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 1 코리안 조르바
아빠 국민학교 시절. 지나가던 선생님께 ‘궁둥이가 커서 애 잘 낳겠네’라고 지껄였단다.
당연히 성 인지 감수성 제로의 멘트였고, 내가 선생님이라도 크게 혼을 냈을 거다. 선생님은 반성문을 쓰게 했고 그건 무려 1년 내내 등교하면 작성하게 했다. 이때가 아빠를 글씨를 잘 쓰는 아이로 자라게 한 밑바탕이 된 시기였다.
이 필체는 군대까지 이어져 손글씨를 잘 쓴다고 무려 훈련을 많이 받지 않는 행정병 중 ‘차트병’으로 뽑혔다. 내가 초등학교 때 새 학기 교과서가 나오면 항상 아빠가 사인펜으로 반, 번호, 이름을 쓴 후 비닐로 커버를 싸줬던 기억이 난다. 한치의 모서리 쪽 비닐 우글거림도 없이, 예쁘게 이름이 쓰여있는 내 교과서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6학년 때는 일기장에 부모의 맨트를 적은 글씨체를 보고 담임선생님이 ‘아버님 글씨체를 닮으렴’ 하던 말씀도 기억난다. 그래서인지 나도 초등학교 때 경필대회에서 수차례 상장을 받았던 TMI도 밝힌다.
아빠는 큰 글씨를 쓸 때면 꼭 긴 자를 가져와 연필로 기준선을 흐리게 그었다. 반듯하고 정성스럽게 글씨를 쓰고, 기준선을 지우고 나면 반듯하고 정갈한 글자가 나열되어 있다. 차트병 할 때는 전지에 항상 이렇게 글자를 썼다고 했다. 뭐 하러 귀찮게 지울 선을 그리냐고 타박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친정집 빌라에서 아빠는 총무를 맡아 소소한 안내문을 붙여 놓곤 하는데, 가서 보면 기준선을 그었다 지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짧은 문장을 쓸 때도 정성을 다 했겠구나 한눈에 알 수 있다.
또박또박 적어 가독성을 높이려는 목적일 텐데, 내용보다 정갈한 글씨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명필로 학문에 전념했을 거라고 예상했다면 빗나갔다. 손으로 먹고 산 것은 맞는데 구멍가게를 하다가 버스, 택시 드라이버로 운전대를 열심히 잡았다. 그의 부지런한 손이 가족을 먹여 살린 것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