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년간 가드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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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유를 부려보며 글을 적어봅니다.
웬일로 점심을 먹고 여유가 생겨 노트북과 에티오피아 드립백을 내려 야외 분위기를 내며 베란다에 앉아봤습니다.
이러려고 만든 공간이기도 하고,
이제 베란다 정도엔 앉아서 글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기온이라는 증거겠죠??
슬프게도 길러 오던 아이들이 초록별로 떠나 베란다에 제가 앉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겨울이 지나가나 봅니다. 다시 봄이 오나 봅니다.
다시.
끝나지 않을 거 같은 모든 것은 언제나 끝이 나기 마련인 거 같습니다.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모든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끝맺음을 하더라고요.
초록 친구들과의 만남도 헤어지게 되고, 봄은 겨울로 겨울은 다시 봄으로 흘러갑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동화책에서의 결말은 그 자체로 동화 같은 결말인 듯합니다.
그 막연한 행복도 결국 언젠가 결말을 맺기도 하고, 또 다른 행복이 찾아오는 시작과 끝의 연속이니까요.
그래서 무탈하면서도 다사다난하게 지나간 1년을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이 순간을 체류하는 저의 초록색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봄이 되고 회사에선 남는 땅을 '경작'할 수 있도록 '대여'해주겠다는 이야기가 있어 야래향과 국화정도는 무난히 키워내다가
내가 먹을 건 직접 길러보자는 생각에 땅을 빌리기러 하였고, 모종부터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작지만 밭단위로 키우려고 하니, '상추값정도 아껴보자'라는 저의 생각에 비해서 모종값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거 같았습니다.
다이소에서 발아부터 시작해서 잘 키우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첫 도시농부의 한걸음으로 고민한 작물은 '바질'과 '상추'였습니다.
자라나는 미래의 바질페스토
햇반 그릇을 구멍을 내고, 나중엔 다른 소작농들이 심고 버린 모종판을 주워다가 키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광량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알리에서 식물등을 구매했더니 식물등의 빛을 맞기에 공간이 너무 남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죠. 그렇게 개미지옥으로 스스로 걸어가는 저였습니다.
모종부터 시작하니 처음의 몇 주의 기다림은 너무나 막연했지만 처음 떡잎을 보이면서부터 내 새끼 같아 애정이 더 생기기도 하고
'발아'라는 과정이라는 게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는 어렵지는 않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대파'와 '고수', '방울토마토'도 발아를 도전했습니다.
심지어 암발아라는 무시무시한 어려움에 마구잡이로 씨앗을 발아시켰는데 제 상식선에서 말도 안 되는 높은 확률로 성공했습니다?
지금 보니까 정말 열심히... 살았던 도시농부...
다만, 발아 기간 동안 제 땅을 노리는 다른 소작농들 때문에 무리해서 모종을 심었던 것이 화근이 되어
밭이 미어터져 집에서 기르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작은 친구들은 나눔을 하기도 했고, 부족한 화분은 만들어서 쓰기도 하고. 사실 만들어서 쓰는 게 좋았습니다. 이쁘진 않았지만, 재활용이라서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손바닥만 하던 바질잎
고기를 싸 먹기 충분하던 나의 귀여운 상추
집에서 이렇게 기르다 보니 밭에 소홀해지더라고요. 밭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지내는 애들보다는 '온실 속의 화초'라는 말 같이 화초들이 야들야들해서 더 맛있더라고요. 그렇게
아기아기하던 녀석들이 부쩍 자라나서 수확을 할 땐 한편으로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러면서 맛있던지)
그래도 떼어내야 또 자라나고 성장하니까요.
약간은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작고 소중했던 멀칭 따위 사치였던 나의 밭
가만히 둬도 성장하지만 비도 맞고, 바람도 맞고, 햇볕도 맞아야 더 강하게 크고 더 많이 배우는 것처럼요.
초록친구들을 키우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느꼈습니다. 베란다에 앉아 얼마나 자랐나 확인하는 것도 즐거워서 하루에 한두 시간은 저 친구들 구경하고 물을 주기도 하고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실하게 잘 자라준 밭과 베란다의 초록친구들을 잘 잡아먹었습니다.
