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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ldenuit Nov 23. 2022

어쩌다 만난 샌프란시스코

신기루처럼 짧고도 아름다웠던 기억 - 헤이트 애쉬버리 거리

"스케줄 변경되었습니다. Crewlink 확인 바랍니다. - 운항 편조"


언제나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 오래간만에 지인과의 주말 약속에 들떠있는 있던 와중, 불길한 느낌의 문자 하나가 '띡' 날아왔습니다. 비행 스케줄이 변경되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그것도 내일 당장. 예정에도 없던 샌프란시스코 비행이라니.


샌프란시스코 공항은 나름 '특수공항(Special Airport)'으로 분류되어 있고 예전에 큰 사고도 있었던 터라, 한국인 조종사들 사이에서도 각별히 주의를 요하는 공항 중 하나입니다. 급한 마음에 아이패드를 챙겨 근처 카페로 향했습니다. 커피 주문하고는 회사 아이패드로 샌프란시스코 관련 비행자료를 꼼꼼히 리뷰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777기종이 운항하는 목적지 공항이 거의 30개가 넘다 보니(북극, 남극, 아프리카 빼고 다간다고 보면 됩니다), 한번 갔던 공항도 금세 기억이 가물가물하곤 합니다. 이럴 때 적극 활용하는 것이 저만의 '비행 노트'입니다. 공항의 특성과 비행 일정을 스토리화해서 기억하기 좋게 메모해둔 비행 일기라고 해야 할까요? 이 비행 노트에는 비행 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현지 스테이션에서 어디를 갔고, 다음에 어디를 갔으면 좋겠다는 등등의 '위시리스트'까지 망라되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경인지라, 부랴부랴 서랍장 뒤편에 먼지 쌓인 오래된 책을 꺼내듯 꺼내 비행 노트를 뒤적거렸습니다.



“KSFO 'Special Airport'. 미서부의 Traffic 많은 바쁜 공항. 해변과 높은 산맥에 둘러 쌓여 있어 바람이 강함. 활주로가 십자가 형태로 되어있고 동시 이륙과 동시 착륙이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음. 바다 안개가 잔뜩 끼었다가도 바람 한번 불면 '언제 그랬냐'라는 듯이 청명한 곳. 하루에도 몇 번씩 급변하는 날씨...


백 년이 넘는 케이블카가 활보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의 도시. 반전쟁과 사랑, 평화를 노래했던 히피문화의 본고장. 헤이트 애쉬버리 거리(Haight-Ashbury st.) 가볼 것".


샌프란시스코, Google image




그로부터 대략 24시간 후 깜깜한 어느 호텔방.

'여긴 어디, 지금 몇 시?'


엉겁결에 깜깜한 호텔 방에서 잠에서 깼습니다. 까치집을 지은 머리로 오만상을 찌푸리며 스탠드 옆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시간을 살폈습니다.


'SANFRANCISCO+16UTC, AM 3:15'


‘아, 맞다 스케줄 바뀌었었지.’


현재 위치와 현지시간을 깨우치는데 한참을 걸렸습니다. 3P(3-pilots)로 날아온 탓에 머리를 한데 얻어맞은 듯한 멍한 피로감이 엄습했지만, 어쨌든 별 탈 없이잘 도착했다는 흐뭇한 안도감이 교차했습니다. 호텔방에서 별 탈 없이 잘 자고 있는 상황 자체는 성공적으로 비행을 마쳤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남은 잠을 마저 자려는 욕심으로 다시 이불을 덮고 누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뒹굴뒹굴 누워있고 싶었습니다.


눈을 감고 누운 순간, 어제 그 한 줄짜리 마지막 짧은 메모가 자꾸만 계속 귀에서 앵앵거렸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애쉬버리 거리 가볼 것'


개인적으로 이곳 샌프란시스코를 올 때면, 건들건들하지만 볼수록 매력 있는 '히피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 있습니다. 어깨너머에 타투 좀 있고 껌을 질겅거리지만 반갑게 맞이해주는 친구. 평소에 한마디 없다가 어느 날 밤 난데없이 카톡 주고는 급만남을 제안하는 친구. 그런 의미에서 어제의 그 짧은 메모는 "내게 당장 달려와"하고 급만남을 제안하는 오랜 친구의 속삭임처럼 들렸습니다.


