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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sel Aug 17. 2024

승려와 수수께끼 책 리뷰

창업이란 무엇인가

4개월 간의 길다면 길고 짧았던 이직활동이 마무리되고, 이제 드디어 한숨 돌리고 미뤄뒀던 독서를 하고 있다. 이 책은 내가 25살에 취업에 성공하면서 선물 받았던 책인데, 문득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꺼내게 되었다. 그리고, 30살이 된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날 아껴주시던 리더 분이 왜 이 책을 선물해 주셨는지 알 것 같다. 


이 책에서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자이자 철학자라 불리는 랜디 코미사(Randy Komisar)는 레니라는 가상의 예비창업자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창업'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인상 깊은 내용들이 있었는데 그 내용들을 중심으로 내 경험들과 엮어 리뷰해보고자 한다. 



벤처캐피털리스트가 궁금해하는 것은 세 가지이다. 시장의 규모는 큰가,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 대부분을 점유할 수 있는가, 이런 작업이 가능한 팀원들이 구성되었는가? 

- 게임의 법칙-


나는 식품계열 대기업에서 온라인 MD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한해에 수십 개의 신제품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는데, 수십 개의 신제품 육성을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느꼈던 점이 있다. 어떤 형태의 제품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신제품은 큰 시장 혹은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왜냐하면 시장 규모가 큰 곳에 속한 신제품은 시장점유율은 낮을 수 있더라도 절대적인 매출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재직 당시 런칭했던 간편 밥이 있었는데 런칭 당시만 하더라도 제품의 특장점이 없어서 거의 팔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주일 만에 온라인 경로에서 매출액 1억 원을 찍으며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1달에 500만 원도 판매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주식이 밥인 시장이다. 특히 1인 가구, 젊은 세대가 대거 포진돼 있는 온라인 시장의 경우 간편 밥 판매율이 매우 높다. 제품이 특장점이 크게 없더라도 어느 정도 광고비를 투자하면 매출은 발생한다는 걸 이때 배웠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비운의 제품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딤섬이었다. 런칭 당시 맛이 워낙 좋고, 경쟁사가 없기 때문에 겨울철 만두의 대체재로 잘 판매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딤섬은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생소한 제품이고, 어마어마한 광고비를 투자하지 않는 이상 딤섬 시장이 거의 부재한 상태에서 냉동 제품으로 딤섬을 판매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건 신사업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시작하고자 하는 사업의 시장의 규모와 만들어내는 제품 혹은 서비스의 차별점이 중요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큰 시장에서 시작한 제품 혹은 서비스가 규모의 경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투자는 확률 게임이 아닌가? 벤처캐피털리스트들도 결국 큰 시장에서 큰 시장점유율을 차지할 회사에 투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왜 당신이 funerals.com을 시작하려고 하는지 알고 싶군요.' 

"벤처 시장에서 저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요. 그 밖에 뭐가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나 돈을 벌면 무엇을 할 생각인가요? 이자나 챙기며 살기에는 너무 젊잖아요.' 

"하고 싶은 일들이 몇 가지 있긴 합니다."

아, 문제의 핵심이군. 

- 가상의 ceo - 


1단계 : 해야만 하는 것을 해라

(그렇게 미룬 후, 궁극적으로)

2단계 :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라 

- 미뤄놓은 인생설계 - 


랜디는 해야만 하는 것을 먼저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미루는 모습을 '미뤄놓은 인생설계'라 부른다. 그리고 레니가 하고자 하는 사업은 궁극적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라 정의한다. 왜냐하면 해야만 하는 것을 하는 것은 의지로 발현되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열정으로 발현되기 때문에 수많은 실패 아래에서 의지는 꺾일 수 있지만 열정은 꺾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랜디는 창업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자연스레 1단계인 해야만 하는 것도 자연스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은 '나는 과연 나의 인생설계를 미루고 있는가?'였다. 그리고 대답은 울적하지만 'YES'이다. 줄곧 '창업을 해보고 싶다.'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난 직장인이고, 직장 안에서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분리하면 살아가고 있다. 직장 안 수많은 이해관계 안에서 과연 '하고 싶은 일'을 높은 비중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까지 난 하고 싶은 일의 20%만 할 수 있더라도 아주 좋은 회사라 생각하고 있다.


