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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Apr 08. 2023

아이의 추억도 선별해야 한다


지방에 사는 친정 부모님이 집에 오시기로 한 날이다. 

들이닥칠 때가 돼간다 싶어 설거지하는 손이 더 분주해지던 중에 

아니나 다를까 현관문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띠띠띠띠----

아무리 자식집이라지만 집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몇 개월 만에 찾아오는 딸네 집을 아무 인기척도 없이

손수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올 때면 정말 들이닥친다..... 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먼저 현관문을 활짝 열어주며 오랜만에 만나는 부모님을 반갑게 환영하는 시추에이션은 없다. 언제나, 확실하게 잠가 두었다 생각했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현관으로 달려 나가는 상황으로 대신한다. 

그렇게 달려 나간 현관에서, 이번에는 당황스러움까지 더해진다.  

부모님 옆으로 묵직해 보이는 라면 박스 두 개.  

평소 딸을 위해서 바리바리 싸들고 오시는 분들은 아니기에 애초에 기대는 없었고, 

딱 봐도 오래된 듯 낡은 라면 박스 두 개는 그냥, 이유 없이 반갑지 않다. 


무거운 박스를 용을 써가며 집안으로 들여놓는 아빠 얼굴에는 뭔가 큰 일을 하느라 고생한 아버지를 알아달라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고, 

이어서 하는 말씀이 


“니 꺼, 이제 니가 가져가라.” 


이게 무슨 뜻일까! 

내 물건이니 여기다 버린다는 건지, 내 물건 소중히 가져왔으니 잘 챙기라는 건지... 

그나저나 내 꺼 뭐? 부모님 집에 내 물건이 남아있었던가?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고, 

박스를 열고 싶지 않았다. 

궁금하기보다는 겁이 났다. 

박스를 쳐다만 보고 서 있는 나를 향해 친절하게도 엄마가 한마디 보탠다. 


“초등학교 때부터 쓴 일기장 하고, 고등학교 때 문집까지, 니가 아끼던 거 다 있다. 

 이제 니한테 준다고 너거 아빠가 챙겨 왔다. “ 


...................... 


당분간. 열어보지 않기로 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는 짐들에 놀라게 된다. 

이미 때를 훌쩍 넘긴 것부터 최신상까지~ 다양한 장난감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하나같이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각종 교구들은 언제나 제자리를 잡지 못해 방황 중이다. 

아이가 기관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수업시간에 했던 활동지부터 그리기와 만들기 작품들, 기록물 등 다양한 학습 결과물들까지 보태지고 있다.  

게다가 하교 길에 주워온 돌멩이, 비둘기 깃털, 부러진 나뭇가지 

친구가 버린 스티커 반쪽, 학교에서 하고 남은 활동지 일부, 

장난감만큼 소중한 장난감 박스, 

언젠가 필요할 거 같다며 기를 쓰고 보관하는 두루마리 휴지심, 택배박스, 주스병.... 등등 

이런 생뚱맞은 물건들까지! 그야말로 끝이 없다. 


그런데 나는, 특히 아이 물건들 앞에서! 

버릴 것과 보관할 것을 결정하는 기준을 정하기가 너무 어려워 힘이 든다. 

누군가는,  

연령을 넘긴 장난감은 가차 없이 처분하라고도 하고 

아이의 활동지나 작품들은 사진으로 남기라고도 하고, 

아이의 관심을 떠난 책이나 물건들은 중고매매로 재미를 보라고도 하는데~ 

다양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물건을 정리하는 일에 나는 언제나 애를 먹는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나중에, 한참 나중에

자신의 물건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낡은 라면 박스는 며---------칠이 지난 뒤에야 열어보았다. 

모두가 최소 20년은 훌쩍 넘은 내 물건들이었다. 

대학 때 쓰던 삐삐도 있고, 

고등학생 때 열렬히 좋아했던 가수의 콘서트 티켓에 

중학생 때 유난히 좋아하며 불렀던 노래 악보도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생이던 내 옛날 일기장도 있었다. 

‘5학년 1반’

순간. 가슴이 찌릿하게 아파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결국. 

억지로 구겨, 어느 구석자리에 내팽개쳐 두었던, 

다시는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오래된 기억이 내 앞에 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옆에는 큰 시장이 있었다. 

원단, 그릇, 수입품, 장난감, 의류, 이불, 귀금속, 가전... 등 없는 게 없던 그 시장 옆으로는 

각종 도매상가들과 크고 작은 봉제공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고만고만하게 먹고사는 동네에서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집이나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집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돈 좀 만지는 집으로 통했다. 


돈 좀 아는 선생님은 돈 있는 집 자식들을 특히 좋아했다. 

그리고 대놓고 차별을 했다. 


봉제공장집 딸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운동장을 향해 나 있는 널찍한 교실 창문에 커튼을 바꿔 달았고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마다 담임 책상 위에 새로운 꽃들을 꽂아 놓았다. 

어느 날은 새 교탁보를 들고 왔고, 

며칠 후에는 배구공을, 또 며칠 후에는 밀대 걸레를, 교실 장식용 화분을, 학급용 도서를.... 

끊임없이 무언가를 들고 왔다. 

봉제공장집 딸 엄마는 자주 학교를 드나들었고 

그럴 때마다 담임의 책상 옆에는 곱게 포장된 선물 꾸러미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런 시절 내 일기장에는 온통 억울함이 가득하다. 

분명 봉제공장집 딸이 잘못했는데 담임은 나를 불러 혼을 낸다거나, 

분명 내가 대표로 발표하기로 돼 있었는데도 봉제공장집 딸이 하는 걸로 바뀌었다. 

분명 내가 해 놓은 수업준비였는데 그 공은 모두 봉제공장집 딸에게로 돌아갔다. 


일기장에는 늘, 억울하다는 하소연이다. 

그리고 그 하소연은 해결될 수 없음을 또 하소연한다. 


아무런 힘이 없던 열두 살 그 일기장이 다시 돌아왔다. 

부모님이 애를 쓰며 가지고 왔다.

그때는 먹고살기가 바빠서 딸의 일기장 한번 훔쳐볼 여유조차 없어 몰랐다면, 

지금이라도, 딸의 추억이 궁금해서라도! 오래된 일기장을 한번 읽어 봐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그렇게 당당하게 나에게 가져다주지는 못했을 텐데.... 

한 번만 딸의 추억을 선별해 주었다면 

마흔이 넘은 딸이 이제 와서 또다시 그 일로 며칠씩 아프지 않았을 텐데.... 


아이의 생각과 아이가 처한 상황,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아이 물건들을 엄마인 나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아이가 나중에, 한참 나중에 자신의 물건들을 다시 만났을 때, 

그때.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그때는 그런 일도 흔했지.....라고 하기에, 당사자는 너무 고되고 아프다. 

지금은 그런 일 있을 수도 없다는 거.... 나도 안다. 

하지만, 한번 패인 상처는 마흔이 넘어도 지워지질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이 상처를 아는 나는 기를 쓰고 아이의 추억도 선별해야 한다. 

힘들고 모호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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