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3. #4.
#3.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구름은 솜처럼 풀어져 있었다.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움직이는지 알지 못할 만큼 천천히 움직였다. 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머리가 울려왔다.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다. 어제 일은 그냥 정말 끔찍한 꿈이고, 저 머리핀은 저 아이가 그냥 주운 거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를 한 것은 잘못 들은 것일 거라고.
버스가 학교에 도착했다. 매일 보는 편의점, 버스정류장, 학교 교문, 아파트. 익숙한 장소가 눈앞에 펼쳐지자 그 끔찍한 꿈은 더욱 현실성이 없게 느껴졌다. 수하는 피곤한 듯 내 어깨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수하의 머리통이 무거워 반대쪽으로 밀어냈다.
“어? 벌써 도착했어?”
수하가 침을 닦으면서 일어났고, 맹한 표정에 왠지 안도가 되었다. 수하와 함께 집으로 가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뒤에서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같은 학교 남자애들이었다. 아이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술 끝을 말아 올리며 보기 싫게 웃었다.
“뭐야, 재수 없게.”
수하가 한마디 던지며 남자아이들을 노려봤다. 그러자 그중 한 명이 걸어왔다. 걸어오는 순간부터 땀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교복 셔츠 깃도 누리끼리하고, 바짓단도 흙이 물들어 얼룩덜룩했다. 그냥 지저분한 녀석이었다.
“왜, 네 친구 어제 자로 걸레 된 거 아직 모르나 봐? 너도 함께 쌍 걸레 할래?”
수하는 그 녀석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는지 그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키가 큰 수하의 손아귀에 그 녀석이 매달렸다.
“뭐라고? 이 입에 걸레 문 놈아. 제정신이 아니구나, 아주.”
수하의 기세에 그 녀석은 나를 쳐다보면서 몇 마디를 더 하려다 말았다. 그런데 그 얼굴이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끔찍한 꿈에서 배경처럼 보이던 남자아이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신호가 바뀌고 남자아이들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얼어있자, 수하가 내 팔을 끌었다.
“지유야, 왜 그래? 쟤들 아무 말이나 하는 거 하루 이틀이야? 얼른 가자.”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집 안은 적막했다. 원래 고요할 시간이다. 날 안아주던 평온한 공기가, 유난히 나를 밀어내는 듯했다. 습관적으로 열어본 핸드폰에 문자가 와 있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안녕. 어제 찍은 네 사진 보내줄게.’
그렇게 지옥이 눈앞에 펼쳐졌다. 난 두 손과 두 발이 덜덜 떨렸다. 소름이 머리끝까지 훑고 지나갔다. 주어진 건 고스란히 현실이었다.
#4.
내 사진과 영상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어른들은 모르고 아이들만 아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온통 내 몸 사진과 영상이 판매되었다. 영상은 제목부터 자극적이었다.
- 중딩 꽃잎 찧는 영상
- 떡방아소리, 볼륨 업.
온몸이 밧줄로 감기는 기분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조회 수는 다른 영상들의 조회 수보다 열 배는 족히 넘었다. 몸이 바르르 떨렸다. 목이 조여왔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난 살기 위해 가만히 멈췄다. 그리고 소리를 질러냈다. 그러나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난 숨이 멈춘 채로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토하듯이 목소리가 나왔을 때는, 꺽꺽거렸다. 미친. 소리를 질러도 질러도, 속에서 무언가 나와야 할 것 같았다. 맨바닥에 토를 하고, 헛구역을 했다. 먹은 게 없어 노란 위액만 나왔다. 더러웠다. 바닥이 더럽고, 내가 더럽고, 조회 수가 더럽다. ‘영상 미리 보기’ 화면에는, 몸만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결제한 후에 나오는 영상에서 내 얼굴이 나오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확인해야 했으나, 자신이 없었다. 이미 눈 끝부터, 손끝부터 까맣게 타들어 가고, 온몸이 담뱃재로 뒤덮인, 오물로 쌓인 늪에 잠식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그날 날 구경하던 남자아이들의 허세와 부풀어진 이야기들이 댓글로 쏟아졌다.
