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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Dec 18. 2022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6

나 그리고 나와 다른 타자

나 그리고 나와 다른 타자


한 개인의 예술적 이념과 한 국가의 정치적 이념이 다를 경우 예술가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만약 정권의 정치적 이념이 예술가에게 선택 사항이 아니라 칙령일 때 예술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예술가의 미학-관 때문에 정권에 의해 그/그녀가 체포되고, 이어서 친지, 지인, 심지어 작품 발표장을 찾은 관객 또는 청중까지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게 되는 상황이라면 예술가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쇼스타코비치는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공연 후 열흘 사이에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로부터 두 번의 혹평을 받는다. 핵심은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즉 청중들에게 어렵고 낯선 음악일 뿐만 아니라 퇴폐적이고 그러므로 부르주아적이라는 것이다. 비밀리에 숙청이 이루어졌던 당시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정권이 예술가를 가격한 두 번의 혹평은 쇼스타코비치의 표현대로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넘는” 사건이다.       


비밀경찰들은 혐의 리스트에 오른 예술가를 밤에 연행해간다. 같은 지역에 연행될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있어도 반드시 한 번에 한 명씩만 연행해 간다. 이것이 주민들 사이에 극도의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연행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만 알게 된다. 더 무서운 것은 주변 사람들이 한 사람 사라져도 그 사람의 행방을 묻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가족들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즉 사람들은 사태를 눈치채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야만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이 체포된 당사자와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권의 의심을 피할 수 있을 테니. 

   

쇼스타코비치가 이 사건에 직면했을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은 그의 가족들의 앞날이었다. 어머니, 아내, 딸, 곧 태어날 뱃속 아기. 그는 살아남아야 했고,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줄리안 반스(Julian Barnes)는  『시대의 소음』(The Noise of Time)에서 쇼스타코비치가 연행될 채비를 하고 열흘 동안 자신이 사는 아파트 5층 승강기 앞에서 비밀경찰을 기다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당시 자다가 잠옷 차림으로 경찰에 연행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쇼스타코비치 앞에 비밀경찰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그는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판관들 앞에서 자신이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절차를 통과했다. 그래도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좋았다. 체포되어 수감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는 절망에 빠진다. 공포에 빠진다. 작품이 검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작품 발표의 길이 막혔다. 작곡가인 그에게 그것은 치명적이다. 과거의 업적이 부정되고 미래는 막혀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탈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목숨을 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무슨 맛있는 음식처럼 그 가능성을 마음속에 품고”있었다.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이후 <교향곡 4번>은 검열 위원회를 통화하지 못했다. 25년 후에 이 작품은 발표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교향곡 5번>은 검열 위원회를 통과했고 <교향곡 7번>은 호평을 받았다. 사실 7번의 주제는 상당히 선율적이고 그 부분만큼은 쉽게 따라 부를 수도 있을 정도이다. 멜로디의 분위기도 밟다. 조성도 장조(major)이다. 당시 단조(minor)로 작곡하면 정권이 작곡가에게 “무슨 불만이 있는가”라고 묻기도 하는 시절이었다. 유럽 여러 국가들과 미국에서 지휘자들은 이 작품을 초연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일 정도였다. 쇼스타코비치는 검열위원회를 통과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그는 살아나기 위해 애쓴 것이다. 속사정이야 어떠하든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원하는 음악을 선보인 것이다. 


“타협”은 양자가 서로 양보한다는 뜻이다. 정권은 쇼스타코비치에게 무엇을 양보했는가? 그를 체포하지 않은 것, 그에게 여러 차례 스탈린상 및 U.S.S.R 국가상을 수여한 것, 문화사절로 외국에 파견한 것, 작곡가 조합 의장으로 선임한 것. 이러한 것들은 국가가 그에게 한 양보라기보다 (?) 


소시민으로서의 개인은 타자(일인이든 집단이든)와 어떤 관계 속에서 살고 있을까? 타협과 저항 사이 어디쯤, 타협과 순응 사이 어디쯤. 타협과 적응 사이 어디쯤 ... 선택이 아닌 당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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