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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May 28. 2024

E30. 선한 사마리아인

 신약성경 누가복음 10장 후반부를 보면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누가복음 10장 30절에서 36절까지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주라. 부비(浮費)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 말씀은 우리의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이다. 예루살렘과 여리고는 약 20km 떨어져 있는데, 요즘 자동차로는 금방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지만 당시에는 걸어서 갈 수밖에 없는 산길이었다. 특히 예루살렘은 해발 750m나 되는 유다 산지 한가운데 있고, 여리고는 해저인 요단강 계곡에 있으므로 그 길은 험한 산길이고 강도가 출몰하는 지역이 있나 보다. 그 위험한 길을 한 사람이 걸어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을 정도로 얻어맞은 모양이다. 당시에 유대인의 지도자급인 두 종교인이 그곳을 지나가면서 그 사람을 외면하였지만, 어떤 사마리아인이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치료하고, 숙박 시설로 운반하여 재우고 치료비까지 부담한 미담을 예수가 소개하며 세 사람 중 누가 그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냐고 묻는다.

     

 사마리아 산지는 이스라엘의 영토 중에서 갈릴리 산지와 유다 산지의 사이에 있는 산간 지역인데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한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모두 이스라엘 왕국 시대까지 같은 히브리인, 즉 동족이었다. 사마리아인도 모세 5경인 토라를 믿는다. 솔로몬의 사후에 왕국이 남북으로 갈린 후 북쪽 왕국의 후손(後孫)인 사마리아인은 역사적으로 이민족의 탄압을 받으면서 인종적으로 종교적으로 이민족과 혼합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사마리아인이 이방 문화에 오염되었다는 유대인들의 인식이 두 집단 사이에 갈등과 긴장을 유발하였다. 이러한 긴장은 요한복음 4장에서도 보인다.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 산지를 떠나서 고향이자 주요 사역 지역이었던 갈릴리 지방으로 가는 예수가 사마리아 산지의 수가(Sychar) 성에 들렀을 때, 우물가에서 예수를 본 한 사마리아 여자가 요한복음 4장 9절에서 말한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다시 강도 만난 사람 이야기로 돌아가서 누가복음 10장 37절에 보면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예수가 질문자에게 명한다. 여기서 질문자는 바로 우리들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나 종교적인 규정으로 너무 따지지 말고 착한 일을 하라고 예수가 우리에게 주는 명령이다. 이런 가르침을 따라 미국에 가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병원(Good Samaritan Hospital)’이라는 간판이 곳곳에 보인다.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위에 인용한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처신과 같은 행위를 구조거부죄 또는 불구조죄로 처벌한다. 이를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The Good Samaritan Law)’이라고 한다. 이는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지 않은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다. 이 법은 근본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인, 윤리적인 문제와 연결된다. 그러나 법과 도덕은 별개라는 입장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여 법이 도덕의 영역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물에 빠진 사람을 충분히 구해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해주지 않은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논리이다. 우리나라의 법체계에서는 불구조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단, 노인, 영아, 직계존속, 질병 등의 사유로 부조(扶助)가 필요한 사람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가 그들을 유기한 때에는 유기죄로 처벌받는다. 우리나라의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서도 이 법의 정신이 반영된 흔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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