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최초의 고뇌
열 살로 기억한다.
평소와 같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교할 채비를 하던 중이었다. 네 명이서 모둠을 만들어 책상을 붙이고, 선생님의 하교 인사를 기다렸다.
그런데 내 맞은편에 앉은 남자아이가 책상 밑에서 내 발을 고의적으로 차는 거다.
처음 한 번은 하지 말라고 했다. 두 번째 발을 차였을 땐 “씨발.”이라고 읊조렸다.
내가 만만해서 이러나 싶어 나름 세 보이려고 고심한 끝에 가장 어감이 센 욕을 선택했다.
모범생 이미지이던 난 영악하게 굴 줄 아는 아이였다. 당연지사 그 아이에게만 들리게 조용히 욕을 뱉었다. 더 은근히 나의 ‘만만하지 않음’을 어필하기 위한 전략의 일종이기도 했다.
내가 뱉은 욕 한 마디 때문이었는지 나의 가증스러움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아이는 번개 치듯 순식간에 분개하며 응수했다.
“뭐? 창년 주제에.”
이건 내 예상에 없던 전개였다. 먼저 흥분한 건 내 쪽이었다. “뭐? 창년?” 언성을 높였다. 여름의 늘어진 분위기가 감돌던 오후에 결국 우린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언쟁을 했다. 선생님께서 우리더러 남으라고 하시곤 아이들을 보내셨다.
그 남자아이와 앞다투어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울음을 그치라고 하셨고, 선생님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아 난 울음을 꾸역꾸역 삼켰다. 우는 것보다도 울음을 삼키는 일이 탈진할 듯 힘들었다. 와중에 젊은 여자 선생님의 훈계 내용은 의외였다.
나에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도 먼저 욕을 했으니 ㅇㅇ이와 똑같이 잘못했어.”
내가 뱉은 ‘씨발’과 내가 들은 ‘창년’이 같은 무게의 잘못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반박할 순 없었다. 먼저 욕을 한 건 내가 맞으니.
그 아이에겐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녀만 있는 줄 아니? 창남도 있어.”
넓은 세상을 깨우치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그 무엇보다도 성별에 따라 직업을 달리 생각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신 걸까.
이해 안 되는 것 투성이던 그날 오후. 많은 것들을 함께 고민하기에 내 머리는 작고 여렸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중대한 질문만을 남겨 꽤 오래간 고뇌 했다.
나는 창년인가?
그것이 무엇인지 간단히 알고 있었다. 본인의 성을 파는 사람. 하지만 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파는지까지는 알지 못하던 열 살의 나였기에, 사실 난 나도 모르는 새에 성을 팔아온 창년이 아닐까 고뇌하고 괴로워한 것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창년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부모님께도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소연했지만 그들 최선의 방법으로 날 위로해 주었을 뿐, 내가 창년이 아니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그것으로 내가 지칭된 순간부터 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내 정체성에 창년을 집어넣어야 할지를 두고 오래토록 고심했다. 단어 하나로 촉발된 질문은 자신과 타인과 세계를 두고 인식해가는 힘을 길러 주었다. 내가 창년인 근거를 대기 모호한 것만큼이나 내가 창년이 아닌 근거를 대기도 모호했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창년과 창년이 아닌 것 사이에 걸친 존재인가, 실은 모든 사람들이 창년 창놈인가 싶기도 했다.
인식 지평이 확장되는 최초의 계기였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성을 파는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난 뒤에야 ‘창년’과 ‘나’는 관계가 없는 단어의 나열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