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정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몬숲 Aug 29. 2024

머저리 콤플렉스

영어 유치원 한국인 선생님으로 취업했다. 인수인계를 받고 있는데 전임자의 말로 인해 스트레스받고 있다. 나보다 어리고 못생겨서 더 화가 난다. 첫날 그녀는 미소를 가진채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녀가 퇴사하려면 내가 뽑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오기 전날 온 신임은 바로 그 당일날 퇴사를 통보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내가 어떤 전공을 했고 무슨 일들을 했고,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여부 등등의 호구조사를 했다. 나는 호구처럼 일일이 다 대답을 해주었고 그녀가 귀엽다고 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입사한 지 2일 차가 되자 그녀는 나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전임자의 텃세인지, 신임 길들이기 인지. 말하는 것 하나하나 자신의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그녀는 특유의 깔보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1일 차에 그녀가 지나가듯이 말했던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 그녀는 한숨을 먼저 쉬고 대답했다. "유치원에서 일해보셨다면서 왜 모르세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그저 웃으며 그녀를 대했다. 


3일 차가 되는 날. 그녀는 오늘도 한숨을 푹푹 쉬며 묻는 것엔 대답해주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나는 시스템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물었는데 그녀는 그건 나중 이야기고요 하면서 결국 가르쳐주진 않고 이미 제가 알려드렸잖아요. 라면서 입은 웃고 있지만 눈으로는 욕을 하고 있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나는 그녀에게 저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어제 왔다고) 제가 모른다고 생각하고 하나씩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나는 지금 너를 엄청 참고 있다는 표정으로 심호흡을 한다. 네가 대체 뭘 참고 있는데 


3일 차 되던 날 아침, 그녀는 나에게 아이들의 책상을 세팅하라고 했다. 나는 2일 차에 배웠던 대로 했다. 그녀는 책상을 내가 세팅하기 전의 상태로 돌리면서 오늘은 뮤지컬 활동이 있는 날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책상 세팅하라고 했는데 왜 다시 원상태로 돌리는 거냐고 했다. 그녀의 발작버튼이 눌렸다. 


"왜 본인 기준으로 생각하세요?" 

나의 마지노선도 뚫렸다. "이야기 해요."라고 하며 그녀의 팔을 툭 건드렸다. 

그녀는 "만지지 마세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원어민 선생님은 자리를 비켜준 건지 밖으로 나간 건지 나갔고, 나는 그녀에게 왜 나를 그렇게 답답해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책상을 세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자신은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제 배운 대로 한 건데 뭐가 문제냐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아 그럼 이건 의사소통이 잘 안 된 거네요.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선생님이 생각하는 방법이랑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게 다를 수도 있는데 뭐가 그렇게 답답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또 한숨을 쉬었고 아이들이 등원하면서 흐지부지 말은 마무리되었다. 


그녀는 내가 어떤 질문을 하던지 간에 한참을 생각하고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몇 번 반복되자 나는 다른 이들에게 내가 궁금한 일들을 해결했고, 다른 전임자들에게 부모님과 어떻게 통화를 해야 하는지, 몇 회정도가 적당한지 등에 대해 물었다. 그녀들은 내가 당연히 모른다는 것을 인지한 채로 나에게 설명해 주었고, 나는 어떤 감정 소모도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익힐 수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왜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할까. 나는 왜 이렇게 같은 종류의 인간들과 엮이게 되는 걸까. 나는 늘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뭐든지 배우고자 한다. 그런데 이 마음을 갖고 사람들을 대할 때 이런 무례한 인간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나를 통제하려 한다. 나는 그게 너무 싫고, 대처하는 방법에 있어 많이 무능력하다. 오랜만에 유튜브에 무례한 사람을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검색했다. 


아, 나는 나의 감정의 기제의 선을 상대방에게 넘겨주고 있었구나. 

내가 기분이 나빠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눌렀구나. 

나는 왜 이렇게 맹하고 순진하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걸까? 


다시 출퇴근하는 일을 고른 것은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만들고 싶었고, 밖으로 나가야 이 우울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프리랜서는 자고 깨는 시간이 내 맘일지라도 너무 정신없이 살아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나는 프리랜서 일이 잘 맞는다. 직장이 아니라 나의 업을 찾기 위해서 교육과 관련된 일을 선택했다. 글쓰기, 논술, 영어와 관련된 일에 지원했는데 여기가 제일 맘에 들었다. 정규직이고 페이가 좀 낮지만 일찍 끝난다. 그리고 영어에 계속 나를 노출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크다. 하루 종일 영어를 해야 하니 더 잘하고 싶어 진다. 


그녀가 가면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게 될 수도 있다. 학부모와 통화해야 하고, 아이들과 교감해야 하고, 원어민 선생님과 교실을 만들어가야 하고, 다른 선생님들과 소통의 문제가 생겨날 수도 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말이라는 게, 나에게는 단호함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세상에 나오면서 나는 아직도 내가 나를 보호하는 기준선을 잘 세우지 못한 것을 알게 됐다. 결국 훈련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엮이면서 그 사이에서 할 수밖에 없나 보다. 나의 울타리 안에만 있다면 안전하고 편안하겠지만 내 속에 갇혀 있게 될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내일 퇴사한다. 그냥 넘어갈 것은 걸러 듣고, 내 마음을 지켜야겠다. 물어볼 사람은 너 말고도 많아 이년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