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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Jul 18. 2023

협박과 약발

4박 5일 태국 치앙마이! 

드디어 애타게 기다리던 여행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한 달을 어떻게 기다리냐고... 처음, 우리 여행 가자~는 이야기를 전했을 때 기다림을 지루해 하고 힘들어 하던 아이는 다행히 별 탈 없이 잘 견디어주었다. 

하루하루 날짜를 세어가며 곧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에 설렘이 한가득 들어있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어찌나 신기하고 이쁘던지. 여행이라는 게 9살 아이에게도 이렇게나 즐겁고 신나는 일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여행 3일 전, 아침에 일어난 아이의 목이 많이 불편해 보였다. 

아침 내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자꾸 기침을 해대는 것이었다. 혹시 자고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그런가 해서 평소보다 물을 많이 먹이고 학교도 보내고 학원도 보냈는데, 오후에 학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 표정이 심상치가 않은 듯했다. 


학원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컨디션이 떨어지고 있는 모양인데, 

몸이 아프냐는 질문에 대답이 없다. 

답답한 마음에 자꾸자꾸 물어보니 ‘조금 힘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에고.....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진 듯했다. 

여행 전에, 가족 중 누구라도 아프거나 다치는 일이 절대 없어야 하는데, 아이한테 감기가 찾아온 것 같았다. 

열감 때문인지 발그스름한 얼굴이며, 까불까불 에너지를 쏟아내야 할 아이가 한껏 얌전해진 걸 보니 병원에서 진단을 받기 전이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하루 이틀 두고 볼 상황은 아니니 아이를 데리고 곧장 병원으로 갔다. 

진료 차례를 기다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비행기를 타기 전에 아이가 많이 아픈 상황이 발생한다면 여행 계획을 어떻게 변경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게 되었다. 우선, 여행의 출발 여부를 결정해야 할 아이 상태에 대한 기준을 정해야 했고, 상황에 따라 예약해 둔 비행기티켓과 호텔 등은 어떻게 정리를 하는 게 좋은 방법인지 따져보게 되었다. 

아이도 불안한지, 내 팔을 붙잡고 앉아 “엄마 나 괜찮겠지?” 라며 걱정을 드러낸다. 


갑자기 뜨거워진 날씨 때문에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내내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생활을 하게 된 것도,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것도, 요사이 감기가 유행이라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혹시나 그런 저런 이유로 아이가 감기를 얻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아이에게 당부를 했었다. 


손 자주 씻고, 피곤하지 않게 일찍 자고, 밥도 잘 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감기에 안 걸린다고. 

만약 아프면 여행은 못 간다고. 


엄마의 말이 생각이 났는지 아이는 내내 풀이 죽어있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걱정을 안고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증상이 심하지 않다고 했다. 

2~3일 정도 약 먹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병원은 더 안 와도 될 거 같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서야 

아이와 나는 씨___익 함께 웃었다. 


아이는 하루치 약만 먹고도 쌩쌩해졌고, 

나의 잔소리는 다시 시작되었다. 


손은 항상 비누로 깨끗이 씻어야 해~ 

오늘 밤은 제발 일찍 자자~! 

안 그럼 너 진짜 여행 못 가!! 

여행이 하루 남은 아침, 

아이에게 약을 먹이고 학교를 보내고 돌아와 아이 이부자리를 정리하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뭐 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아프면 안 돼!라는 목적만으로 

아이에게 협박을 해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감기 걸리지 않게 엄마가 도와줄게. 같이 노력하자... 가 아니라, 

너 감기 걸리면 여행은 못 가!라고 했으니, 

참. 못된 엄마다. 

그 협박이 제대로 약발 받을 거라 기대했던 내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고 응원을 해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다시 못난 엄마부터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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