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만 같아라는 옛 말
명절.
특별한 날이었다.
가는 길이 그 어떤 날보다 설레는 그런 날이었다.
그 어떤 소풍, 여행보다 나에게는 특별한 그런 날.
명절이었다.
어른들은 각자의 할 일들에 바빴을 테지만, (특히 엄마는 더했겠지)
아이였던 나의 명절은 그저 낭만적인 여행의 절정이었다.
늘 꺼지지 않던 아궁이의 불쏘시개는 재밌음의 극치였고
(할머니는 우리가 주방에 들어오는 것을 무지하게 싫어하셨다.)
할머니댁에만 있던 시고르자브종과 놀이.
어쩌다 운이 좋아 강아지라도 있는 명절이면
거의 강아지와 한 몸이었고,
낮에는 바닥에 줄 긋고 했던 수많은 놀이들
(이름이 뭐였는지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밤이 되면 사촌형이 사 온 불꽃놀이,
작은 사랑채에서 사촌들과 함께하는 왕거지 묵찌빠게임,
푸세식 화장실이 그대로 있던 시골집이었으니, 그것과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들.
(홍콩할매귀신이라고 들어는 봤을까몰라)
새벽에 일어나 제사 지내는 엄숙한 시간들.
술도 한잔씩 주는 음복. 음복이 끝나고 먹는 콩나물과 시금치.
(아직도 그 콩나물만큼 맛있는 콩나물무침을 먹어본 적이 없다.)
참, 낭만이었다.
그 무엇보다 낭만적인 여행 그 모든 것이었다.
2024년.
추석이 되었다.
다들 별로 명절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다.
그저 휴일이 좀 긴 것뿐.
조상덕을 많이 본 집은 오히려 제사는커녕 해외로 여행 간다며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이제는 제사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제사도 안지낸 지 오래.
또 요즘은 시골로 가지도 않는다.
현세대 대부분의 할머니들도 아파트에 사니까 말이다.
명절이니까, 다 함께 모여서 맛있는 아침을 먹고
절하며 덕담을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여느 때의 주말 가족 모임과 다를 바가 없는
명절의 일상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할 것이 없다.
나야 뭐 이제 나이 들어가는 중에 이렇다 할 말도 없지만,
명절에 와서 할일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조카들을 보니(집에 가서도 스마트폰만 할 거면서)
그냥 알 수 없는 이상한 마음이 생긴다.
조카들이 성인이 되어 추억할 명절은
어떤 형태일 것인가.
불현듯,
지금 세대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끄적여보았다.
한가위만 같아라는 옛 말은,
이제 정말로 옛 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