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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오 Dec 16. 2022

진폐증은 렌즈 깎는
스피노자의 명료한 직업병

    1656년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유대교회(Synagogue) 문 앞에 젊은 철학자가 내팽개쳐졌다. 화난 유대인 무리는 줄지어 한 사람씩, 쓰러진 그를 밟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회당 안에는 짐승의 피를 담은 대야에 참석한 사람 수만큼 촛불이 켜져 있다. 다 같이 저주의 주문을 읊조린 뒤 한 사람씩 촛불을 끄고 사라졌다. 마지막 촛불이 꺼지면 젊은 철학자의 영혼이 사라지게 된다.


    총명한 머리로 5살에 미래의 랍비로 낙점됐던 바뤼흐 스피노자는 24살에 유대 공동체에서 종교재판을 받고 파문을 당해 ‘영혼이 사라졌다.’ 신을 부정하고 교리를 비판했다는 이유다. 온갖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합리론의 관점에서 유대교의 유일신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스피노자가 ‘신학에서 철학을 구해낸 철학의 그리스도’라 불리는 이유다. 


    할아버지는 고향 포르투갈에서 종교박해로 할머니가 마녀로 몰려 산 채로 화형을 당하는 걸 보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프랑스를 거쳐 네덜란드에 정착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의 유대 공동체는 종교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구성원인 스피노자를 줄곧 핍박했다. 종교의 자유란 어떤 것일까?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그는 한 때 젊은 광신도에게서 칼침을 맞을 뻔하기도 했다. 


    어두운 광기의 시대에 스피노자의 철학은 빛처럼 명료했다. 그는 철학을 기하학처럼 풀어냈다. 공리가 참이면 결론도 참일 수밖에 없다. 신, 자연, 이성, 자유 같은 요소를 삼각형의 각이나 원의 지름처럼 다루면서 그는 ‘신 = 자연’이라는 범신론을 주장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논증을 마치면 맨 뒤에 ‘증명 끝’이라는 뜻의 라틴어 'QED'(Quod Erat Demonstrandum)를 달았다. 영어로 하면 ‘What was to be demonstrated’다. 


사무엘 히르첸베르크가 그린 '스피노자와 랍비들'. 출처: Wikipedia


    추방당한 철학자는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제안도 공손하게 거절했다. 자신에게 바치는 책을 하나 써 주면 평생 먹고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데도 말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교수자리도 마다했다. 돈을 받으면 그의 사고가 왜곡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책을 바쳐야 한다면, 오직 진리 그 자체에만 헌정하겠다”.


    광학의 발달은 스피노자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명징한 빛에 탐닉한 스피노자는 어릴 때 배운 유리 연마기술로 생계를 꾸렸다. 안경알을 깎고 렌즈를 다듬어 망원경과 현미경을 제작하기도 했다. 렌즈를 반질반질하게 갈고 닦으면서 미세한 유리가루가 그의 코로 들어가 허파에 쌓이기 시작했다. 진폐증(규폐증)은 폐결핵으로 이어졌다. ‘렌즈 깎는 철학자’의 직업병인 셈이다. 


    죽음이 두려운가? ‘죽음의 공포는 필연을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다’고 했다. 1677년 2월 네덜란드 헤이그의 허름한 다락방을 찾아온 친구와 함께 평소처럼 닭죽을 먹고 하숙집 주인과 더불어 잡담을 나눴다. 그날 저녁, 주인이 찾았을 때 그는 ‘코나투스’(Conatus. 삶의 의지)가 꺼져 있었다. 향년 44세. 재산은 딱 장례비 정도만 남겨 놓았다. 


    스피노자는 언제부터 ‘사과나무’를 심을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시신마저 바로 사라져 훼손당할 만큼 험악한 분위기 속에 하숙집 주인은 조용히 스피노자의 유언을 실행했다. 장비, 의자, 침대 같은 유품을 정리하면서 책상은 따로 갈무리해서 암스테르담의 한 출판사로 보냈다. 몇 달 뒤,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에티카’(Ethica)가 무사히 출간됐다. 'QED'.


    [진폐증] Pneumoconiosis 塵肺症


    진폐증은 먼지가 쌓여 상처가 생기기면서 허파가 굳어지는 질환이다. 숨이 차고 기침과 가래가 나오며,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다. 먼지가 많은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걸리기 쉽다. 큰 먼지는 기침으로 배출되지만, 작은 먼지가 허파에 쌓이기 때문이다. 심해질수록 숨을 쉬기 어렵고, 감염이 잘 되기 때문에 폐결핵이나 폐암으로 악화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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