갑작스럽지만 매력덩어리인 그 친구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어 이불 킥을 하고 일어났습니다. 매번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 가방에 주섬주섬 렌즈를 챙겨 넣으며 급만남 채비를 했습니다. 10월의 샌프란은 더욱더 바람이 강한 날씨인지라, 바람막이 점퍼와 후드티로 나름 중무장을 하고는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후줄근한 복장으로 챙겨 입고 오래된 히피 친구를 만나러 가는 설레는 심정으로 헤이트 애쉬버리(Haight Ashbury st.) 거리를 찾았습니다.




헤이트 애쉬버리(Haight Ashbury st.) 거리를 향하는 길에 불현듯 대학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스쿨밴드의 로망을 꿈꾸며 신촌 부근에 즐비했던 음감실(음악감상실)을 전전했던 나름 쿨내 진동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유튜브가 없던 시절,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자칭 락 마니아들끼리 옴닥거리며 Beatles, Pink floyd, Rolling stones들의 노래를 종이에 적어가며 아날로그하게(?) 신청해야 들을 수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신청한 뮤지션 곡이 음산한 담배연기 틈을 꿇고 대형 스크린에 뿌려지는 순간 느꼈던 희열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설픈 목담배를 피면서 콜록거리면서도 연신 노래를 따라 부르고 히피 음악의 멜로디에 흠뻑 취하곤 했습니다. 끝없는 경쟁과 스펙 전쟁에 몸서리가 쳐질 대학시절 무렵, 자유와 평화를 외쳤던 히피들의 노래 가사는 지쳐버린 제 영혼의 해방구로 다가왔습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녔던 머리띠, 장발, 무지개색으로 물든 셔츠와 같은 복고적인 패션을 동경했던 시기였습니다.


'Listen to this wall' - 헤이트 애쉬버리 Oct. 2022


'히피'의 어원은 '힙스터'에서 출발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남발하는 '힙하다'라는 뉘앙스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용어는 기존의 권위를 거부하고 구도자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 영혼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기존의 이념을 떠나 소유와 집착을 거부하고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유토피아적 세상은 현실적으로 아직도 구현되지 못했지만, 이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파급력은 뼛속까지 스며들어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을 기억하게 합니다. 검소하면서도 질긴 청바지를 질끈 입고 뼛속까지 히피 정신으로 무장했던 그가 이룬 IT혁명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미 우리의 생활방식에서는 알게 모르게 히피들만의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자급자족, 생태, 대안교육, DIY 등의 실생활에 녹아들어 혁신적인 생활도구와 상품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이미 히피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헤이트 거리와 애쉬버리 거리가 교차하는 이 조그마한 사거리가 제게 갖는 의미는 구구절절 다가왔습니다. 당시, 세상의 모든 히피들이 기존 주류 문화와 질서에 반기를 들고 사랑, 평화, 자유를 추구하며 이 골목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동네에서 히피들은 공동정원과 텃밭을 가꾸고 무료 슈퍼마켓, 무료 보건소, 사이키텔릭샵을 스스로 운영하면서 그들만의 대안적 삶의 방식을 만들어갔습니다.


Legs on Haight-Ashbury, Oct 2022

'1967년, 샌프란시스코는 도시의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여름을 맞았다. 날씨 이야기가 아니다. 문화와 예술뿐 아니라 세계 젊은이들의 영혼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히피 문화의 대폭발, ‘Summer Of Love’를 의미한다. 미국 전역에서 십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거리, 이른바 ‘보헤미안의 게토’라 불리던 헤이트-애쉬버리로 모여들었다. 스콧 맥켄지(Scott McKenzie)가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Flowers in Your Hair)>는 세상의 모든 히피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하멜른의 피리 소리였다. 1967년 여름, 헤이트-애쉬버리에서 시작된 문화 혁명은 이윽고 미국 전역으로 그리고 유럽과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아갔다.' - Jounal california, 강지은


