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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우 Apr 22. 2024

눈 딱 감고 발을 디디면

오스트리아 워홀 일기 0


 ‘지금’이라는 직감이 드는 순간이 있다. 막연하게 바라오던 것의 윤곽이 선명해지고, 이례없이 정신이 또렷해지며, 추진을 위한 에너지까지 어디선가 끌어다 쓰게 되는 각성 상태이다. 하지만 이 직감의

순간에 당사자의 기질만을 책임으로 물 순 없다. 그 순간을 이끄는 장본인은 그의 내-외부에서 작용하는 미상의 힘이기 때문이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지금’은 우연이 그를 낚아채는 ‘덥썩’이다.





작년 초가을 어느 저녁, 과외 수업에 늦을까 초조한 마음으로 역사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들어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퇴근 시간과 맞물린 2호선은 검은 머리로 빼곡했다. 그날따라 과제에 과욕을 부리느라 학교에서 늦게 나온 데다가, 허기를 못 참고 역사 내 분식집에서 어묵과 물떡을 사 먹느라 절묘하게 퇴근 시간을 넘겨 버린 것이다. 만원 지하철의 텁텁한 공기로 들어서면서 생각했다.


반년은 택도 없다.

2024년엔 꼭 해외에 나가 있을 것이다.

새해 첫날부터 해의 마지막 날까지 이 텁텁한 한국을 떠나 있고 싶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찡한 감각이 느껴졌다.






난 3학년 2학기를 막 시작한 대학생이었다. 타성에 젖은 대학 생활이란 물에 젖은 두루마리 휴지 마냥 축 늘어져 판에 박은 생활 반경만을 오가는 것이다. 이 축축하고 별 볼 일 없는 우울감이 언제부터 지속되었는지는 몰라도, 그 상태를 인지하게 된 것은 작년 초 무렵이었다. 오전 수업은 거의 출석하길 포기하면서 학점이 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상황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상 ‘잘 살아보려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두리번거리기 마련이다. 실체 없는 그것을 타개하고자 내가 움켜쥔 동아줄은 나 홀로 유럽 여행이었다. 하지만 단 이 주간의 여행에 나의 터닝 포인트 같은 것이 되길 바란다는 건 낙관적이고 염치없는 기대였다. 이국에서 느낀 것이야 많았지만 감동받은 눈은 유럽에서만 유효했고, 다음 학기 학교 화장실에선 전과 다름없는 동태 눈깔만 끔뻑거렸다. 뭐든 도구적으로 접근하는 내 노골적인 속내에 동아줄마저 질려버렸던 건 아닐까, 이제야 생각한다. 아무튼간에 난 그만큼이나 바뀌고 싶어 했다.


학기를 거듭할수록 대학에서 듣는 강의나 생기는 인연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던 터라, 지쳐서 어슬렁거리기나 하는 내 모습이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체력의 문제였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무엇’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런 식의 자기 분석마저 이미 권태의 루틴에 자리 잡은 요소에 불과하게 되어 이골이 난 사람이라면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의미 없이 채워지는 이수 학점이 야속했고 이대로 졸업해 버리기 싫었다.






신촌역에서 건대입구역까지는 지하철로 27분 소요된다. 다시 말해 이 답답한 곳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삼십 분 남짓한 시간 안에 정리되었다는 뜻이다. 드물게 찾아오는, 머리가 기적처럼 팽팽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가능한 한 빨리 해외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지난여름 오스트리아에서 묵었던 한인민박 사장님을 떠올렸다. 사장님께선 나와의 대화가 제법 마음에 드셨는지, 지나가는 말로 스탭일을 제의하셨었다. 당시엔 전혀 생각이 없어 알려주신 카톡 아이디마저 저장해두지 않았는데, 사람 마음은 원래 간사한 것이 아니던가. 지하철에서 땀 삐질거리며 간신히 아이디를 기억해 내고 조심스럽게 연락을 드렸다. 사장님은 나를 그곳에서 입은 ‘비닐 원피스’로 기억하고 계셨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부모님께 통보하고, 만나고 있던 애인과 헤어지고, 대사관 면접을 잡고, 비자를 받았다. 종강 일주일 뒤 출국인 비행기 티켓을 끊고, 사장님으로부터 민박집 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들으면서, 내용을 기반으로 그곳에서의 일 년 계획을 세웠다. 출국 직전엔 일기장들을 종이백에 고이 넣어 밀봉한 뒤 가장 믿는 동네 친구에게 맡겼다. ‘내가 혹시 잘못되면 이것들을 통째로 태워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임신한 친언니의 신혼집에 가서 뱃속에 있던 춘동이의 발길질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고 일 년간 못 볼 친구들도 차근차근 만났다.


12월 27일 새벽에 인천공항에서는 조금 울다가 비행기에 올랐다. 사장님께서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주셨다. 노란 조명이 끼얹어진 겨울밤의 유럽은 낯설고 아주 추웠다. 사장님께서 끓여주신 따끈한 육개장으로 몸을 녹이고 숙소에 올라갔다. 떨떠름한 밤에 ‘덥썩’의 순간을 떠올리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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