첫 직장에서는 운이 좋게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웬만해서는 다 할 수 있던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웠고, 주말에도 일 생각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 이유로는 첫째 대기업답지 않게 일개 신입사원에게 수많은 권한과 예산을 투자해 줬다는 점이고, 둘째 내가 온라인 유통을 나중에 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어서였던 것 같다.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해보면서 시행착오를 겪어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위에서 랜디가 말하는 1단계와 2단계를 직장에서 실현하고 있었기 때문에 괴롭기도 하지만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사실 그렇게까지 즐겁진 않았던 것 같다. 업무 강도는 첫 직장에 비해 훨씬 낮았지만, 도메인이 나와 잘 맞지 않다 보니 흥미를 많이 잃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2단계 없이 1단계만 하려고 하니 힘들어한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두 번째 직장에서는 Product Manager라는 새로운 직무를 처음 경험해 보고 대기업을 떠나 스타트업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는 게 재미있었다. 더불어 두 번째 직장에서는 여러 개의 회사를 경험한 그리고 리더십을 발현하는 데 숙련된 리더들이 꽤 많이 포진돼 있었는데 이들 옆에서 리더십과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배워볼 수 있다는 게 즐거웠어서 첫 직장과 유사하게 근속연수를 가져갔던 것 같다. 



캠벨은 제품 지원만 하더라도 비용으로 간주하지 않고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로 생각했다. 초점은 늘 고객, 직원, 협력업체, 주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치에 두었으며 그들이 그 가치와 상대방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나(랜디)는 그를 존경했지만 처음에는 빌의 철학에 반대했다. 사업이란 관리가 가능하고 예측과 측정이 가능한 과정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모든 게 간단명료하고 확실해야 한다고 믿었다. 관리자들은 업무가 제시간에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캠벨의 사고방식은 나의 관점에서는 비효율적이었다. 너무 부드럽고 흐릿하며 복잡한 문제들이 많았다. 

- 핵심을 찾아라 - 


사실 일을 하다 보면 랜디와 같은 사고방식에 빠지기 쉽다. 일은 넘쳐나고 시간은 늘 부족하니깐, 사람을 중시하는 모습들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자칫하면 이상만을 쫓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늘 명심해야 하는 게 있다. 어떤 사업, 제품, 서비스든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협조를 구하는 모든 과정들은 비효율이라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물론 모든 문제를 관계 중심적으로 해결하자는 게 아니다. 일에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혼자 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계약 실패 후)

나는 계약에 있어 캠벨의 사고방식을 적용했다. 내 역할은 협상 당사자 간의 차이점이 아닌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었고, 그 공통분모를 든든한 인간관계와 업무로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 핵심을 찾아라 - 


어떤 일이든 공통분모는 반드시 존재한다. 협상하는 사람과 같은 회사라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회사의 목표에 부합하는가의 관점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협의가 되는 경우들이 많다. 그게 아니라 만약 다른 회사라면, 상대방이 원하는 부분과 내가 원하는 부분의 공통분모를 찾아서 연결한 후 서로 윈윈구조를 가져가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첫 커리어 MD로 시작하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과 협의를 해왔었다. 가격부터 비용까지 일하는 거의 모든 순간마다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협상을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능숙하지 못해서 내 손익만 챙기기 바빴다. 그러면서 한차례 외부 거래처와도 관계가 망가진 적이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날수록 협상 시에 나의 이익만 내세우기보다는 공동의 이익을 중점으로 말하면서 나도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는 걸 배웠던 것 같다. 



그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기 위해 가장 덜 위험한 길로 갈 수 있을지였다. 그 결과 모순적이게도,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위험한 방법인 평범함을 택했다.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다. 

밸리는 실패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애기 위해서 위험 수위를 조절하기보다 성공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에 집중한다. 실패는 성공을 위해 거쳐야 하는 부분이다. 

- 도전 - 


이 책에서 레니는 Funeral.com의 사업모델을 단순하게 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장례식 용품을 온라인에서 싸게 파는 모델을 택했다. 그리고 그는 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장례식 용품은 마진이 높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본인의 마진을 줄여서 판매하면 소비자들이 모일 것이고, 규모의 경제를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러한 사업모델에는 다른 사람들을 현혹할 만한 어떠한 꿈도 비전도 없었다. 랜디는 이러한 레니의 선택을 위처럼 비판한다. 


살아가면서 돈이든 시간이든 투자를 할 때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하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 이유는 그 길이 가장 덜 위험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건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리스크를 관리한다는 명목 하에 가장 덜 위험하고, 가장 쉬워 보이는 길을 선택해 왔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선택이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그간의 내 선택은 성공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들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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