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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과권원장 Oct 31. 2022

오늘의 환자

중풍에는 항생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매일 오전 8시부터 진료를 시작한다.


하루 최소 60명에서 많게는 100명에 가까운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기억에 남는 분들이 꼭 생긴다.




오늘 얘기하고 싶은 환자는, 고지혈증으로 정기적으로 나한테 약 처방을 받는 60대의 여성 A이다. 어느 날 오후에 예정보다 일찍 (고지혈증 약 처방을 받을 날짜가 아직 남아 있었다) 내원했기 때문에 먼저 물어보았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그러자 A는

“오늘 아침 일어났는데, 아침부터 얼굴 반쪽에 감각이 둔한 것 같고, 한쪽 팔에 힘이 잘 안 들어가요 “

라고 한다.


A는 평소에 말 수가 많지 않으며, 조용조용하게 얘기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날은 평소 같지 않게 목소리도 크고 말이 빠른 것이 확실히 걱정이 많아 보였다.


증상만 들어 보아도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는 대로 뇌경색에 대한 의심을 해보아야 할 상황이었다.  

A는 내가 대꾸도 하기 전에 이어서 말했다.


“내가 걱정이 되어서 평소 알고 지내는 한의사한테 전화를 했더니 중풍일 수 있으니까, 자기한테 오지 말고 바로 내과로 가서 항생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어요.”


중간에 말을 끊을 수가 없어서 가만히 얘기만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항생제라는 대목에서 화들짝 놀라 어쩔 수 없이 중간에 A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잠깐만요, 항생제요?”

“네, 항생제를 먹어야 한대요.”

“어머님, 중풍에는 항생제를 쓰는 게 아니에요..”


그때부터 A 와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A는 평소 그 한의사와는 잘 아는 관계이고, 그분이 진료 경험도 풍부하시고…(중략)

(나는 그 한의사분이 항생제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달 과정의 오류가 있다고 믿는다.)


“어머님, 중풍이 의심되면 신경과에 빨리 가셔서 머리에 대해서 검사를 하셔야 해요. 그리고 항생제는 꼭 필요할 때 써야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처방해드릴 수 없어요. “

하니깐 A는 발끈한다.


“그러면 내가 잘못되면 책임질 거예요? “


이 말에 나도 간신히 잡고 있던 ”친절하자 “라는 다짐을 놓쳐버렸다.


“자. 뇌경색이 의심되면 신경과로 가셔서 진료 보시고. 제가 진료의뢰서 써드릴 테니 빨리 가보세요.”


강한 도발과 협박성 발언에 나는 더 이상 설명을 하고 A를 이해시켜줄 마음도 없어져버렸다. A 또한 기분이 상했는지 인사도 없이 진료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일이 이후 앞으로 나한테 진료 보러 오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의외로 얼마 후에 찾아와서 그날에 대해 사과를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신경과에 가서 검사받고, 다행히 뇌경색은 아니었다고 들었단다.


“그때는 제가 너무 불안해서 말실수를 했던 거 같아요. ”

“아닙니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훈훈하게 화해 아닌 화해를 했고, A는 여전히 정기적으로 나한테 진료 보고 있고, 크고 작은 문제들로도 이따금씩 오고 있다.




2010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셉션“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영화다.

살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행동이나 말을 통해 서로에서 인셉션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살고 있다.


A는 걱정이 앞서는 상황에서 신뢰할 수 있는 지인에게 ”항생제“라는 인셉션을 주입받고 나한테 찾아와서 실랑이 벌였다. 영화 “인셉션”에서 현실과 꿈을 구별하기 위해 주인공들은 디카프리오의 팽이와 같은 각자마다 하나의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위기가 닥쳤을 때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평소에 자신만의 방법을 마련해두는 것이 불현듯 닥치는 위기에 대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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