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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영 Nov 16. 2022

쉬운 일과 어려운 일

비판은 쉽다. 비난은 더 쉽다.


타인의 언행에 대해 지적하고, 깎아내리고, 책잡아 흉보는 것 따위는 너무나 쉬운 일이다. 99가지의 잘한 일이 있어도 1가지의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냥감으로써 전혀 손색이 없다. 정상참작 같은 건 필수가 아니니까. 그만큼 쉽다는 이야기다.


합당한 근거로 무장한, 제대로 된 비판이 아니라면 깊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인이 창조한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 심판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이 방면에 뒤지지 않는지라, 얼마나 쉬운 일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요즘은 더 쉬워졌다.


SNS의 발달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 질투와 분노 같은 공격적 본능들을 진화시켰다. 게다가 비대면이라는 수단은 얼굴을 마주했을 때의 체면과 상식, 그리고 최소한의 예의조차 전부 허물어뜨려, 기존에 할 수 있어도 하지 않았던 원색적 표현들을 가능케 하였다.


이제는 입과 혀를 놀리지 않고도 상대를 모욕할 수 있으며, 고작 몇 줄의 활자를 손가락 삼아 조리돌림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면식조차 없는 사람에게도 마음만 먹으면 우르르 몰려가 1분 안에 깡패짓을 할 수 있는, 참 편리한 세상이다.




반면, 칭찬과 격려는 어렵다.

진심은 담은, 제대로 된 그것 말이다.


상대가 올바르게 가고 있을 때, 그에 대해 잘하고 있다고 진심을 다해 용기와 의욕을 북돋워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99가지의 잘한 일이 있어도, 칭찬을 할라치면 이상하게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저 ‘잘했어’, ‘앞으로도 잘해’와 같은 1차원적 한마디가 아니라, ‘어떠한 무엇을 이러한 이유에서 잘했는데 특히 이 부분이 좋았다’는 식으로 고민하여 이야기해 주는 일은, 적어도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남들 까내릴 때는 토론회 논객이라도 된 것 마냥 떠들어 대던 사람들이, 칭찬이라는 미션 앞에서는 느닷없이 표현에 서툰 꼬마로 회춘하는 이유도, 단순히 생각하면 더 어렵기 때문이다.


SNS의 발달은 분명 칭찬의 문턱 또한 낮추었을 텐데, 아직 긍정보다는 부정의 언사들이 그 문턱을 쉽게 넘나드는 듯하다. 유독 부끄러움이 많은 우리 민족의 특수성 때문일까, 아니면 한글에 칭찬과 격려를 위한 어구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라도 한 걸까.


굳이 따지자면, 칭찬을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 아닐까. 요즘 같은 시대에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일이 쉬울 리 없으니. 퍽퍽한 현실이 우리의 언행까지 딱딱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만들고 있단 소리다.




쉬운 일을 했을 때와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어떤 경우가 더 멋지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며, 스스로도 뿌듯한 일인지는 자명하다. 그러니 쉬운 일만 하려고 하지 말고 어려운 일도 좀 하면서 살자.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질투와 분노는 잠시 접어두고,

수많은 핑계들은 차치하고,


한번 해보는 거다. 칭찬과 격려가 돈 드는 일은 아니지 않나. 막상 해보면 아마 본인의 기분도 썩 괜찮을 거다. 오히려 상대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고.


아, 물론 나 자신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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