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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Jan 25. 2023

지젝의 이데올로기 이론과 헤겔의 의식 이론 #4

두 개의 사건을 통해 본 이데올로기적 환상

두 개의 사건을 통해 본 이데올로기적 환상

 

<지젝의 이데올로기 이론과 헤겔의 의식 이론 #3>에서 소개한 라캉의 정신분석이론을 배경으로 지젝의 이데올로기적 환상(fantasy)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젝은 이 이론을 구현할 수 있는 두 개의 사건을 제시한다. 타이타닉호 침몰과 파시즘(fascism)이 그것이다. <지젝의 이데올로기 이론과 헤겔의 의식 이론 #2>에서 지젝의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작동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인 사건에 대한 오인(misrecognition)으로서의 환상을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을 통해 풀이하고자 한다. 


(1. 타이타닉호 잔해)


지젝은 타이타닉호 침몰을 분석했다. 지젝의 관점에서 모든 사건에 대한 인식은 사건의 반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는 첫 번째 사건은 간과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간과되는 것은 사람들이 기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식의 구조상 불가피하게 간과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지젝은 이것을 오인이라고 부른다. 타이타닉호 침몰은 대사건이다. 타이타닉호는 지젝의 표현대로 "떠다니는 궁전이자 기술 진보"의 증거이며 상류층이 집결한 공간으로 대중적 장소라기보다 대중들이 욕망하는 이상적 장소이다. 그러한 여객선의 침몰은 유럽 사회에 지대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승선한 사람들의 죽음, 기계 문명을 신뢰한 것에 대한 경종, 유럽 사회에 닥칠 수 있는 재난에 대한 예고. 사실 이러한 해석은 타이탄호 침몰에 대한 은유적 해석으로 이미 알려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젝의 분석은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타이타닉호 침몰을 예견한 사건, 즉 간과된 첫 번째 사건을 찾아낸 것이다. 그 사건은 무엇인가?  모간 로버트슨의 소설 『무상: 타이탄호의 난파』(Futility: Wreck of the Titan)이다.  


(2. Morgan Robertson)


모간의 소설에 등장하는 호화 유람선의 이름은 타이탄(Titan)이다. 승객은 주로 재력가이며, 4월 어느 추운 밤 빙하에 좌초되었다. 지젝은 항목별로 타이타닉호와 타이탄호를 비교하고 있다. 


                          타이타닉                타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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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량                    66000톤                 70000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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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888.5피트               800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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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24~25노트               24~25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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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인원수          3000명                   3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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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시기 및 원인 1912년 4월 추운 밤 빙하에 좌초

                                           4월 어느 추운 밤 빙하에 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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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침몰 사건에서 지젝이 말하는 이데올로기적 환상 또는 오인은 사람들이 첫 번째 사건인 타이탄호 침몰을 두 번째 사건인 타이타닉호 침몰과 연결시키지 못한 것이다. 정신분석가가 정신병증상의 원인을 분석하듯 지젝은 타이타닉호 침몰이라는 사회적 증상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타이타닉호 침몰과 연결하지 못한 첫 번째 사건이 소설 속 타이탄호 침몰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신분석가가 정신병증상의 원인을 분석할 때, 증상의 지층을 파내려 가면서 층위별로 있는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아니다. 증상의 원인이 한 번 규명되면, 물론 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되었다는 조건하에서, 원인 규명을 위한 더 이상의 분석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 지젝은 이것을 증상이 분석에 저항한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분석에 저항하는 지점이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재(the real)이다. 사회적 증상에 대한 지젝의 분석도 마찬가지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의 조짐, 다시 말해 간과된 첫 번째 사건으로 소설 속 타이탄호 침몰 사건을 밝혀낸 시점이 분석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그러므로 이 지점이 실재가 된다. 실재는 향유(enjoyment: juissance)로 구현된다. 


정신병증상에서 향유란 치료되지 않는 증상을 말한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존 내쉬(John Nash) 앞에 나타나는 세 사람의 환영처럼, 객관적으로 무의미한 관성적인 존재일 뿐이지만 환자에게는 유의미한 것이 향유이다. 지젝이 분석하는 사회적 증상으로서의 타이타닉 호 침몰 사건에도 향유가 있다. 무엇이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에서 항유인가? 지젝은 수중 촬영으로 형체가 드러난 침몰된 타이타닉호의 잔해라고 말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 잔해는 향유의 물질적 구현(embodiment)이다. 


