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 빈 Sohnbin Nov 10. 2022

명품관 소 역사 2

기억의 순간:이야기로 적는 

94년도 가을부터 명품관 만들기에 들어갔다. 전편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자료 조사와 구상을 통해 전층의 구성과 zoning을 매일 반복해서 그리고 현재와 그다음 스텝을 고려한 대규모 작업이었다.

1차로 메이저 럭셔리 브랜드를 염두에 두고 기존 1층에의 의류 중심 브랜드는 여성 남성으로 나눠 2,3층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했고 기존 층에서는 패션의 경향과 용도에 맞춰 그룹을 지워 story telling이 되도록 구성했다. 당장 1층의 주요 브랜드가 2,3층으로 이동하는데 저항이 대단했고 2층에서는 당시 터줏대감이던 베르사체가 zoing 별 구성에 반대하며 철수 운운하며 요지부동이었다.

1층의 에트로는 불만스럽게 2층으로 이동하면서 앙금이 남아 나의 두 번째 명품관 PRADIA 개관 시에 합류하지 않았다. 시차는 있었지만 버버리의 경우 에이전트였던 유로통상은 (당시 몽블랑, 라프 렐리, 모레스키, 올랑, 베리 등 주요 브랜드의 종합 에이전트로 영향력이 지대했다.) 2층으로 이전할 때 여다 백화점의 1층에서 브랜드 파워를 발휘하고 있을 때라 강력 반대했고 전방위적 압박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신용극 회장실에서 3시간여 담판을 지었다.-수년 전 작고한 그의 모친은 재불 이성자 화백이고 형은 모 일간지 재불 특파원 출신으로 예술적 조예도 있고 문화적 감각이 있는 분이나 경영의 고집과 다소 아집이 센 경영자였다.-나는 한 치의 양보 없이 내가 준비한 스토아 콘셉트와 운영방안을 토대로 논리적으로 주장했고 결국  동의를 받아냈다. "나도 당신 같이 신념과 실행력 있는 임원이 있다면 큰 힘이 될 텐데 우리 임원들은 뭘 하는 건지?"라고 해서 결국 외부 영입 인사인 그 회사 상무의 입지를 곤란하게 만든 꼴이 되었다.

담판 후 신 회장의 안내로 그의 단골 군산 홍어집에서 식사하고 당시 서울고 단골 멤버십 카페에 들렀다 헤어졌다. 그곳에서 필라 윤윤수 회장, 이장호 감독을 만나기도 했다. 군산 집에서 댓 병 정종을 한 손으로 잡아 따라주며 다소 열패감에 젖어 호기롭고자 한 모습이 기억난다. 그 이후로 그의 예상대로 버버리는 점차 여타 백화점에서도 1층에서 입지가 축소되었다.

뤼뷔똥 그룹의 이브 생로랑, 크리스천 디올도 2층으로 이동시켰다. 이때는 성주인터내셔널의 김성주 대표 시절인데 나의 2층 이동 제안을 거부해서 그의 사무실에서 담판을 했다. 담당 임원 배석하에 진행한 미팅에서 본인 의견이 관철되기 어렵자 노트를 덮고 "말씀 다 하셨죠? 갤러리아 사장님을 만나서 직접 얘기할게요."라고 뱉은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버렸다. 내 자세는 늘 나의 결정이 회자의 결정이라는 기조에다가 내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 한 직장에 미련 없다는 것이었으니 그런 말은 나를 지극할 뿐이었고 애꿎게 배석한 성주의 임원은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임원에게 앞으로 김성주는 인간 취급 안 할 테니 그리 아세요."라고 뱉고 나왔다. 그 이후 청담동에서 보그너 론칭 쇼에 초대받아 행사장에 있을 때 김성주가 들어와 인사를 하기에 흘깃 보고 나와버렸다. 사람대접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일이 있은 뒤 구찌 담당 이사가 김성주가 전무에서 대표이사가 되어 인사차 오겠다고 해서 만날 일 없다고 했더니 영국 모 대학 박사 출신의 그 임원의 간곡한 요청에 특별히 보겠다는 약속은 못한다. 내가 사무실에 있을 때 오면 만나는 주겠다고 통보했다. 현대백화점은  전무를 만나 인사드리고 오는 길이라며 사무실로 찾아와서 팀장 둘을 배석시키고 성주 임원 배석하에 그날의 태도에 대해 명쾌히 질타했다. 그는 박근혜 후보 대선 선거 본부장을 맡아 빨간 바지로 종횡무진하던 인물이고 그 후 적십자사 총재까지 했는데 그 인물됨은 내겐 전술한 정도다. 이후 루뷔똥 그룹이 투자한 유통회사 블루벨 코리아가 인수해서 외국인 지사장과는 2층 매장의 벤더로 대하게 되었다.

어느 것 하나도 배수의 진을 치고 설혹 철수할 수 있다고 가정한 대안 수립까지 나 자신의 신념과 향후 럭셔리 시장의 미래 예측을 단단히 한 다음의 전투였다.

베르사체는 양품점에서 출발한 오 회장의 지현 통상이 운영 중이었는데 매출의 위세로 부띡 현장, 명품관에 나와서 직원과 책임자를 만나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오늘날도 비슷한 행태지만 당시는 소수의 강력한 브랜드 에이전트 주도였다. 임원이 와서 건드리면 철수하겠다고 해서 나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철수하시라고 했더니 그가 나를 만나러 오게 되었고 첫마디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얼굴 좀 보러 왔다"는 거였다.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이 단호하게 정리된 메시지에 동의하고 돌아갔다. 그와 함께 온 부군은 조직세계의 보스라는데 왜 왔는지? 궁금하지 않았고 나의 일에 충실할 뿐이었다.

이제 조금씩 가지런해지고 매장의 merchandising이 정립되는 과정이었다.

4층의 경우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갤러리가 중심 구성인데 내 계획은 조만간 1층의 귀금속을 브랜드로 바꿔나가기 위해 임대 매장을 이동시키기로 하고 기존 전시장과 레스토랑은 철수시키기로 했다. 두 곳은 모두 저렴한 임대료로 문화적 서비스를 담당한다는 명분인데 그럼에도 레스토랑은 운영이 어려웠고, 갤러리는 갤러리 사장의 전용 오피스를 겸해서 매우 유용하게 쓰고 있던 공간이었다. 그의 태도는 교양이나 품위와는 거리가 있어서 주차관리요원과도 자주 언쟁을 벌이는 안하무인이라 부딪히고 설득하며 아웃시켰다.

그 이전에 타피에스 전시회를 우리와 공동 주관 개최해서 즐겁게 함께 한 일이 그나마 편안한 기억이다.

부족한 브랜드 상품 구성은 직접 수입하기로 마음먹고 그간 조사한 브랜드들을 컨택하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명품관의 소역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