밭에서 무성히 자라던 토마토
점심시간에 밭에서 토마토를 따서 근무 시간에 먹기도 하고, 출퇴근의 차에서 먹기도 하며
회사에 있는 밭으로 옮겨 심은 토마토로 수확도 해서 여름엔 토마토를 사 먹지 않았었네요.
그리고 제가 기른 토마토가 더 달고 맛있더라고요. 다 익고 수확해서 그러는지.
주말에 손님이라도 와서 쌈채소가 필요하면 퇴근을 하며 밭에서 상추를 뜯어가 저녁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저녁의 쌈채소
바질페스토도 해 먹고, 고기 구울 때 올리기도 하고, 제가 키운 작물들로 저녁상을 준비하기도 하니 괜찮더라고요.
한 여름의 뙤약볕을 제외하곤 노동의 즐거움이 있기도 했습니다.
토마토도 제가 기른 토마토
이 즈음이었는지 회사 옆의 카페에서 로즈메리를 조금 뜯어 삽목을 시도했습니다.
이상하게 번번이 실패하던 게 기온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고, 작년의 많은 성공은 저를 자신감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정도면 다시 로즈마리... 도전해 봐도 되지 않을까.. 말입니다.
그리고 며칠? 아니 몇 주 기다렸던 거 같네요. 줄기에서 작고 연약한 뿌리를 하나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잎을 많이 제거하지 않아 걱정이 되기도 했고
중간에 다른 개체는 뿌리가 자라나다가 곰팡이가 생겨서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연약한 저 하나의 뿌리로도 이 아이가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견뎌내겠죠.
생명은 강하니까.
초록별에 간 나의 첫 삽목 성공 로즈마리
그렇게 자리를 잘 잡고서 저의 줄기 역시 생장점이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어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고 옆으로 V자를 내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작고 귀여운 토분에다 귀여운 외목대로 키워보겠다는 생각에 너무나 즐거웠습니다만 여기서부터였죠.
다이아시아. 그 녀석이 문제였습니다.
초록초록 먹는 것만 기르다 삽목도 성공하다 보니 꽃이라는 것도 좀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어디 이름 모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저렴하게, 조금은 기르기 어렵다는... 다이아시아의 입양 그게 문제였습니다.
망할... 응애와 총채가 묻어왔나 봅니다...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총채 없는 초록별에서 행복해라
온 집안에 다 퍼져서 공간을 따로 두던 아이들도 습격을 받았고
어렵게 삽목을 성공한, 함께 성장등을 맞던 로즈마리도... 결국은 얼마 안 되어 초록별로 보내버렸습니다.
심지어 거실에 있던 틔운에도 총채가 판을 치더군요...
충격적이었습니다.
심지어 데려온 다이아시아 역시 과습으로 물꽂이 하다 포기하고 보내버렸습니다.
얘 때문에 우리 집의 모든 친구들이 떠나갔다 생각하니 기르기 싫더군요.
다이아시아의 생전 마지막 모습
자신감도 많이 잃었고, 나눠줬던 친구들도 잘 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옴에도 우리 집은 총채의 습격으로 모두 떠나보내니 너무나 허망하더군요.
다음엔 조금 더 제때에 대응을 할 수 있는 하나를 배운 거라고 생각하려고요.
그리고 식쇼는 정말 조심히 믿을만한 곳에서 해야 한다.
오자마자 분갈이를 해야 한다? 혹은 그런 걱정 없이 처음부터 내가 키우자?
그렇게 상실하며 배우나 봅니다.
살아남은 건 토마토 정도...??
사실 상추는 슬슬 꽃대가 올라오면서 이파리가 줄어들고 있어 수확을 마무리 지을 시기로 가고 있긴 했습니다.
원치 않게 빠른 이별을 하니 참... 슬프더라고요. 바질은 아직 보낼 때가 아니었거든요.
꽃대가 보이는 족족 끊어내며 저와 영생을 함께 하기러 약속했었는데 말입니다.
