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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계단 Apr 03. 2023

1. 쭈뼛쭈뼛 방 보러 다니기

2017년 2월 말, 서울취업에 성공하여 첫 출근을 앞두고 원룸을 구하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본가에서부터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회사 근처에 방을 구해야겠거니 생각하여 직방 앱으로 살펴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원하는 예산으로 나온 매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서울에 가서 살펴보면 방법이 나올 것이라고 나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걱정은 사라지질 않았다.

4시간에 걸쳐 아버지가 운전을 했고, 우선 출근할 회사 앞에 차를 세웠다. 부모 품을 떠나 혼자 살게 될 자식이 어떤 일터에서 근무하게 될지 궁금해하셨기 때문이다. 회사 건물을 한번 쭉 보시고는 근처 부동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문을 연 부동산이 없었다. 걱정이 됐다. 방도 못 구한 채로 본가에 내려가게 될까봐.


그렇게 몇 분 정도 주변을 계속 살펴봤다. 문을 연 부동산을 발견했다. 들어갔다. 그동안 친구들이 자취방을 구할 때 몇 번 따라다녀 본 경험이 있어, 별 어려움 없이 부동산 중개인과 얘기를 나눌 것이라 생각했으나 부동산에 들어가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부동산에 들어간 후,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방 좀 보러 왔는데요, 보증금 500에 월세 50정도 원룸 나온 게 있나요?”

70대 정도의 느긋해 보이는 남자 사장님이 대답했다.

“마침 이 앞에 딱 500에 50짜리 원룸이 하나 있는데, 보러 가시죠”


사장님을 따라갔다. 부동산에서 도보 3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건물에 들어갔다. 사장님은 보여줄 방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눌렀고 문을 열어주셨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엄마가 내뱉은 첫마디. 

“이야~고시원 살 때보다 훨씬 넓다~”


따지고보면 그 방이 완전 첫 자취방은 아니었다.

2016년 여름, 현장실습으로 인해 나 포함 과 동기들 6명이 함께 서울의 한 고시원 건물에서 한 달 동안 함께 산 경험이 있었다. 학생이라 돈은 없었기 때문에 좁아터진 2평짜리 고시원 방 하나에 2명이서 같이 먹고자고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선발대로 나선 동기 몇 명이 먼저 서울에서 고시원을 구한 상태라 내가 방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진 않았다.


그 당시 고시원 방을 본 엄마는 이런 좁은 곳에서 어떻게 두 명이서 지내냐며 약간 울컥해 하셨다. 고시원 방과 비교해서 본 500/50 원룸은 엄마 눈에선 엄청 넓어보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당시 정말 아무것도 모를때라 이게 원룸치고 방이 좁은건지 넓은건지 기준이 없어 엄마가 하는 말이 맞겠거니 싶었다. 계약서상에는 5평이라고 되어있었으나, 내가 입주 후에 실측해서 계산해본 실평수는 4평도 되지 않았다. 3.5평 정도?


엄마는 차근차근 방을 살펴보았다. 수압도 체크하고 쭉 훑어보았다. 나는 그 옆에서 멍하게 서있기만 했다. 내가 살아야 할 방인데. 진짜 멍청하게 서있기만 했다. 화장실 세면대 물을 틀고서 동시에 씽크대 물도 함께 틀어보라는 엄마의 말만 묵묵히 따랐다. 그게 부동산 사장님이 옆에 계셔서 더욱 아무것도 못한 채로 쭈뼛쭈뼛 서있기만 했다. 나랑 가족들만 있었어도 뭐를 살펴봐야 할지 잘 몰라 어리바리 했을텐데 제3자가 옆에 있으니 더 경직이 된 것이다.


나중에 유튜브 ‘안선생’ 채널에서 본 팁인데, 처음 방을 보러 간다면 그 전에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있는 집이나 친구의 집을 대상으로 방을 보러온 것처럼 행동하는 예행연습을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래야 실제로 처음보는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방을 보러 가도 머뭇거리거나 어색한 행동을 좀 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좋은 팁인 것 같다. (후에 전세를 구할 때 많이 참고한 채널이다. 자취방을 구할 예정인 사람들이라면 꼭 보는 걸 추천한다) 나는 그때 엄마가 옆에 없었으면 그냥 방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나왔을 것 같다.


사장님은 관리비가 얼마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셨다. 엄마는 계약을 하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계속해서 여기로 하자고 나를 설득했다. 보증금을 부모님이 지원해 주시기로 했고, 방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아니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집을 이렇게 하나만 보고 바로 계약하는 게 맞나? 집은 낮에 한번, 밤에 한번 꼭 2번을 봐야된다고 했는데 이렇게 덥석 결정해도 되는건가? 걱정을 했지만, 엄마의 직진에 그냥 따라갔다. 성인이었는데도 뭐 하나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나이만 먹은 어린애였다. 그렇게 (정식으로 보증금을 내고 살게 된 원룸형의) 첫 자취방은 전적으로 엄마의 주도하에 구하게 되었다.


두번째, 세번째 자취방은 혼자 구하러 다녔는데, 처음 해보는 게 아니었음에도 중개인이 옆에 있으면 빨리 보고 나가야 할 것만 같고 세세하게 체크를 못하는 느낌이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기존 세입자가 방에 있을 때는 더욱 더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예행연습도 좋고, 자취방을 구하러 다닐땐 누구 한 명이라도 데려가서 같이 보는 걸 추천한다. 친구든, 부모님이든, 형제든 자취방 구하는 걸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좋으니 내가 같이 있을 때 마음이 편한 사람과 동행을 하면 이건 어떻다, 저건 어떻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좀 더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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