지미 핸드릭스의 집, Oct 2022


버스가 도착하고 헤이트 애쉬버리(Haight Ashbury st.) 거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마주한 '지미 핸드릭스의 집'은 그 당시 자유를 상징하던 '히피 거리'를 안내하는 관문이었습니다. 1969년, 시골 음악 축제로 출발했던 '우드스탁(woodstock)' 축제가 주었던 파급력과 혁명은 후대에 아직도 자주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중에 명장면을 꼽자면 단연, 지미 핸드릭스의 공연 인트로였습니다. 이펙터가 잔뜩 낀 기타 소리로 미국 국가의 연주를 통해서 당시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의식을 음악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기타로 비행기의 소리, 전쟁의 포격 소리를 통해 기존의 권위주의, 패권주의에 물든 기존 미국의 정치권력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보아도 손색없는 그의 공연은 기타를 연주하는 연주자뿐 아니라, 히피 정신을 나타내는 상징과 같은 연주였습니다.


Woodstock 1969, Google image


이안 감독의 영화 <Taking woodstock, 2009>을 보면, 쓰러져가던 시골 모텔이 우드스탁의 숙소로 변해가는 과정의 디테일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별다른 재주 없이 부모님과 함께 허름한 모텔 일을 돕던 주인공 '엘리엇'은 옆 마을에서 진행될 예정이던 록 페스티벌의 취소 소식을 듣고 '돈벌이 묘안'을 찾아내기 시작합니다. 페스티벌을 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설득해낸 끝에, 넓은 농장은 뜻하지 않게(?) 축제의 장소로 마침내 거듭났고, 그 과정을 1969년 8월 15일부터 8월 17일까지 3일 동안 스토리로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히피를 증오했던 경찰들 조차도 아이처럼 흙탕물을 뛰놀던 장면은, 반전과 자유를 갈망했던 그들의 간절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시골 모텔에서 아무 낙없이 늙어 가던 주인공의 아버지는 비를 맞으며 춤을 추면서 “나는 오늘 살아있다"라고 소리치는 감독적인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습니다.


<On the road, 2009>  Google image


우드스탁이 음악축제를 통해 히피들이 그토록 원했던 반전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면, 잭 케루악의 동명소설 영화 <On the road, 2009>에서는 히피들이 어떻게 절망하고 변질되어가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글을 쓰는 뉴욕 출신의 주인공이 히피인 '딘'과 그의 여자 친구를 만나 차를 타고 여행하는 젊은이들의 방황을 다룬 영화인데요. 트왈라이트로 스타덤에 올랐던 주연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퇴폐미와 눈 풀린 연기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원작 소설도 작가가 약에 취해 써 내려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주인공 세 명은 올드카를 타고 방랑에 가까운 여행을 하게 됩니다. '저렇게 살아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떠한 도덕적 개념 자체가 없는 이들의 젊은 방랑과 객기는 결국 파국의 결말을 맞게 됩니다.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2019>, Google image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2019>은 이러한 히피들의 변질과 몰락의 단면을 찾아볼 수 있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당시 유명했던 젊은 여배우 '샤론 테이트'와 그의 일행을 무참히 살해했던 찰스 맨슨의 무리들을 다룬 실화 영화로, 히피들이 사회로부터 매장당하게 된 큰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자유로운 사상이나 철학을 동경하던 긍정적 평가도 사그라들게 되고 '마약이나 하고 집단 난교를 통해 에이즈를 퍼뜨리는 반사회적 집단'의 이미지로 변화되어 갑니다. 실제로는 찰스 맨슨의 세뇌와 지시를 받은 히피 무리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말지만, 영화 속에서 타란티노 감독은 순수했던 샤론 테이트를 추억하려는 노력을 피력하듯 나름의 해피엔딩 방식으로 그려냅니다.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로 활약했던 성기완 님께서 번역한 <히피와 반문화, 크리스티안 생장 폴랭>에 따르면 히피문화의 퇴색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젊은 마약 사용자들은 모순의 그물에 걸리고 만다. 그들은 과학과 기술에 저항하지만 실험실에서 조제된 약품을 소비한다. 자본주의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면서도 마약 산업으로 큰돈을 번다. 개인주의자들이면서도 집단적으로 은둔한다. 미국 사회의 제약들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고민하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전제정치를 옹호하며, 그러는 한편 자발적 평화주의를 강조한다. 게다가 마약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그보다도 오히려 자기 자신을 향한 폭력의 문제를 분명히 제기한다. 삶을 사랑하고, 관능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를 갈망하면서도, 광기와 죽음에 가까워지고자 했다.


