여준 비파나무.

비파꽃의 꽃말은 '현명, 온화, 치유, 은밀한 고백, 사랑의 기억'이다. 많은 의미 중에서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치유"이다. 비파나무 한 그루가 있으면 집안에 아픈 환자가 없다는 말이 있다. 열매는 약재뿐 아니라 식용으로도 이용되고, 나무껍질과 잎 등은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조상들은 비파 잎이 땀띠를 예방해 준다고 해 이불 재료로 사용했으며, 지금도 류머티즘과 신경통 약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꽃을 발견했을 당시에는 하우스 정리하느라 힘든 상태였다. 꽃이나 열매, 잎을 먹지 않아도 꽃이 핀 걸 보는 것만으로도 육체의 힘듦을 치유받은 기분이었다. 2024년 한 해 동안 힘든 일도 많았고,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다. 질병의 치유가 아니더라도 비파나무의 꽃 향기와 싱그러움이 힐링이 되어 치유되는 듯했다. 왠지 2025년에는 좋은 일만 가득할 것 같은 기분이다.


해 준 것도 없는데 이만큼 자라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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