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Torrey Podmajersky - Take the Time to Use Fewer Words
어떤 아티클을 번역할지 고민하다 제가 좋아하는 UX 라이터, 토레이 파드마저스키의 글을 골라보았습니다! 국내엔 <전략적 UX 라이팅>의 저자로도 유명한 분인데요.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아티클 전반에 그녀만의 위트가 은은하게 녹아있어요. 이걸 왜 이렇게 번역했대? 싶은 문장을 발견하신다면, 댓글로 의견을 남겨주세요!
이번 아티클은 <전략적 UX 라이팅>의 저자이자 콘텐츠 전략가인 토레이 파드마저스키가 2017년 1월 자신의 미디엄에 기고한 글이에요. 지금은 구글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을 때 작성한 글인데요. 본인의 경험을 예시로, 짧게 쓰는 것이 어떻게 사용자의 경험을 향상시키는지 설명해요.
(원문에서는 ‘단어’를 줄이라고 표현하는데, 한국어 말맛을 고려해 ‘단어를 줄이자’를 ‘짧게 쓰자’로 의역한 점 참고해 주세요. *는 에디터 각주예요.)
"내 편지가 이렇게 긴 이유는 줄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블레즈 파스칼이 한 말입니다.
수천 년 동안, 많은 언어권의 사람들이 ‘텍스트를 줄이는 건 시간이 드는 일’ 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글을 줄입니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제가 쓴 초안의 핵심은 주로 글 후반부에 있는데, 이 핵심을 글의 초입부로 옮기는 것부터 시작해요.
그 다음, 내용을 검토하며 글을 줄여요. 독자가 이미 아는 뻔한 정보는 모두 지워요. 주의를 분산시키는 TMI도 지우고요.
마지막으로 문법을 확인합니다. 전치사* 대부분은 없어도 돼요. ‘Is’ 뒤에 ‘-ing’으로 끝나는 동사가 있다면, ‘is‘와 ‘-ing’를 빼고 다시 작성합니다.** 부사도 삭제해요. 이러면 문장은 더 짧아지고, 꼭 필요한 내용만 남게 돼요.
* 전치사에 대응하는 한국어 품사로는 조사가 있다.
** 한국어의 비슷한 예로 ‘강남역에 위치하고 있다’와 같은 표현이 있다. 이는 ‘강남역에 있다’로 간결하게 쓸 수 있다.
저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사용자가 보는 화면에 표시되는 글을 작성해요. 사용자 경험(UX)의 일부죠. 사용자가 사용하기 어려워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 동료들은 저에게 문구 수정을 요청해요.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더 자세히(=길게) 써 달라는 요청도 종종 받아요.
더 길게, 자세히 쓰고 싶은 심정을 이해합니다. 우리는 관련된 모든 내용을 전달하고 싶어해요. ‘설명’으로 문제를 풀다 헤매고 있는 학생을 돕거나, 환자가 치료 방법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하죠.
‘더 설명하고 싶어하는 충동’은 대부분 대화로 경험을 향상시키려는 인간의 사회적 강박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스몰토크하는 것과 비슷해요. 우리가 말을 더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불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한 선생님이 방금 새 클래스 룸(Classroom)*을 열었다고 가정해 볼게요. 새로운 클래스 룸은 바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교사나 학생들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보안 작업을 설정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는 선생님에게 빈 화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초안을 작성해봤어요.
* 클래스룸(Classroom):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에서 개발한 디지털 학습 관리 시스템. 교육자와 학생들이 함께 작업하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특별한 걸 만드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해요!
우리는 당신의 클래스 룸을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좀 이따 다시 와주세요.
이 타이틀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요.
1. 선생님의 클래스 룸은 특별하다는 점
2. 클래스 룸을 만드는 데 오래 걸린다는 것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
본문으로는 현재 상황을 알려주고 있어요. 학교 시스템이 안전하게 운영되도록 설정하는 작업에 시간이 걸리고 있어요. 그래서 클래스 룸을 바로 만들 수 없는데,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쓴다면 이렇게 쓸 거 같아요.
거의 다 됐어요...
선생님에게 꼭 알려야 하는 정보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 뿐이에요. 그들은 나중에 와서 클래스 룸을 확인하기만 하면 돼요.
