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시와 덜 이상한 시
가을비가 내린다. 30도가 웃돌던 기온은 비와 함께 20도로 내려갔다. 유달리 길었던 올해 여름을 떠나보내며 빗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자연이 들려주는 자장가 덕분에 아이는 평소보다 일찍 잠 들었고, 집 안은 고요해졌다. 창밖 소리를 감각하기 좋은 밤이 찾아왔다. 침묵이 고마운 밤이다. 투두둑 투둑. 리듬이 느껴지는 빗소리가 내 마음을 두드렸다. 문득 빗소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 속에서 함께할 때조차 편안한 사람이.
비가 오면 감성이 고개를 든다. 그럴 땐 시집을 꺼내어 시를 몇 편 읽어보기도 하고, 시를 몇 자 끄적여보기도 한다. 지난여름, 비가 많이 오던 장마철에도 시를 쓴 적이 있다. 새벽에 쓴 '우산'이라는 제목의 자작 시를 수업 시간에 발표했더니 교수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1연이 아주 이상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기울어진다'라는 것과 '만나러 간다'라는 것이 전혀 연결되지 않아."
병아리 수강생에게는 관대하신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니. 취업 준비생 시절, 특강하러 온 기업 인사 담당자가 학생들에게 두 번, 세 번 강조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러분, 새벽에 쓴 자기소개서는 감성 과잉이에요. 절대 그렇게 쓰면 안 됩니다. 아침에 꼭 제정신으로 다시 읽어보세요." 물론 시와 자기소개서는 다른 범주이지만, 읽는 사람이 아닌, 쓰는 사람의 감성 과잉은 범주와 관계없이 글을 흔들리게 한다.
아주 이상한 시, '우산'의 전문은 이렇다.
우산
가득 차면 기울어진다기에
내 마음
조금씩 덜어내 유리병에 담아두고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투둑 투둑 빗소리에
펼쳐 든 우산
작은 지붕 되어 우리를 감싸고
두고 온 마음
기울어진 우산 위로 흘러넘쳐
내 어깨를 적십니다
오후에 제정신으로 다시 읽어보니 여기저기 논리가 약한 부분이 보인다. 첫 행을 쓸 때 '달'을 떠올리며 썼지만, 대상이 불분명해서 오히려 모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유리병이라는 표현도 유치하다. 시는 모든 것을 풀어 보여주지 않고 은유나 상징으로 조각을 숨겨야 할 것만 같은데, 아직 미숙한 탓에 시 쓰기에 막 입문한 나 같은 사람은 어쭙잖은 표현을 쓰게 된다.
한 주 동안 고민하며 시를 고쳤다. 일단 수정을 위한 세 가지 기준을 정해 보았다.
첫째, 연과 연 사이 논리를 생각할 것.
둘째, 연결되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할 것.
셋째, 말이 되게 쓸 것.
시를 수정하다 보니 시의 제목도, 중심 소재도 바뀌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바로 시 속 주인공인 화자의 마음.
다음 수업 시간에 '만월'이라는 시를 발표했다.
만월(滿月)
달무리 진 밤하늘에
피어난 방울꽃
투둑투둑 떨어질 때
그대 옷깃 젖을까
우산으로 작은 지붕 만들던
지난날 떠오르네
우리 인연
가득 차 기울어진 달처럼
저물 줄 알았더라면
내 마음 한 줌 덜어내
메울 자리
오래도록 남겨둘 것을
다행히도 교수님은 만월에 화자의 마음을 투사하여 형상화 한 점을 칭찬해 주셨다. 단, '지난날 떠오르네'라는 표현은 쓰지 말라고 덧붙이시면서. 그제서야 긴장되었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며칠 전, 시부모님께 추석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밤이었다. 가을 달빛이 가장 아름다운 날이 추석이라길래 기대하며 하늘을 보았지만, 예상과 달리 달은 물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순간 내가 쓴 시 '만월'이 떠올랐다. 속으로 시를 읊으며 고개를 들어보니 가득 찬 마음으로 항상 곁에 있어주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내 마음에 환한 보름달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