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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우 Jul 22. 2024

열여섯 유서

소설 연재 #1. #2.

1.

 그건 내 탓이다. 내 탓이 맞다. 그날 수학여행을 간 전교생 중에, 그리고 그날 술을 처음 마신 아이 중에, 그 일은 나에게만 일어났다. 다른 아이들은 그날 수학여행 기념사진을 찍으며, 학교생활의 한 장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겼을 것이다. 집이 아닌 곳에서 친구들과 자고 일어나서 봄 내음을 맡으며, 다가오는 초여름 냄새까지 킁킁대며, 한 뼘 성장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르지. 지겨운 학교생활을 지겨워하는 복을 누리면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들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달랐다. 우선 머리가 아팠다. 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태였다. 꿈이었다면, 끔찍한 꿈이고, 현실이라면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게 맞았다. 머리칼을 더듬었다. 수학여행을 오기 전날, 설레는 마음에 산 머리핀이 잡히지 않았다. 잃어버린 거겠지. 옆자리에 앉은 수하가 내 어깨를 치며 말했다.

 “지유야, 너 어제 어디서 잤냐? 딴 방 가서 잤어?”

불길함이 엄습했다. 난 어젯밤에 어디서 잤을까. 잠이 들긴 한 걸까? 제발 어딘가에서 잠이 든 거길, 끔찍한 꿈을 꾼 것이길 간절히 바랐다. 난 수하의 말에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수하의 눈을 바라만 봤다. 수하는 그때 느꼈을까.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을까?

머릿속이 실타래보다 얇은, 거미줄보다 짙은 기억들로 엉킬 때쯤, 그 애가 창밖에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 애의 흔드는 손에 잡힌 내 머리핀을. 

  그 아이는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지유? 종종 보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받아들일 수 없는 꿈이, 현실과 맞닿았다. 믿을 수 없었다. 꿈이 현실이었다면 내가 살아온 16년의 삶은 무너진다. 

  또래 중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산 건 아니었다. 밤새워 시험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오기로 달리기를 1등 해본 적도 없다. 그래도 학교는 꼬박꼬박 다녔다. 엄마가 다니라고 하는 학원도 갔다. 다 하긴 했다. 평범하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면서, 내 나이를 살았다. 평범하게 지내려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 평범하기도 사실은 어려운 일이다.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중간은 가던 성적이 쑥 내려가고, 자칫하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멀어지는 게 평범함이다. 그런 상황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게 동동거리며 쌓아온 내 삶이 다른 이유로, 궤도를 벗어나려고 했다. 이미 벗어난 건지도.

 “야, 쟤랑 언제 친해졌어? 어떻게? 쟤 어때?”

수하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쟤는 잘생기기로 유명하다. 나는 쟤와 잔 것이다. 그냥 잔 것이 아니다. 내가 꾼 끔찍한 꿈이 현실이라면, 난 원하지 않는 사진도 찍혔다. 


2.      

  이렇게 된 건 전학을 왔기 때문이다. 전학을 오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평범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전학을 온 건 내 의지가 아니다. 엄마와 아빠의 상황 때문이다.

  새 학기에 맞추어 전학을 오긴 했다. 수학여행을 갈 때쯤에는 한 달 정도 함께 지낸 같은 반 아이들과 제법 가까워져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반 아이들과 섞여 있었다. 내가 속한 방에는 혜인이가 있었다. 혜인이는 우리 방에 있는 아이들 네 명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종이컵을 나눠주었다. 혜인이는 물병을 꺼내서, 각각의 종이컵에 물을 따랐다. 

  “웬 물?”

  “순진한 척 왜 하냐? 야, 고마운 줄 알고 마셔!”

  규빈이가 새우깡을 꺼내 가운데에 풀었다. 새우깡을 하나 집고 물을 마셨다.

  “캑!”

  술이었다. 찐한 알코올 냄새가 우리 방 가득 퍼졌다. 겨우 한 잔씩이었지만, 우린 조금씩 취했다. 우선 혜인이가 울기 시작했다. 규빈이는 킁킁대면서 방안을 돌아다녔고, 수하는 몸을 흔들어대면서 노래를 불렀다. 희한한 풍경이었다. 어릴 때, 시골 마당에서 아빠와 할아버지, 작은 아빠 등 친척들이 모여 춤을 추고 노래하던 풍경이 겹쳐져서 웃음이 났다. 살짝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조금 남은 술을 우리는 또 조금씩 나눠마셨다. 그만큼 친해지는 기분이 났다. 나도 수하와 함께 몸을 흔들어댔다. 몸을 한참 흔들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화장실을 가려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가 흔들렸다. 여기가 여자 화장실인가? 여기는 어디지? 남자 화장실인가? 화장실 표지판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배 속에 가득 찬 울렁거림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아무 곳이나 뛰어 들어가 보이는 변기에 토를 했다.

 “웩, 웩.” 

토를 하려는데 잘 나오지 않았다. 토하는 법은 배운 적이 없었다. 토는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것 같은데,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 손을 넣어서 술을 다시 꺼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이 씨, 술 너무 많이 마셨다. 그렇지?”

“선생들은 다 자나 봐.”

남자아이들 목소리였다. 남자 화장실에 들어왔나 보다. 뒤를 돌아봤다. 정신없이 변기를 붙잡느라, 화장실 칸 문을 잠그지 못했다. 아이들이 인기척에 몰려왔다. 난 변기를 잡고 쳐다봤다.

 “괜찮냐?”

  한 명이 다가와 등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탁! 탁! 탁! 그에 맞춰 토가 역류해서 변기로 내리꽂혔다. 몇 번의 토를 하니, 몸이 종이 인형처럼 쳐졌다. 난 화장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몇 번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고…마워.”

난 있는 힘을 다해 고맙다고 했다. 그 애가 쭈그려 앉더니, 주저앉은 날 보며 휴지를 건넸다. 내 입 주변을 닦아줬다. 그리고 가까이 왔다. 아직 배속에 토가 남아있었는지 속이 또 울렁대기 시작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애는 내 턱을 잡아 올렸다. 헝클어진 머리에서 머리핀이 떨어졌다. 그 애의 말이 웅웅거리며 잘 들리지 않았다.

 “…, 괜찮냐고.”

 괜찮냐고 묻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하네.” 

 순식간이었다. 그 애는 기진맥진한 나를 눕혔다. 화장실 바닥에 눕히고 내 옷을 내렸다. 그리고 남들이 말하는 ‘잔다.’는 그것, 그것을 했다. 공중화장실의 냄새가 역하게 났다. 정신이 중간중간 번뜩 들었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찰칵’, ‘찰칵’.

그리고 모두 돌아갔다. 그 애는 가다 말고 돌아왔다. 내 핸드폰을 찾아 자기의 번호를 입력했다. 그리고 바닥에서 무언가 주워들었다.

“이건 기념품으로 주는 건가? 내가 가져갈게.”

내 머리핀이었다.     

  이렇게 된 건 전학을 왔기 때문이다. 전학을 오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평범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전학을 온 건 내 의지가 아니다. 엄마와 아빠의 상황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된 건, 혜인이 때문이다. 혜인이가 술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수학여행지의 화장실 설계사 때문이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을 가깝게 설계해서, 술 취하면 헷갈리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잠이 든 선생들 때문이고, 같이 술을 나눠마신 우리 반 아이들 때문이고, 바르게 자라지 못한 저 개새끼 때문이다. 내 탓은 아니다. 내 탓은 정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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