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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Oct 24. 2023

2.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서

탈북민의 일상 이야기


"교통카드는 어떻게 충전해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선생님에게 여러 번 물었다. 한국 정착을 위한 실습수업에서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고 지하철 타는 방법을 배웠는데 온라인이나 편의점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할 수 있다는 혼란스러운 설명을 듣고 선생님께 교통카드 충전 방법에 대해 다시 질문을 했었다. 당시에 인터넷 사용 방법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온오프라인을 포함한 여러 방법으로 카드에 돈을 충전할 수 있다는 말이 무척이나 낯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정착한 지 7, 8년이 된 지금은 무의식적으로도 교통카드를 충전하고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탈북민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새롭게 생각하고 배워야 하는 과정들이 있다. 외래어를 배우며 어투를 바꾸고, 스마트폰을 개통하고 이메일을 만들어 필요한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며, 지인과 인터넷,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기본 상식이나 생활양식을 배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방향을 정하고 진로를 선택한다. 혼자로 시작해서 둘이 되고 여럿이 된다. 맨몸에 새로운 곳에 도착해 살아갈 곳을 선택하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얻으면서 생활을 꾸려간다. 눈앞에 닥친 것만 보다가 점점 더 넓은 세상으로 시선을 옮긴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든 모두가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있던 곳에서는 이미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였지만 갓 태어난 아기처럼 태내에서의 생존방식은 잊고 새로운 세상 속에서의 삶의 방식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의 삶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온 탈북민들은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탈북민은 마치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 서 있는 것과 같다. 과거와 현재를 안고 도전과 성장의 여정 가운데 있다. 그림자 속에서 여러 어려움과 도전을 통해 성숙해지면서 빛을 더욱 얻게 되고, 그렇게 점차 밝은 곳으로 향한다. 때로는 그림자 속으로, 때로는 빛 속으로 치우쳐 경계를 넘나들면서 조화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뒤바뀐 환경에서 불안과 외로움을 경험하고 예전과는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경험과 추억을 쌓고 가족과 친구를 만든다. 과거와 현재의 갈등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수용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이어간다. 기대를 억누르기도 하면서 현실을 살고 있다. 언어와 문화, 관습의 차이로 인한 여러 도전과 어려움을 겪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현실적으로 안정되고 발전하는 미래를 향한다. 


북한에서 탈출해 한국에 온 사람들을 부르는 말은 다양하다. 시대에 따라 귀순자나 귀순 용사,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새터민 등의 용어로 부르는 방법이 달라진다. 요즘은 공식적으로 "북한이탈주민" 혹은 줄여서 "탈북민"으로 부르며 일상에서는 더 다양하게 부른다. 탈북민 자신도 자신에게 더욱 편하고 익숙한 용어로 서로 다르게 자신을 칭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자신을 새터민이라고 부르고, 또 다른 사람은 탈북민이나 북향민, 이방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타인들의 "어디서 왔어요?"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법으로 정의되고 사회가 부여했으며 자신이 선택한 정체성을 표현할지, 감출지 선택한다. 차별이나 특별대우가 두려워 숨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당당하게 드러내기도 하면서 사회 일원으로 적응해 간다.


요즘의 나는 나 자신을 탈북민 혹은 새터민으로 타인에게 소개한다. 사실 어떤 용어로도 자신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존하는 용어 중 나에게 가장 익숙하기에 선택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수식어를 추가하거나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여 나를 소개한다. 나의 소개는 계속해서 바뀐다. 마음가짐의 변화에 따라, 시간과 상황에 따라, 혹은 만나는 사람에 따라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은 변화한다. 변화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도록 하고 다양한 상황에 적응하도록 한다. 이러한 능력은 자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더 밝은 곳으로 발전하게 한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영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통해 성장하고 또 다른 변화를 끌어낸다. 


북한에서 온 후 한국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만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빛과 그림자의 경험 연속을 통해 여러 어려움과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한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소중히 하고 주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이야기 속에, 우리의 관계 속에 다양한 모습의 빛과 그림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빛과 그림자는 우리 삶에 없어서도 안 되고, 어디에도 있으며, 피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빛과 그림자의 상황 속에서 조화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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