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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린 Oct 27. 2022

인스타도 페북도 없는데요

SNS 없이 산지 벌써 6년

SNS를 끊은 지 벌써 6년이 다 되어간다. 그 흔한 인스타도, 페북도, 심지어 트위터도 없고 있는 건 메신저만 사용하는 카톡과 커리어용 링크드인뿐이다.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겠다, 같은 거창한 계기는 아니었지만 어떤 이유로든 나는 6년 전 SNS를 끊었고 한 번도 되돌아간 적이 없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선택이 내 인생의 꽤 많은 부분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주었다고 생각한다. 그 계기와 긍정적인 변화들을 정리해 적어보고자 한다. 


계기


위에 적었듯, 그 계기란 정말 거창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 계기란 바로 현재의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이다. 6년 즈음 전 홍콩의 뜨거운 바닷가의 길바닥(?)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고, 언젠가는 함께 가정을 꾸리고 싶은 좋은 남자를 찾아 헤매던 나는 그를 보고 처음부터 오래 함께할 짝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던 것 같다. 젊음과 열정에 취해있던 그 시절, 남자 친구를 만나기 전에도 여러 사람과 다양한 모습의 연애를 했었고 SNS(당시에는 주로 페북)에 중독된 데다 "나는 나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쿨한 사람이야"라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강박으로 전남친 사진들은 지우지도 않고 (상대 쪽에서 지우지 않는 이상) 모조리 남겨두고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쿨한 사람이라며 자위하던 나는 20대 답게 열정적이고 아주 스튜핏 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만나왔던 사람들과는 다른, 진중하고 성실한 이 남자를 만나면서 더 이상 SNS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게다가, 친한 사이가 되면 의례적으로 해야 하는 친구 추가를 목전에 두고 남자 친구가 나의 전 연애사를 수백 장의 사진을 곁들여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서로를 만나기 전 다양한 연애를 했을 것이라는 점은 인지한데도, 그것을 들어서 머리로 아는 것과 적나라한 사진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도 그와 그의 전 연인들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데, 상대방이라고 보고 싶을 리가 만무한가. 그렇다고 그가 친구 추가를 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을 자신은 없고,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을 것도 아니고. 그래서 서로 왜 우리가 SNS상 친구가 아닌지 진지한 고민이 시작될 무렵 계정을 그냥 없애버렸다. 일상을 공유하는 소중한 사람을 나의 가상의 공간에 들이지 않고 그 어색함을 오랜 시간 지고 살아가느니, 몇 시간을 들여 그래도 나의 추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검열하며 삭제하느니, 이런 고민을 애초에 하지 않아도 되도록 계정을 없애는 쪽을 선택했다. 


참 찌질한 계기인걸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할 수 있게 할 계기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 번의 찌질한 선택(!)으로 얻은 긍정적인 변화들


1. 시간이 많아졌다. 


사람 사는 일과 심리학에 관심이 참 많은 나는 페이스북을 한 번 켜면 두세 시간이 후딱 지나가곤 했다. 아 이 사람은 결혼을 했구나, 출산을 했구나, 학교 다닐 때는 이러이러하더니 그래서 이런 선택을 했나 보구나, 라며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인생 스토리를 머릿속에서 멋대로 끼워 맞추며 상상하는 일이 많았다. 그중 대부분은 시간을 내서 따로 볼만큼 친하지도 않은 학교 선배나 동기들이었다. 


물론 포스트를 올리는데도 꽤 많은 시간을 썼다. 수백 명의 피드에 뜨는 나의 포스트를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으로 대충 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 보여도 99%의 경우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나 역시 보다 나은 각도, 구도를 찾아 몇 번이고 사진을 찍었고, 보정 어플로 색과 밝기를 정리하고 또 마지막으로 사진에 적합하지만 또 너무 과하지 않은 캡션을 넣어야 했다. 한 포스트에 10분은 족히 썼을 것이며, 포스팅을 한 후에도 반응을 보려 앱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들어갔다 나왔다.


