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량적이고, 수치적으로 생각해 보자.
전 세계 인구 가운데, 민주주의 체제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약 48.4%(2019년 EIU 민주주의 지수 참조). 우리는 운 좋게도, 동전의 앞면이 민주주의를 가리킨 덕에 주권을 갖고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군사, 경제 등을 고려한 10대 강대국의 국민이 될 확률은 약 19.1%. 다시 전 세계 인구 중에서는 약 9.3%(2022년 USNWR 발표 참조)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 지구상의 90%가 넘는 사람들보다 살기 좋은 배경과 출발 조건을 얻은 것이다.(물론 여기에는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보다, 강대국이 약소국보다 살기 좋은 조건이라는 전제가 생략되었다.)
그럼 우리나라 안으로 들어오면 어떨까.
우리가 흔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삶.
부모가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특별한 장애 없이 살며, 기본 교육과정을 거쳐 대학까지 졸업하고, 취업을 하든 창업을 하든 본인 밥벌이를 하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려가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자.
부모가 둘 다 있는 가정에서 자랄 확률 74.8%.
(2021년 기준 국가통계포털 참조, 특수 상황 제외)
별다른 장애 없이 살아갈 확률 94.9%.
(2020년 통계청 발표자료 참조)
25~34세 사이 대학을 졸업할 확률 69.3%.
(2022년 OECD 발표자료 참조)
15세 이상이 된 후 취업에 성공할 확률 62.7%.
(2022년 통계청 발표자료 참조)
15세 이상이 된 후 결혼에 골인할 확률 68.9%.
(2020년 기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통계 참조)
결혼 후 2세를 낳아 함께 지낼 확률 62.0%.
(2021년 기준 국가통계포털 참조, 특수 상황 제외)
고로,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가능성은 대략 13.2%.
여기에 이 땅에서 태어날 확률까지 곱하면 약 1.2%.
이것은 곧, 전 세계 인구를 100명이라 가정했을 때,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가장 노멀한, 스테레오타입의 삶을 사는 사람이 고작 1명에 불과하다는 것과 같다. 이렇게만 보면, 사실상 ‘선택받은’ 사람인 것이다.
물론 그 1명이 나머지 99명 보다 특별히 대단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가 평범하다거나 시시한 삶을 산다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 어찌 됐건 100명 중 1명인데, 당연히 평범보다는 비범에 가까운 것 아닌가. 여기에 연봉이나 자산 등의 경제적 조건, 질병이나 유전 요인 등의 건강, 신체적 조건까지 따지면 확률은 순식간에 복권 당첨의 그것과 맞먹게 된다. 시간 관계상 거기까지 계산하지는 않겠다.
상기의 모든 확률은 현시점 기준인지라 생애주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계산에 용이하도록 내 마음대로 각색한 부분이 있기에 통계적 가치는 제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건, 비범함이란 결국 평범함이 쌓인 결과라는 것. 그리고 평범함을 쌓아 올린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며 개인의 의지대로 되지도 않는다는 것. 당신의,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비범하고 특별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뭐, 그 정도이다.
나열한 조건들 중 몇 가지에 본인이 부합한다면, 혹은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평범함 가운데 본인이 갖춘 것이 존재한다면, 쏟아지는 기사들 속 넘쳐나는 확률들을 읽다 본인에 해당되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거나 즐거워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안도를 느끼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더욱 비범해져 가는 본인의 모습을 관찰하며. 앞에서 열심히 설명한 바와 같이, 사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비범한 사람들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