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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Jan 16. 2024

D0. 머리말

 오늘날 소형 가전기기의 전원으로 알칼리 건전지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전지의 수명이 다해 기기가 멈추면 동네 슈퍼마켓에 가서 같은 종류의 새 건전지를 사 와서 교체하면 된다. 크기별로 기호가 붙어 있어서 이 기호만 맞으면 일반인도 쉽게 교체할 수 있다. 그러나 휴대전화에 쓰이는 충전지는 시중에서 별도로 살 수가 없다. 십여 년 전에는 새 휴대전화를 사면 각형 충전지를 두세 개 주어, 소비자가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아 놓았다가 교대로 휴대전화에 부착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휴대전화의 배터리가 본체 안에 들어가 밀봉되어 일반 사용자는 배터리를 구경도 할 수 없다. 배터리의 용량이 그만큼 증가해서 가능해진 일이지만 충전지는 소비자가 마음대로 건드릴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그러니 용량이 더 크고 안전성이 중요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팩은 소비자가 아무리 기술적으로 잘 안다고 해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이것이 오늘날 일차전지와 이차전지에 대하여 소비자가 느끼는 차이점의 하나이다.     

 이차전지는 자원의 재활용이란 인간의 숙원을 해결한 문명의 이기이다. 이차전지는 일회용으로 쓰고 나면 폐기되는 일차전지를 다시 충전하여 쓸 수 없을까 하는 인류의 오랜 숙제를 해결하였다. 우리가 자거나 휴대전화를 쓰지 않을 때 기기를 전원에 연결하면 한국전력(주)에서 생산한 전기가 휴대전화 안의 배터리에 들어와 화학에너지로 저장된다. 물론 우리는 전기요금이란 이름으로 그 에너지의 대가를 치른다. 우리가 활동을 개시하여 휴대전화를 켜면 배터리의 화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바뀌면서 휴대전화가 작동되기 시작한다. 오늘날 휴대전화는 목소리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영상을 돌아가게 하고 통신할 수 있는 컴퓨터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또 다른 현대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는 원래 19세기부터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채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배터리의 효율이 낮아서, 사람을 싣고 쇠판으로 된 자동차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20세기 들어 내연기관 즉 엔진이 자동차를 움직이는 데 사용되면서 전기자동차는 쑥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전기의 편리성이 부각(浮刻)되면서 납축전지라는 이차전지가 자동차에 부착되어 SLI(starting, lighting, ignition), 즉 시동, 조명, 점화의 기능에 활용되었다. 그러면서 자동차는 화석연료로 작동하는 소형 엔진을 동력원으로 사용하였다. 기존의 자동차를 살펴보면, 휘발유로 구동되는 엔진과 전기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자동차산업은 지난 거의 1세기 동안 현대문명을 견인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차전지가 처음에는 소형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전원으로 개발되었으나, 그 효율이나 에너지 변환 양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자동차의 동력원으로 검토되었다. 때마침 자동차 엔진에서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도시 매연과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고 낙인이 찍히면서 이를 대치하려는 움직임이 있던 터에 효율 좋은 배터리의 등장은 자동차 개발 엔지니어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마침 정치적으로 이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내연기관 자동차를 규제하는 법안이 선진국에서 제정되었다. 그러면서 자동차 제조사들도 매연 없는 전기자동차를 생산하여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이차전지는 현대 과학 지식의 결정체이다. 전지의 구성 소재 대부분이 자연에서 나오는 것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새롭게 합성한 신소재이다. 주기율표에서나 보는, 지구상에 부존량이 얼마 안 되는 리튬 원소가 전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리튬전지의 구성 방법이나 작동 원리는 오래전부터 확립된 인류의 과학지식의 산물이다.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역사는 50년이 채 되지 않는다. 휴대전화, 컴퓨터, 자동차 이렇게 이차전지의 수요처가 점차 늘어나면서 관계되는 전지 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금융시장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전지 관련 업체가 하이라이트를 받게 되고 신규로 생겨나기도 하였다. 금융시장에서 자금 동원의 한 방편인 주식시장에서도 이차전지 산업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차전지 산업의 생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저변의 복합적인 요소를 알아야 하지만, 필자의 소견으로는 소재 혹은 재료공학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차전지 산업에서 쓰는 새로운 기술 용어가 등장하여 일반인들의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필자는 대학에서 이차전지의 양극 재료의 합성과 특성 평가를 연구하였고,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전지와 관련되는 수업을 지도하거나 강의를 해 왔다. 평생을 재료공학에 관계해 온 사람으로서 작금의 이차전지 산업 현실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는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다.     

 필자는 약 4년 전에 대학 교수직을 정년퇴직하고 백수로 소일하면서 업계에 다니는 석사 과정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야간에 신소재공학에 관한 과목들을 강의하였다. 그러던 중에 재작년에 문득 생각이 들기를 이대로 늙어가기보다는 내 머리에 있는 지식을 더 늙기 전에 일반인들에게 쉽게 설명해 보는 게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책상 위에 놓는 컴퓨터를 새로 구입하고 머리에 있는 생각들을 글로 써 내려갔다. 그 결과로 약 한 달 동안에 100여 페이지의 원고를 작성할 수 있었는데, 필자는 활자에 익숙한 세대인지라 책으로 발간하고 싶었다. 출판업에 문외한이었던 당시 수소문하여 보았으나 내 글을 출판해 주겠다는 출판사는 없었다. 그래서 책 출판에 관하여 공부를 하다가 작년 2월에 ‘무지개꿈’이라는 독립출판사를 세웠다.     

 작년 일 년은 그전 해에 써둔 원고를 바탕으로 세 권의 책 즉 ‘드림 스펙트럼’, ‘맥스웰의 무지개’, ‘해따라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는데 다 보냈다. 약 일 년 동안 출판사 사장으로서 최소의 경비를 들여 회사를 운영하려고 하였으나, 결과는 큰 적자였다. 첫 책은 회사 사장인 제자들에게 판매하여 출판 비용은 뽑았으나 두 번째 책과 세 번째 책은 주위에 민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그 방법을 포기하고 일반 대형 서점에 공급하는 방법을 택하였으나 판매가 수월하게 되지 않았다. 이제야 출판업계의 생리를 조금은 파악하게 되었고, 내 책을 선뜻 출판해 주겠다는 출판사가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도 작년 10월에 ‘종심지연(從心之宴) 겸 출판 보고회‘라는 이름으로 나의 70회 생일과 책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를 만들어 지인들을 초청하여 나름대로 하룻저녁을 즐겁게 보냈다.     

 회사가 비록 적자를 기록했어도 출판사를 폐업하기는 싫었는데, 새로이 글은 써지지 않았다. 작년 12월 중순부터 마음을 다잡고 쓰기 시작한 글이 본 책이다. 이번부터는 전문적이고 전공 냄새가 나는 책 제목을 달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책 출판으로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고자 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나 하고 싶은 대로 책을 발간하고 싶었다. 마침 다음 봄학기 야간 대학원 강의 과목의 제목이 '전지 소재 특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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