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남을 배려하냐면-” 하고 그녀가 운을 뗐다.
세 가지 일화가 있어.
일. 난 원래 닭다리를 좋아해. 하지만 다른 사람과 치킨을 먹을 땐 닭다리가 내 취향이 아니라고 거짓말해 왔어. 그렇게 매번 닭다리를 양보하다 보니 닭가슴살도 좋아지는 거 있지. 입맛이 변한 거야.
이.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베개가 부족한 일이 종종 있었어. 그럴 때마다 난 원래 베개를 베고 자지 않는다고 거짓말하고 친구들에게 베개를 양보했어. 그렇게 몇 번 자다 보니 익숙해져서 정말 베개를 베지 않고 자는 게 더 편하다고 느껴지더라고.
삼. 난 약속이 있으면 십 분 정도 먼저 가 있는 편이야. 그래서 상대가 십 분 늦는다고 하면 난 도합 이십 분을 기다려야 해. 그래도 난 절대 먼저 도착한 걸 티 내지 않아. 상대가 미안해하는 게 싫어서. 저번엔 개찰구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가 늦는다는 거야. 비슷하게 도착한 척하려고 개찰구를 나가지 않고 꽤 오래 기다렸어. 이땐 기분이 조금 이상했어. 개찰구를 나가지 못하고 기다리다가 친구가 보이길래 이제 막 도착한 척 연기를 하는데, 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아도 될 텐데.
내 어떤 변화들이 배려에서 기인한다는 걸 깨달은 것도 최근 일이야. 나도 몰랐어.
이 작위적인 배려는 그녀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상대가 자신의 배려를 알게 되는 것도 멋쩍어, 그녀는 배려 아닌 모습을 연출하려고 자주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더 완벽한 배려를 하기 위해 끼운 사소한 거짓말로 그녀는 연달아 두 번 재단되는 셈이었다. 배려하는 행동으로 한 번, 자기 정의로 한 번. 그녀의 몸이 기억하는 배려는 그것을 받을 사람 없이도 성실하게 작동하며 그녀를 변화시켰다. 그녀는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조금 혼란스럽다고 했다. 자신이 거짓을 닮아가는 것이. 그녀가 한 거짓말이 일종의 자기 예언처럼 그녀를 조종한 탓이다. 하지만 추측하건대 배려가 몸에 익어 버린 그녀에게 이 변화가 혼란스럽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거짓말에 자신을 맞춘 덕에 배려 몇 가지는 더 이상 거짓말을 수반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니, 한편으론 그 변화가 내심 마음에 들기도 할 거라고. 그녀의 배려를 자주 받아온 난 생각했다.
그녀는 시냇물 같은 사람이다. 흘러가는 모양새가 자주 변한다. 그로 인해 그녀는 가끔 혼란을 겪는다. 이를테면 그녀 자신의 모든 특성이 지인들의 것으로부터 베껴온 짬뽕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존재가 아득해지는 시기가 돌아오면 그녀는 자신 속에 자신의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 없다고 씁쓸해했다. 그리곤 남몰래 자신의 단단한 뼈를 찾아 더듬고 본인을 확인하는 데 열중했다.
이렇게 그녀가 종종 목도해온 것은, 저도 모르게 친구들을 닮아버린 자신의 모습. 단지 그뿐이었다. 이 사실에 그녀는 멋쩍게 웃곤 했다. 그들을 구석구석 사랑하는 그녀로선 그들을 닮아가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녀에게조차 이번 일은 생소했다. 상대에게 좋은 쪽으로 그녀 자신의 몸을 비틀고서, 그 불편함이 익숙해지기까지 기다린 셈이다. 이번엔 몸을 아무리 더듬어도 물렁한 뼈조차 느껴지질 않았다.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는 말랑한 살만이 그녀 자신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감을 느꼈다. 멋쩍게 웃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배려가 몸에 밴 그녀 주위엔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녀의 배려심 깊은 성격도 그녀 특성 중 하나로서 주변의 고른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성격이 품고 있는 아이러니를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그녀의 개인적인 사정은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
그녀가 그날도 내게 수많은 배려를 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모른 체 받아들인 그녀의 작위적인 배려들을 잠시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 의식적인 노력을 타고 금세 머리에서 지워졌다. 그녀에게 숨 쉬듯 자연스러운 배려를 그녀 자신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고, 그럼 차라리 나도 의식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