SNS가 사라지니, 이 모든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2. 남들과 비교를 덜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각자의 페이스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가끔의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해 SNS에 올린다. 그 말인즉슨 SNS에는 각각 인생의 가장 좋아 보이는 모습들이 담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피드를 내리면서 수십, 수백 명의 빛나는 모습들을, 그것도 다운되는 날에 보게 된다면 이 넓은 세상에 나만 이렇게 거지 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좌절감이 들게 마련이다. 


SNS를 통해 사람들의 안부를 확인하기보다 직접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카톡 메시지로, 통화로, 그리고 줌 미팅으로 긴 호흡의 대화를 나누게 되면 상대방의 요즘의 좋았던 일, 안 좋았던 일, 기분, 생각, 계획 등을 다방면으로 알게 되면서 인생에서는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으며 한 사람의 일상과 인생은 다양한 층위의 경험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디테일 없이 단편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애초에 보지 않고 판단한 것 보다도 못하다.  


3. 광고를 덜 보게 된다. 


SNS를 끊을 결심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또 하나의 조력자는 바로 광고이다. 6년 전 내가 SNS에 미쳐있을 즈음, 사용자의 입장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피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친구의 포스팅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운 네이티브 광고였다. 스크롤을 내리는 내내 내가 몇 개를 봤는지도 모를 정도로 잘 숨겨놓은 광고들이 나의 소비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친구들의 소식을 보는데 자꾸 끼어드는 광고, 그리고 그것들을 광고 인지도 모르고 오토 파일럿 모드로 눈으로 보고 머릿속에 담았을 것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광고의 전성시대, 내가 사용자로서 플랫폼에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수록 플랫폼은 고도화된 타게팅 기술로 나에게 딱 맞는 광고를 딱 맞는 순간에 내보낸다. 물론 효율성의 측면에서 이것이 나쁘지 않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나의 선택에 자신감을 가지고 싶다. 무언가를 구입하거나 하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 그것이 진짜 내가 원해서 한 것인지, 아니면 인터넷의 바다에서 나의 자잘한 습관과 취향을 파악하고 있는 인공지능 낚싯대에 걸려 나도 모르게 저지른 일인지 알고 싶다. 그리고 나의 선택을 되돌아볼 때 그게 온전한 나의 것이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고 싶다. 


대중들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그리고 스냅챗을 이용하는 시간은 기업들에게는 황금과 마찬가지다. 매분 매초를 광고를 보여주고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안데르스 한센 저 <인스타 브레인> 중


4. 양질의 정보를 "섭취"하게 된다. 


불량식품을 끊고 나서, 세상에는 생각보다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비유가 적절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SNS로 얻은 정보는 친구들의 근황뿐 아니라 뉴스거리도 있었다. 특정 미디어의 뉴스를 스크랩해서 자신의 의견을 한 줄 얹어 공유된 뉴스 클립 + 한 문장 의견의 조합을 수백 수천번 읽고, 링크된 뉴스는 클릭하지도 않고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넘어갔었던 것 같다. 


SNS를 끊은 지금, 활자 중독자로서 활자에 탐닉하고 싶은 욕망은 버리지 못했으나 SNS 대신에 시중의 여러 서적과 웹사이트, 플랫폼을 탐색하며 내가 읽고 싶은 좋은 품질의 글들을 생산하는 숨겨진 "산지"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제는 짤막한 글을 읽고 싶을 때 가는 곳, 양질의 정보를 취합하기 위해 찾는 곳,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할 때 들르는 곳, 관심분야에 특화된 콘텐츠를 생산하는 곳들의 리스트를 즐겨찾기로 정리해 필요할 때 들러 정보를 얻고 있다. 이제 나는 SNS 피드를 끝없이 스크롤하는 짤막한 글밥들의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정보를 적절한 곳에서 찾아 긴 호흡의 콘텐츠로 습득하고, 정리해 취합할 수 있는 능동적인 콘텐츠 소비자로 변모해 가는 중이다.


짧고 단순한 뉴스의 유혹에 빠지면, 세상을 진정으로 진지하게 바라보며 고찰하는 길로부터 멀어진다. 

- 롤프 도벨리 저 <뉴스 다이어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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