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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Apr 25. 2023

"언니~ 개근거지... 알아요?

“언니 개근거지라고 들어봤어요?” 


며칠 전 모임 자리에서 만난 아는 동생이 물어본다. 

개근거지? 


“아니~ 그게 뭔데?”....... 하는 순간, 띵! 하는 느낌이 있다. 


“내가 아는 그 ‘개근’에 ‘거지’를 붙인 말인 거지?” 


“맞아요.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해외여행 한번 안 가고 학교 꼬박꼬박 나오면 

 그게 거지라는 거예요. 이게 말이 돼요? "


설명을 하면서 점점 흥분을 하던 동생은 어느새 걱정이 이어진다. 


“우리 애들 어떡하지? 

 엄마가 일하느라 평일에는 국내 여행 가기도 쉽지 않은데... ” 


라테는~처럼 들리겠지만, 

그래도 우리 때는 ‘개근상’을 받는다는 건 최고의 자랑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을 만큼 

건강하고 성실한 어린이만 받을 수 있는 상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건강함도 성실함도 의미가 다 사라져 버린 걸까? 

해외여행 못 가는 못 사는 아이를 이르는 말이 되어버렸다고 하니 말이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동생도 나도 기가 막혔다. 


문득 아이 유치원 때 일이 생각이 났다. 

“엄마~  OO은 괌에 가고, @@는 베트남 간다는데.... 우리는 어디가?” 


그때만 해도 코로나시국 전인 데다 

유치원은 초등학교처럼 한 달짜리 긴 방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출석 부담도 덜한 터라 

엄마아빠 휴가기간에 해외로 가족여행을 간다고 결석한 친구들 소식이 종종 들려왔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유치원 다니면서 한 번쯤은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또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은. 

“엄마~~ 우리 반 친구들 전부다 제주도 다녀왔는데, 우리는 왜 안 가?” 


해외를 대신해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던 때라, 

어쩌다 보니 9명밖에 되지 않던 아이반 친구들 모두가 한 번씩 제주도를 다녀온 듯했고, 

친구들의 제주도 이야기에 낄 자리가 없었던 아이는 엄마아빠를 보채기 시작했다. 


친구가 하는 거라면 나도 하고 싶고,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에 나도 함께 끼고 싶은 마음이 유치원생일 때도 있었는데, 

초등학생 때는 오죽할까.... 싶어졌다. 


아는 동생과 나는, 

결국 함께 애들 데리고 해외여행을 다녀오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부모의 자존감, 아이의 자존감이 단단하다면, 

누가 뭐라든~ 어떤 상황이 닥치든~ 흔들리지 않는다! 는 진리를 

수많은 육아서에서 읽으며 공부했지만,  

이런 상황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개근거지라는 단어를 알고 나서부터 

엄마 아빠는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곧바로 조바심이 생기고 고민에 빠져든다. 


그런데 오늘 어느 초등학교 교사의 글 하나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개근거지’라는 단어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현직 교사 역시 기사를 통해 알게 된 그 단어가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주변 교사들에게 물어보아도 생소한 단어라고 한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비록 그 선생님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국한된 결론일지라도 

우리 아이들이 이런 나쁜 말을 쓰지 않는다는 게 너무 다행이다 싶어 크게 안도한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개근거지’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의 모임 자리로 흘러들어왔듯이 

우리가 흥분해서 나눈 대화가 혹여나 다른 이의 귀로 입으로 퍼져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이 글이 오히려 그 단어를 알리는데 일조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쩌면, 그 시작이 어른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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