조건이 맞지 않았던 건지 집이 추웠던 건지... 산성도가 안 맞았던 건지.. 어렵게 싹을 틔우고서 쉽게 보낸 나의 똠형제들
맞는 방법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에프킬라 살충제를 며칠을 흙에다가 들이부었더니 슬슬 없어지더라고요.
하지만 그땐 우리 친구들은 대부분 떠나고 대파와 총채가 드글거리는 고수 정도 살아남았나 봅니다.
고수가 자라며 고수의 향이 벌레를 부른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고수는 웃자람이 심했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했어요.
결과적으로 2024년은 바질과 상추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어 고수와 대파(커지지 않아 쪽파였지만..), 토마토 재배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지금은 과습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로제
지금은 자리를 잡고 있는 크리핑 로즈마리 파스타
모든 초록친구 중 가장 마음 아팠던 건 로즈마리입니다. 제가 이렇게 집에서 가드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나는 왜 매번 로즈마리를 죽이는가...?"에서부터 시작됐던 거였거든요.
그리고 다시 한번 로즈마리의 삽목을 시도했어요. 앞서 꺾어왔던 카페에 부탁을 드리고 한번 더 조금 꺾어왔어요.
'로제'는 노지에서 자라는 커먼 로즈마리였고 '파스타'는 실내에서 자라고 있는 크리핑 로즈마리였습니다.
그냥 생김새만 다른 친구들인 줄 알았는데... 키우는 난이도도 다르더라고요? 겉은 비슷해도 사람 속이 모르는 것과 비슷한가 봅니다.
다시는 못할 거 같던 물꽂이도 다시 성공해 내고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다만, 계절이 바뀌니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네요...)
그리고 "틔운 미니"가 생겼습니다. 생긴 건 뭐 작년 여름?
원래는 리뷰를 했어야 했는데, 블로그질에 조금은 게을러진 게 사실이니까. 그 점은 제 잘못...
지인의 생일선물로 함께한 틔운 그리고 스타터 패키지로 함께했던 비타민의 수확을 마무리하고 이번엔 메리골드를 심었습니다.
사실 비타민의 재배는 생각보다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먼저 비타민이라는 채소에 익숙하지 않았고, 활용하는 요리법이 어색해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가지를 쳐내고서 버려지는 잎들이 더 많았습니다.
해봐야 볶음을 해 먹을 때 조금 넣거나, 비빔면과 같은 친구들을 해 먹을 때 조금씩 넣어서 먹었습니다.
틔움의 첫 번째 가족이었던 비타민
그래도 자라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더라고요. 자라나는 상추만 기다리던 때와는 조금 다른 양상.
신선하니 식감은 좋았지만 "자급자족 농사꾼"의 마음으로 이걸 이렇게 비료를 줘가면서 키울만한가...? 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비타민을 키울 때 샐러드를 자주 먹는 식단이었으면 조금 더 활용도가 좋았을 거 같기도 한데,
아무튼 비타민을 키우며 틔움이라는 수경재배기가 가진 몇 가지 한계점을 조금 알게 된 거 같기도 합니다.
틔움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적어볼게요. 오늘은 근황을 이야기할 거니까.
저번에 기르면서 많이 힘들었던 고수(웃자람 + 벌레로 고생해서 보낸 나의 똠형제여...)를 심어볼까 고민하다가,
집안에 언제나 성장등을 받고 있는 녀석만큼은 다채로운 색이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수경재배에서 흙으로 돌아간 비타민
그렇게 비타민이 비료가 약해지고 성장의 한계가 있었는지 점점 시들시들해지길래 '강한 녀석은 살겠지...'라는 생각으로 흙으로 옮겨 심었습니다.
일단, 죽을 친구들에게 너무 많은 화분을 내어주는 것도 별로일 거 같아서 한 포트에 같이 올렸는데, 지금 LED빔을 맞으며 다 잘 크고 있습니다.
잎의 색깔도 다시 진해지고 있습니다. 부산의 베란다에선 버틸만한가 봐요.
(그리고 나중에 메리골드 중에서 솎아 내던 녀석을 가운데에 심어줬어요.)
성격이 맞아서 한 포트에서 같이 커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메리골드는 옮겨줘야 할지. 그러기 전에 추위와 고초에 초록별로 떠날지...