적지 않은 스타들이 마약을 옹호하면서 소송 사건에 말려든다. 그들의 무절제는 시간의 흐름과 노화를 거부하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적어도 그들은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비극의 주인공처럼 로커들은 젊어서 죽으며, 무미건조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 아킬레우스처럼 짧고 영광스러운 삶을 선호하는 것 같아 보인다. 롤링스톤스의 브라이언 존스는 1969년 독극물로 추정되는 약물을 복용한 후 익사한다. 또 지미 헨드릭스는 1970년 수면제 과다복용 후 잠든 채로 자신의 토사물에 질식하여 죽는다. 같은 해 재니스 조플린은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히피들의 문화적, 사회적 반향도 1969년 닉슨이 집권 후, 베트남에서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반전운동의 명분에 타격을 받았고 사회적으로도 마약, 자유 섹스, 집단생활, 가족 거부 등의 사회문제를 야기하면서부터였습니다. 한 때, 히피문화의 성지였던 이 애쉬버리 거리에서 히피들 스스로가 '히피 장례식'을 열 정도로 내부의 역동성을 상실해만 갔습니다.


비오는 하이트 애쉬버리, Oct 2022


부슬부슬 비 내리는 히피 거리를 걷다 보니 금세 해가지고 거리는 컴컴해졌습니다. 어둑어둑 저물어간 히피들의 몰락처럼, 거리에 남은 것이라고는 붉게 물든 조명들뿐이었습니다. 골목 끝에 마주한 클럽에서는 밴드 음악이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다음 대기 중인 밴드 멤버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히죽거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내심 기대했던 활기찬 당시의 모습보다는, 거리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와 뭔가 약에 취해 눈이 풀린 홈리스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옆골목에는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빅토리아 풍의 고풍스러운 집들이 빽빽이 예전의 모습을 폼내고 있었지만, 그 옆으로는 향락과 퇴폐적인 상업 건물들과 술집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뉴욕의 빈민가처럼 슬럼화 되어 버린 거리를 보면서, 예전의 몽상가들과 이상주의자들로 둘러싸였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허탈함이 공존했습니다.


Milk bar - Haight Ashbury st. Oct 2022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타고 창가에 자리를 잡고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뜨거운 태양에 무지개색 조명이 거리를 뒤덮고 기득권에 저항했던 히피들의 행진이 눈에 그리며 이곳에 왔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은 너무도 상업적으로 변질된 거리에 아련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슬픈 마음을 위안하려는 생각으로 ‘Janis Joplin'의 음악을 틀고 에어 팟을 귀에 꽂았습니다. 비 내리는 거리 그리고 알코올에 취한 듯한 붉은 조명과 27살에 떠나버린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는 너무도 완벽히 매칭 되었습니다.


Janis Joplin, Google image


'과거를 추억하는 열병'은 때때로 위안을 줍니다. 복고풍의 콘텐츠가 재유행하고 과거에 저물었던 LP샵이 요즘 다시 성행하는 것도 어쩌면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려는 우리의 본성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발 딛고 있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득할수록 우리는 과거의 날들을 추억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문화란 없지만 다시 기억되는 문화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습니다. 신기루처럼 짧았지만 아름다웠던 과거의 향수를 뒤로하며 숙소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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