정신병증상에서 향유란 치료되지 않는 증상을 말한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존 내쉬(John Nash) 앞에 나타나는 세 사람의 환영처럼, 객관적으로 무의미한 관성적인 존재일 뿐이지만 환자에게는 유의미한 것이 향유이다. 지젝이 분석하는 사회적 증상으로서의 타이타닉 호 침몰 사건에도 향유가 있다. 무엇이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에서 항유인가? 지젝은 수중 촬영으로 형체가 드러난 침몰된 타이타닉호의 잔해라고 말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 잔해는 향유의 물질적 구현(embodiment)이다. 


사회적 증상으로서의 향유 역시 그 자체는 관성적이고 무의미하지만 참사에서 희생된 승객들의 후손에게는 공포와 혐오의 감정을 후손이 아닌 대중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1985년 잔해의 이미지가 세간에 알려진 후, 언론들은 잔해에 묻혀 있을 유물들과 관련된 기사를 보도했고 이후 선박업체가 잔해를 인양하려는 의사도 있었다. 그러나 유족들의 반대로 잔해는 인양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잔해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는데 그 이유는 잔해에 그것을 갉아먹는 박테리아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타이타닉호 잔해를 둘러싼 상황이 함의하는 것은 잔해가 자연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사회는 그 잔해와 함께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타이타닉호 잔해는 순간순간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 바닷속 어떤 위치에 있는 사물일 뿐이다. 즉 잔해 자체는 무의미하다.   


이와 같은 향유의 속성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장에서도 발견된다. 그것을 정치 이념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향유는 무의미하지만 관성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인 것, 그러므로 논리를 넘어 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독재체제의 속성이 그러하다. 지젝이 이데올로기의 환상과 관련하여 주목하는 파시즘(fascism)의 한 단면을 살펴보자.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파시스트(fascist)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2차 세계대전 전후 이탈리아를 통치했다. 무솔리니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파시스트들은 이탈리아를 통치하겠다는 주장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그들의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무솔리니의 답변이다. “우리의 프로그램은 단순하다. 우리가 이탈리아를 통치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장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원한다”는 표현이다. 한 국가를 통치하고자 하는 이유가 원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논리를 넘어서 있다. 그것은 무조건 통치하겠다는 것이다. 즉 힘과 그것의 권위로 통치하겠다는 것이다. 힘에 의한 통치는 명령과 복종으로 이루어진다. 지젝은 이것이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힘이라고 말한다. 즉 명령과 복종이 파시즘을 작동시키는 작인(agency)이라는 것이다. 복종에는 희생이 뒤따른다. 희생에 대한 지젝의 입장은 이렇다. 파시즘의 핵심은 희생정신이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파시즘이지만 그것의 출발점에서 일말의 긍정적 정신이 있었다면 그것은 희생정신이다. 이탈리아 파시스트는 희생정신으로 “자유주의적 퇴폐적 질병을 치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시스트의 정치에서 희생정신의 본연은 온데간데없고 그것은 단지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여기에서 희생정신은 “의미-속-향유”가 된다. 파시즘에서 실제로 이행되는 희생정신은 본연의 의미와 무관하다. 그것은 명령에 대한 복종이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파시즘에서 희생정신은 남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파시즘에서 희생정신의 본질은 비어 있다. 그러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명령에 대한 복종이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도록 포장할 희생정신은 반드시 있어야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파시즘에서 희생정신은 “의미-속-향유”가 된다. 당시의 이탈리아 국민들이 자신들의 희생정신이 파시즘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남용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지젝의 관점에서 그 사람들의 환상이 된다.           

본 글에서 지젝이 말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의 두 가지 경우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거의 매일 세상 곳곳에서 발생한 참사 소식을 접한다. 이러한 참사들은 대개 조짐이 있다. 지젝의 주장대로 최초의 사건은 불가피하게 인식되지 못한다면 훗날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조짐은 간과될 수밖에 없다. 참사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지젝은 라캉의 견해를 빌려 이렇게 말한다. 모든 현상은 증상이라고. 사람들이 “~에 대한 조짐”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조짐이 인식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조짐 역시 인식된 현상이자 사건인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헤겔의 의식 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의 관점에서 지젝의 이데올로기 이론이 부분적으로 헤겔의 의식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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