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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Jun 08. 2023

지금 나는.


알림이 왔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 


.

.

.


안 그래도, 쓰지 않고 있음이 내내 신경이 쓰이던 중이었는데, 제대로 걸린 느낌이다. 

내가 쓰지 않고 있음을 들켰다. 


작정하고 게으름을 피운 건 아니었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한 편의 글로 완성하지 못했다. 

아이 학원에 대한 고민을 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부족했고, 몇 건의 모임이 있었던 것도 마음이 바쁜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요즘 들어 부쩍 체력이 딸리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일 텐데. 그것보다 의욕이 없었다.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이나, 닥친 상황들을 한 문장씩 끼적이긴 했어도,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을 해보자 하는 마음의 닦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미루고, 멈추었다. 

그러다 딱 걸린 거다. 


난감하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어버린 생각과. 

이 상황을 어찌하면 좋을까? 


.

.

.


고민 끝에, 나를 한번 돌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 

어떤 모습일까? 



마흔아홉. 

마흔과 아홉이라는 숫자가 만나다니!! 

이것부터가 문제인 걸까? 

아니면, 이렇게 생각하는 생각이 잘못인 걸까? 



결혼 10년이 되었다아아아아아아................. . 



아홉 살 아들이 있다. 

하루 중 대부분을 아홉 살 아들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리워하고,  또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학교로, 학원으로, 아들이 움직이는 곳마다 따라다닌다. 

가끔 내가 운짱인지 엄마인지 헷갈릴 때가 있지만 

종종 나보다 아들이 더 열심히 바쁘게 살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해진다. 


아! 며칠 전 

피아노 수업을 끝내고 나온 아홉 살 아들이,

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던 중에 문득 말을 했다. 


   “엄마 사랑해” 


평소 표현에 인색한 아이가 아닌데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현듯 전해지는 아이의 마음은 

엄마를 심쿵하게 했다. 

우리 둘 뿐인 조용한 계단에서는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자주 주고받는 ‘사랑해’지만 더 좋았고, 

기억에 남는 그 순간. 

나는 행복을 알았다. 


어느 순간 백수가 되었다. 

늘 백수를 꿈꾸었지만, 백수가 되기를 스스로 거부해 왔는데, 그래도 백수가 되었다. 

그러던 중 같이 일을 하고 싶다는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상대는 조심스레 자신을 소개하며, 여태 해 보지 않은 낯선 일을 제안했다. 

함께 호흡을 맞출 사람을 찾던 중에, 동료를 통해 우연히 내 프로필을 알게 되었고, 연락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일을 쉬고 있는 중이었고, 낯선 사람과 낯선 일이라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다행히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며칠 동안 잠을 설칠 만큼 고민을 한 끝에 해보겠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첫 미팅을 하러 가기 전날 내가 설레고 있다는 걸 알았다. 

미루어 두었던 집안일까지 의욕이 돋았다. 

예상치 못한 감정이었다. 

드디어 첫 미팅 날. 

1시간 남짓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브리핑을 듣고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겠다~ 할 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이 붙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시 1시간 후, 갑자기 프로젝트가 취소됐다는 연락. 

그대로 백수다. 다시 만사가 귀찮다. 


항상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아이방 정리부터, 처치하지 못한 물건들, 쌓일 대로 쌓인 각종 파일에 냉장고며 베란다, 신발장까지... 

<정리>라는 단어에 치어 산다. 

하지만 고작 아이 밥 주고, 내 몸 씻고, 아이 따라다니고, 아이 먹거리 준비하고, 설거지에 대충 청소기 좀 돌리고 나면 하루가 끝이 난다. 이깟 일에 나는 녹초가 된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일 년이 


하루 종일 4~5잔 정도 커피를 마신다. 

그래야 몸도 정신도 마음도 깨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밤마다 맥주를 마신다. 

언제부턴가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늘, 다른 곳에 살기를 꿈꿔본다. 

아이 교육을 이유로, 삶의 질을 들먹여가며, 집값의 가치를 논하며... 이사를 생각한다. 

하지만 터전에 대한 줏대 있는 기준과 결단이 없어서, 늘 결론은 내리지 못한다. 

그래도 꿈을 꾼다.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그 꿈으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버리지 못해서. 



어쨌든. 지금은 늙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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