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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영 Nov 06. 2022

그날의 분위기

그런 날이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날.

 

이런 날은 일어나는 순간부터 상쾌하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쉽사리 눈이 떠지고, 부랴부랴 서둘러도 시간이 모자란 아침에 천천히 준비하는데도 여유가 있다.

 

시작이 좋아서인지, 그날은 하루가 경쾌하다.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도 평소보다 효율이 좋고, 웬만한 일에는 짜증도 나지 않는다. 내가 기분이 좋으니 사람들을 만나도 웃을 수 있는 순간이 많고,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게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다시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온종일 발걸음이 가볍고 기분이 산뜻하다.

 



반면에 그런 날도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가 매사에 어긋나는 날.

 

이런 날은 대개 아침부터 몸이 무겁다. 알람이 아무리 울려도 눈꺼풀이 천근만근이고, 서둘러 준비해도 이상하게 시간이 촉박해서 마음이 조급하다.

 

시작부터 이 모양이니, 그날은 하루가 경쾌할 리 없다.

 

만사가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짜증부터 난다. 약속이 있으면 취소할 궁리부터 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누군갈 만나더라도 그다지 즐겁지가 않다.

 

무거운 하루를 한시라도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보지만, 이런 날은 꼭 머피의 법칙처럼 내 마음과 달리 하루에 그치지 않고 여러 날 동안 이어진다.



 

어깨 위에 누군가 올라타 내려가지 않는 것 같은 나날들이 반복되면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괜찮지 않은 날들이 쌓여서 내가 진짜로 괜찮지 않아질까 봐.


그럴 때, 나는 강제로라도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노력한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본 결과, 내가 경험한 가장 좋은 방법은 ‘괜찮았던 날의 나‘로 돌아가 보는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는 없으니, 최근의 괜찮았던 하루를, 그날의 나의 행동과 주변 환경을 떠올리고 그대로 복기해 본다. 마치 백업해 두었던 자료를 다시 불러오듯이, 그날의 분위기를 불러와 지금에 덮어 씌우는 것이다.

 

전날 밤에는 무엇을 하다 잠들었는지, 그날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아침은 챙겨 먹었는지, 회사에 가서 커피를 마셨는지, 누구를 만났는지까지. 그날의 나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따라 해 본다.

 

너무 깊게 생각하거나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하루 이틀 정도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왠지 모르게 괜찮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사실 그 정도면, 하루가 보통의 어떤 날로 돌아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 무거운 날의 분위기에서는 탈출하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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