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우 Nov 07. 2022

엄만 조금 겸손하실 필요가 있어요.


엄만 조금 겸손하실 필요가 있어요.


머리에 맴돌기를 몇 달, 결국 말을 뱉었다.


마음 상하게 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에요. 그냥, 엄마가 조금 겸손하셨으면 해서요.


악의 없는 몇 마디가 오가고


난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거실 TV 앞은 이런 대화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다.










 울타리를 나오면 자연스레, 세상의 전부였던 부모의 모순과 결핍이 보인다. 친언니는 그 균열의 시작을 항의와 반항으로, 파란만장하게 알렸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언니와 엄마는 식탁을 가운데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엄마 손엔 롤러가 들려 있었고 나는 어쩌다가 그 사이에 끼어 언니와 함께 매를 도망 다녔다. 아직 다 성장하지 못한 난 다리가 짧아 계속 뒤처졌다. 언니의 뒤를 쫓으면서 엄마가 마구 흔드는 롤러에 등짝을 몇 대 얻어맞았다. 언니가 붕어처럼 퉁퉁 부은 얼굴로 울면서 소리쳤다. “얜 때리지 마!”




 난 이 장면을 언니의 ‘시절’로 기억한다. 외에도, 언니가 변기에 앉아 엄마 욕을 뇌까리며 울고 있던 것을 목격한 일, 침대에서 인상을 잔뜩 쓰고 건들거리다가 거실에 가서는 애처럼 엄마에게 찡찡댄 일. 나의 친언니는 그렇게 그 시절을 보냈다.







 나는 다르다. 난 주로 차에서 조용히 엄마와 대화를 나눈다. 어쩌면 막둥이의 축복이 여기에까지 미치는 것일지 모른다. 언니가 전에 한 번, 첫째가 맨몸으로 곡괭이 들고 길을 터 놓으면 막내가 고상하게 걸어 지나간다고 말했다. 나도 동의하며 크게 웃었다. 지금의 부모님은 내 입에서 달갑지 않은 이야기가 튀어나와도 롤러를 들고 뒤쫓아오지 않으신다. 인정하실 건 인정하시면서 자신에 대한 딸의 생각 일부를 멋지게 받아들이신다.






 나의 엄마가 겸손의 미덕과 먼 사람이란 걸 느낀 건 최근의 일이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지인 풀이 다양해진 것이 그 발단이다. 그들의 화려한 커리어와 능력에 놀라는 것은 잠시, 진정 감흥을 갖고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중 몇의 겸손이었다. 겸손이 자신감 결핍이나 단순 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로 알게 되었다. 자신을 낮춘다는 건 여전히 그가 바라보고 있는, 높은 무언가가 있다는 반증이다. 겸손은 그의 더 높은 지향을 드러내는 덕에, 왁자지껄한 자만보다 더 생기 넘친다. 물론 겉으로만 겸양 떠는 이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겸손과 거리가 멀던 나는 예찬론자가 되어 본가에 내려갔다.









 엄마는 내게 겸손하라는 교육을 하신 적이 없다. 아낌없는 칭찬으로 나를 키우셨고, 언니만이 그 상황을 못마땅해했다. “쟤 그렇게 키우지 좀 마, 엄마.” 칭찬받던 나까지 샐룩하게 만드는 한 마디였다.






 엄마는 지인들에게도 꾸준히  자랑을 하셨다. 부모님께 그리 살갑진 않은 딸이었으니 결국 성적 자랑이었을 거다. 내가 대입으로 결실(?) 맺은 이후 엄만 지인들 사이에서 자녀 양육 컨설턴트로 통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기고만장이 하늘을 찌르고 불안이 땅을 뚫던 고삼. 괴리감이 몸을 태우던 그땔 기억하는 , 그게 싫다.  그리 잘나지 않았으니 밖에 가서  자랑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기분 좋아하시는 엄마 앞에서 그런 말을   없어 삼켜 왔다.






 겸손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은 내게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죽은 격언을 습관적으로 되뇐 결과도, 미움받기 싫어서 체득한 생활의 전략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잘 살고 싶은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고 자기반성을 지나며 자연스레 그 미덕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아직 노력하고 있는 겸손을, 엄마에게도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겸손이란 게 알고 보니 정말 좋더라고, 전도하는 심정이다. (전도하는 심정이 뭔지는 사실 잘 모르지만.)





 이걸 언젠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엄마에게 말할 기회가 있겠지. 그땐 더 정돈된 말이어야 한다. 엄마에게 드리는 충언은 그래야만 한다.






 주제넘는 짓을 일삼는 딸은 부모를 자꾸 심판대에 세운다.





작가의 이전글 창년과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