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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린 Feb 13. 2023

중고 물품 예찬

중고 쇼핑을 사랑합니다

패션을 사랑하는 맥시멀리스트 엄마와 사이즈가 비슷해 십 대 후반부터는 대부분 엄마의 옷을 입으며 살아온 나는 애초에 새 옷보다는 중고가 익숙하다. 그리고 요즘에는 엄마표 중고옷뿐 아니라 식료품 제외 대부분의 물건을 중고로 사고 있기에 이 기회에 나의 중고 쇼핑 사랑에 대하 써보고자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떤 물건이 시중에 중고로 판매되는 사실 자체가 중고 거래의 수고로움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물품들이라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가 시간과 재화를 들여 구입한 물건을 굳이 따로 시간을 내어 온라인 중고 마켓이나 오프라인 샵을 통해 사진을 찍어 올리고 설명을 적고, 구매자와의 협상을 마친 후 재포장을 하여 직접 거래나 택배 배송 등 일련의 번거로운 과정들을 거쳐야 비로소 판매가 성사되기 때문이다. 구매자의 입장에서도 다양한 정보를 조합해 상품의 상태와 중고가의 적절함을 확인하고, 때로는 판매자와의 스케줄을 조율하며 구매 타이밍을 맞추어야 하기에 새 제품보다 오히려 더 "귀찮은" 쇼핑이다. 


따라서 물건의 가치에 대한 "검증"이라는 것은 중고 거래의 가장 큰 메리트가 아닐까 싶다. 물론 시중에 생산되는 모든 물건이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소비자에게 가치가 있다는 전제 하에 계획되어 생산되는 것이겠지만, 구매자의 구매와 중고 물품으로써의 재판매라는 필터링을 두 번이나 거친 중고 물품은 새 제품은 "검증" 면에서 볼 때는 오히려 새 제품보다도 나은 것이다.


거래자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들도 빠뜨릴 수 없는 중고 거래의 즐거움이다. 직업적 성공이나 보너스를 위해 나에게 물건을 팔아야"만" 하는 영업직원들과의 대화보다, 그 물건을 즐겁게 사용했던 한 사람과의 개인적인 대화는 일상의 작은 활력이 된다. 특히 요즘은 육아 관련 용품을 많이 구매하고 있으므로 임신과 출산에 관한 다양한 팁과 경험에 대해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의류를 구입할 때는 새 옷에서 나는 코를 찌르는 화학약품의 냄새가 다 빠져있다는 점이, 그 외 다른 물건은 이미 사용감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 없이 팍팍 쓸 수 있다는 점 역시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도, 상대적으로 더 비싼 새 제품을 사지 않으므로써 가계 경제와 환경에 기여했다는 뿌듯함도 중고 거래의 매력이다.


임신 23주가 된 지금까지 구한 육아용품은 선물 받은 새 상품 외에는 전부 중고로 구매했다 (천기저귀 커버, 인서트와 가재수건까지). 소중히 쓰이고 세탁되어 얼룩하나 없는 뽀송한 아이들이 우리 집의 가장 최신 멤버들이다. 무지 천기저귀는 아기가 크고 나서도 우리의 목욕타월로 쓸 예정이라 새 상품으로 구입할 예정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전부 계속해서 중고로 들일 계획이다. 모르는 사람이 사용한 거라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 내가 그 사람을 모를 뿐이다. 많은 경우 구매를 하면서 구매자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며, 간혹 가다가는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설령 내가 아는 사람에게 받은 물건이라 한들, 내가 누군가를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그 사람의 사적인 공간에서의 모습이나 위생관념등에 대해서는 과연 진짜로 알고 있는 게 있을까? 


사람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이고, 같은 동네, 도시에서 사는 우리들은 결국에는 어떻게든 이어져있는 법이다. 서로를 조금 더 믿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중고 거래 시 나의 특이한 원칙 하나: 나는 절대 가격을 흥정하지 않는다. 판매자가 이미 심사숙고해 같은 새 제품의 가격과 사용감까지 고려해 신중하게 선정한 가격을 이유도 없이 깎으면서 서로의 에너지를 빼고 싶지 않다. 중고 판매를 하면서 무턱대고 가격을 절반으로 후려치며 들이대는 구매자들을 너무 많이 보며 질려버려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 구매자들은 상대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는 절대 그런 구매자가 되고 싶지 않기에 나는 판매자의 책정가를 존중한다.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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