- **중 3학년 **, 김*유인 듯
- 수학여행 가서 술 먹고 꽐라 돼서 남자 화장실 와서 아무한테나 들러붙었다던데.
- 얼굴도 보자, 좀
- 난 라이브로 봤지.
- 영상 보니까 모자이크처리 되긴 했어도 웃고 있는 것 같던데, 좋아한 듯.
- 우는 거 아니야? 울든, 웃든 뭐.
- 영상에 얼굴 안 보여요, 판매자님, 좀 풀어주세요.
처음 느낀 감정은 정지였다. 그리고 공포. 어떻게 하면 저 모든 일을 없앨 수 있을까. 내 영상을 없앨 수 있긴 할까, 그리고 사진과 영상을 없애면 없던 일이 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화장실에서 몸을 닦았다. 피가 나서 빨개질 정도로. 그리고 자꾸만 토를 했다. 매일 밤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꿈을 꾸었다. 찾아가 죽이고 싶어서 살인도 검색했다. 정당방위, 살인. 어느 날 공포가 분노가 바뀌어 마음에 가득 차오르던 순간 개새끼에게 문자를 보냈다.
‘죽여버릴 거야, 개새끼야.’
답장이 왔다.
‘아직 안 올린 영상이 많은데, 아쉽네. 네 손에 죽기 전에, 빨리 올려야겠네. 나도 양심이 있어서 네 얼굴 나온 건 안 올리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금 바로 올려줄게.’
‘개새끼야!’
‘미안한데 나도 사람임.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는 사람 새끼임. 야, 흥분하지 마라. 난 두려울 게 없어. 잃을 게 없거든. 경찰서 가는 게 하루 이틀이냐. 미안한 시늉 좀 하면, 바로 나온다. 나 전교 1등인 건 알고 있지? 공부하다 스트레스 좀 받아서 실수한 건데, 학생은 공부만 잘하면 되는 거 잊었냐.’
난 비는 지경에 이르렀다.
‘얼굴은 올리지 마.’
‘그럼 좀 보자.’
‘싫어.’
‘8시까지 공터로 와라. 안 오면, 8시 5분에 얼굴까지 나오는 영상 올린다.’
아직은 영상을 본 사람들이, 나라고 확정 짓지는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몸은 누구나 비슷비슷하니까, 어쩌면 그냥, 나만 잊으면, 없던 일처럼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만 잊으면…. 잊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잊은 척하고 살아본다면…. 딱 잡아떼고. 그런데 얼굴이 영상에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난 그날 여덟 시가 되지 않길 바랐다. 어떠한 결정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시간이 흐르는 게 그렇게 무서운 적이 없었다. 벌벌 떨었다. 떨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그날은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랬잖아. 걔도 술에 취해서 그런 거잖아. 이번은 둘 다 맨 정신이야. 그 개새끼가 사람 새끼라면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그게 아니라면, 죽어라 패서 죽여버리고 싶었다. 한번 분노가 치밀어 오르니, 진짜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에 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공터가 가까워질수록 다리가 달달 떨렸다. 무서웠다. 사건이 있던 날, 짓누르던 힘이 공터를 꽉 채우고 있었다. 공터에 발을 들이는 순간, 실수했다고 느꼈다. 눈을 마주친 순간, 도망가지 못했다. 그 새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개새끼였다. 난 거기서 다시 한번 지옥을 봤다. 그 아이는 내 손목을 거칠게 잡았다. 난 얼어버렸고, 반복되었다. 그 아이는 얼굴이 나가지 않게 해 줄 테니, 한 번만 웃으라고 했다. 아니, 웃지 않으면 바로 얼굴을 함께 올린다고 했다. 그냥 웃으면 된다고. 말 들으라고. 차마 웃지 못하는 내 얼굴을 때렸다. 볼이 매웠다. 내 손가락을 강제로 접어 브이로 만들었다. 그 자식은 말했다.
“이게 너도 좋아서 했다는 증거지.”
그 뒤로 몇 번을 더 불러냈다. 영상은 하나씩 추가로 업로드되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주기적으로 내게 채팅방 선물하기로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 등 선물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