분갈이는 언제나 고민스럽습니다.
틔운 은 거실의 가운데에서 환하게 빛나 틔움에서는 관상용을 키워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온통 먹을 것들만 키우다 보니 화사한 색감이 조금 그리워지더라고요.
그리고 심지어 꽃은 말려서 차로도 먹을 수 있다니까.
그것도 나중에 좀 더 자라고 시들기 전에 시도해 봐야겠어요.
아직 아기꽃들이라서... 이런 이야기 들으면 생장이 멈추려나 말은 조심해야겠습니다.
메리골드 옆의 빈자리엔 투명 슬릿분에는 바로 어제 라벤더를 씨발아 시켜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베란다보다는 거실이 따뜻하니까요.
저번에도 떡잎 이후에 입까지 내보였다가... 뭐 때문인지 말려 죽였던 기억이 있는데...
참 어렵게 잎을 내어 보였는데 생각보다 라벤더는 키우기 어렵나 보더라고요. 씨앗이 있으니 다시 한번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저면관수 자동급수 화분을 하나 들이고 대파 아니..
종자만 대파인 쪽파들을 모두 수확하고 거기에 뭘 심을까 고심하다가.
(기존의 화분들은 다 나눔 했습니다. 공간을 너무 차지해서...)
수확량과 소비량이 비슷해질 거 같은 루꼴라를 심었습니다.
샌드위치나 토스트나, 냉동피자에도 올리고, 사려고 찾아보면 잘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많이 쓰지 않는 녀석으로 골랐어요.
한 번에 많이 먹는 상추 같은 녀석들은 수확량이 소비량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작년의 병해와 자구를 키우다 먼저 가버린 스투키의 자식들은 우람하게 자라나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얘들도 자리 한번 재배치해줘야 할 거 같아요. 흙갈이도 좀 하고. 이번엔 토분에 옮기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 합니다.
이렇게 키우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분갈이도 해주면서 키우고 있어요.
나름 잘 자라고 있어요. 비료도 주고 볕도 맞췄더니 통통해지는 녀석도 있고요.
한 녀석이 키만 너무 자라나서 알아보니 웃자람이더군요.
아무래도 조만간 물꽂이하게 잘라버려야 하나.. 생각 중입니다.
지금의 저는 계절이 바뀌면서 식물의 생장환경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잊고서 조금 많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먼저 온도, 총채사태 이후로 새로 발아를 시켰던 바질들이 냉해로 죽기도 했고...
(저는 바질이 이렇게 온도에 민감한 친구인지도 몰랐습니다.)
물만 주면 잘 크는 녀석들이라서 대충 키우다가 또 과습빔을 맞아서 로즈마리와 함께 요양 중입니다.
아... 겨울엔 물을 적게 줘야 하는군요... 제 마음은 아직도 여름과 가을에 지내고 있나 봅니다.
사무실로 피신시켰던 토마토들이 집에 돌아왔고, 과하게 성장한 모습에 순을 쳤는데,
그 줄기가 너무 아까워서 자동급수 화분에 심었는데 아니...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열매를 맺었습니다.
뭔가 환경적으로 맞지 않는 건지 꽃이 잘 펴지도 않고... 피던 꽃도 금방 시들어버리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다가 현재까지 유일하게 맺은 열매입니다.
집이고, 겨울이라서 확실히 노지에서 팍팍 익던 것과는 확연히 생장 속도가 느린 듯합니다.
성장빔을 더 쪼여줘야겠어요.
그리고 저 한알을 어떻게 해 먹어야 할지 지금부터 고민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톡 하고 따먹기엔 너무 귀엽고 작고 소중한 친구거든요.
겨우 뿌리를 세 줄기 내리던 파스타는 꽤 건강히 자라나서 베란다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금 더 가파른 성장세를 위해서 실내로 들여야 할지.. 광량 때문에 실내로 들이는 건 좀 별로인지 모르겠어요.
새로운 똠형제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요.
이렇게 저의 겨울은 맞이할 봄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가슴속의 초록 빛깔을 곱게 간직하는 겨울이 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