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영 Nov 18. 2022

수능과 변명

어제는 수능일이었다. 이제는 그저 연말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날이자 교통체증 방지를 위해 10시에 출근하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하루다.


예전에는 달랐다. 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확실히 달랐다. 나는 재수를 했기에 두배로 특별했다. 간절하고도 간절했던 하루. 십 대 후반부와 이십 대 첫 번째 해를 갈아 넣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이야기다.


나는 수능을 두 번 봤다. 두 번째에는 첫 번째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어야 함이 인지상정이나, 고3 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점수를 받았다. 재수생으로서는 실패한 셈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실패라기보다는 성과가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 하겠다.


여기에는 몇 가지 변명이 있다. 독학으로 버텼던 재수생활의 고독함도 있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했던 과목의 난이도가 너무 낮게 나온 것도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명거리, 점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건, 두 번째 수능일 2교시에 있었던 일이다.




드르륵-


시험장의 미닫이 문이 열리고 감독관이 들어왔다. 아뿔싸. 그의 얼굴, 정확히는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낭패의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도대체 왜 하필 여기에. 많고 많은, 널리고 널린 시험장 중에 왜 하필 여기 내 앞에.


그녀는 나의 중3 담임교사였다. 나를 싫어했고, 그랬기에 불편했던 사람. 먼저 잘못한 건 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3 짜리에게 이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게 맞나 싶었던,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히스테릭한 사람. 내 인생을 통틀어 유일하게 관계가 좋지 않았던 선생. ‘님’ 자를 붙이고 싶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상황. 그러나 수험생 따위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놀란 마음을 최대한 빨리 진정시키고, 머리는 책상에 처박은 채 문제풀이에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리. 또 하필 자리가 가운뎃줄 가장 앞이었기에 고개만 들면 감독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수리영역의 시간은 무려 100분. 고개를 들고 싶지 않았으나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재수생활 절반 이상을 수리에 바쳤던 터라 40분 이상이 남아버렸다.


결국, 나는 엎드렸다. 시험을 치르는 중에 잔다는 것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나에게 없는 일인데. 오직 그날, 가장 중요한 날 눈을 감았다. 슬슬 목이 아파왔고,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다.


재수생이라는 것, 어찌 됐든 한 번의 낙오를 경험했다는 것을 싫은 사람에게 들킨 창피함과 수치스러움. 그리고 스멀스멀 나를 조여 오는 불쾌함까지. 시험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인데, 감독관의 존재 따위에 심력이 소모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지리한 시간이 흘렀고, 2교시는 종료되었다.


이어진 쉬는 시간, 재수생이라 친구도 없었기에 방금 본 시험지를 뒤적이다 어이없는 실수를 발견하고 말았다. 평소의 나라면, 엎드려있지 않았다면 충분히 고쳤을만한 실수. 차라리 못 봤다면 좋았을 텐데, 괜스레 그것을 확인한 후부터는 평정심을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남은 시간 내내 체한 듯 답답한 기분으로 꾸역꾸역 문제를 풀었고, 그 결과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좋지 않았다. 1년이란 시간과 그간의 노력들이, 그토록 허망하게, 한나절의 우여곡절로 끝나버린 것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두 번째 수능일에 있었던 일이다.


읽다 보면 감이 오겠지만, 맞다. 장황한 핑계이자 변명이다. 나도 그걸 잘 알기에 주변인들에게 쓸데없이 주절거렸던 적은 없다. 그저 혼자만 알고 있는, 과거의 실패와 부족함을 자위하기 위한 에피소드일 뿐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내가 삼수를 하지 않은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나의 의지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마치 천재지변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이 일만 없었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른 변고가 생기지 않는다고는 절대 보장할 수 없었기에. 제자리에서 불확실한 세 번째 턴을 기다리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 다음 게임으로 진입하는 것을 택했다.


요즘에는 예전에 비해 대학을 가는 방법이 다양해졌다고 들었다. 정시든 수시든 한 해동안 수험생에게 주어진 기회가 더 많아졌다는 소리다. 개인적으로, 나는 원래 수능은 3번 정도 치른 후 잘 나온 점수를 택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꽤나 바람직한 변화라고 본다. 물론 이것이 또 다른 불공정을 가져올 수도 있겠으나, 일단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 말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여전히 수능은 대학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관문이다. 그러니 아무쪼록, 어제 수능을 치른 약 50만 명의 수험생들에게는 내가 겪었던 황당한 해프닝이 없었길 바란다. 만약 있었더라도, 그로 인해 만족할만한 성적을 얻지 못했더라도, 그것은 본인의 부족함보다는 갑작스러운 사고의 탓이니 너무 자책하지 않길 바란다.


가끔은 나를 나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수능처럼 중요한 일에서 성과를 얻지 못했을 때, 나를 갉아먹는 본인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나고 나면 생각보다 별일 아닐 수 있으니, 적당한 타협점과 변명거리를 발판 삼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게임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최선을 다한 자에 대한 보상은 넥스트 레벨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쉬운 일과 어려운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