선생님은 바쁜 직업이에요. 느긋하게 글을 읽을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우리도 일부러 길게 쓰거나 그들에게 클래스 룸이 특별한 서비스라고 어필하지 않아요 돼요.
그 상황을 상상해 보기도 했어요. 겁에 질려있지만 아직 살아있고, 아드레날린이 팡팡 돌고, 심장이 쿵쾅거리겠죠? 이런 상황이라면 저 같이 밥 먹고 글만 쓰는 사람도, 글자가 눈에 읽힐 리가 없어요.
이건 보잉 787 비행기에서 발견한 문구예요.
보잉 787 비행기 내부 문, 표시판에는 이렇게 써있었어요.
잠겨 있을 시 빨간 표시판 내부에 모드 선택 핸들이 완전히 들어가 있는지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열려 있을 시 초록색 표시판 내부에 모드 선택 핸들이 완전히 들어가 있는지 시각적으로 확인하세요.
(VISUALLY ENSURE THE MODE SELECT HANDLE IS FULLY INSIDE THE RED PLACARD FOR ARMED AND GREEN PLACARD FOR DISARMED)
19개의 단어를 사용했더군요. 그래서 저는 11개의 단어만 사용해서 다시 작성해 봤어요.
열기 전 확인
빨간색 손잡이: 잠겨 있음
초록색 손잡이: 열려 있음
하지만 조금 위험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보잉 787 비행기에 탄 사람 중, 어떤 문이 "armed"이고 "disarmed" 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만약 제가 이 항공사의 UX 라이터라면, 색약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문구를 읽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할 것 같아요. 문구뿐만 아니라 손잡이에도 각각 빨간색과 초록색 이름표를 붙인다면 적색/녹색 색각이상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Good To Go> 서비스를 이용해요.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톨 게이트에서 멈추지 않고도 고속도로 톨비를 지불할 수 있어요. 이 사이트에서 톨비를 내는 게 우편으로 톨비를 지불하는 것보다 더 저렴해서 좋아요.
종이 청구서 없이 신용 카드로 지불할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워요.
하지만 <Good To Go> 웹사이트에 방문할 때마다 불편함도 느끼고 있어요. 이 사이트는 스크롤바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글이 너무 많거든요. 예를 들어 [새 계정 열기] 탭을 누르면 이런 화면이 나와요.
화면을 스크롤해서 내려야, 그제서야 [시작] 버튼이 보여요.
더 짧게 쓴다면 스크롤을 내릴 필요가 없을텐데 말이죠.
말을 끝없이 이어붙여 상대방을 압도하는 수사 기법이 있어요. 접속사로 계속 문장을 이어서 말하면, 듣는 사람은 취조당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으니 주의하셔야 해요.
글자의 홍수는 적신호:
상대방을 지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말을 많이 할 때가 있어요. 사실이 아닌 내용도, 계속해서 반복하면 상대방은 그것을 사실이라고 느낄 수 있어요.
우리는 종종 듣는 사람의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요. 비관적인 이야기를 전달하여 그들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한 건지를 깨닫게 하죠.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세요. 긍정적인 내용과 부정적인 내용을 번갈아가며 제시하면서 말이죠. 긍정적인 내용(내가 원하는 특정 행동)으로는 더욱 확신을 갖게 만들고, 부정적인 내용으로는 정말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하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는 듣는 사람이 더 쉽게 설득될 가능성이 있어요.
이렇게 상대방이 자신이 원하는 선택지를 고르도록 유도하는 건 대면했을 때 흔히 사용되는 대화 수법 중 하나이기도 해요.
간결하고 명확하게 말하면 듣는 이에게 믿음을 줄 수 있어요. 명확하게 정보만 전달하면 그때부터 상대방이 스스로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듣는 이가 생각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세요. 저는 굳이 말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이끌어낸 결론에 상대방이 스스로 도달할 수 있다고 믿어요.
짧게 쓰라는 건 단지 저의 조언일 뿐입니다. 이것만으로는 사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줄 순 없어요. 다만, 설명을 읽는 데 사용자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지 마세요. 사용자가 빠르게 읽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