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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슬영 Dec 21. 2022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을까2

-첫 책 <경성 무대 스타 올빼미>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MBC창작동화대상 수상 소식을 듣고 많은 선배 작가님들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진짜 시작이네~."

덜컥 겁이 났다. 여기까지 죽을 만큼 해서 왔는데, 또 얼마나 죽을 만큼 가야 하는 걸까.

한편으로는 설렜다. 정말로 내 이름을 달고 책이 나올 수 있는 걸까?

수상 소식을 접하고 몇 달 뒤 시상식이 열렸다. 책도 함께 나왔다. 중편부문과 단편부문 대상작을 엮은 책이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완전한 '내 책'은 아니었던 거다. 단행본. 온전히 내가 쓴 책. 그게 갖고 싶었다.


단편을 모아서 출판사에 보내보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겁이 났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습작하면서 꽤 많은 작품을 쓴 것 같았는데 막상 투고하려고 보면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설상가상 사랑방 활동도 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마음은 급한데 글은 잘 안 써지고,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쭉쭉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몹시 답답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남과의 비교는 대체로 불행하다. 그럴 때, 결과를 재는 비교가 아니라 과정을 재는 비교를 해보면 조금 덜 불행해진다. 책 한 권을 내려고 몇 년간 자료조사를 한 작가들 이야기, 문장 하나를 고치려고 몇십 번 원고를 들여다보았다는 작가들의 이야기와 나를 비교해 봤다. 그저 고개가 숙여졌다. 나만의 발걸음을 디뎌야 했다.


다시 사랑방 모임에 나가 억지로라도 글 쓰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감효과를 노린 거다. 실제로 마감시간이 닥치면 안 나오던 글이 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나만의 마감일을 정해 놓는다. 


단편뿐 아니라 장편 연습이 필요했다. 단편과 장편은 글쓰기 방식이 확연이 달라서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쓰는 연습이 필요했다. 단편은 머릿속으로 계산한 내용, 인물, 스토리라인을 간단하게 메모하는 것만으로도 원고 쓰기가 가능했지만 장편은 달랐다. 인물설정, 관계, 각 챕터에서 다룰 이야기 등등 메모지만 몇 페이지가 넘어갔다. 플롯을 짜고 고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지난했지만 재미있었다. 단편과는 또 다른 재미였다.


순서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장편을 서너 번 써 본 뒤였던 것 같다. 

'이제 연극 이야기를 써 보자!'

단순히 아이들이 모여 연극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일제강점기의 연극은 어땠을까 생각했다. 모름지기 이야기라면 주인공이 고난을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 시절의 연극이라면 이야깃거리가 될 듯했다.


잠시 책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의 첫 장편동화 《경성 무대 스타 올빼미》의 주인공 보라는 연극배우를 꿈꾸는 아이다. '올빼미의 눈'이라는 공연을 준비 중이었는데 원치 않게 1932년의 경성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극단 '꽉 찬 달' 단원들과 공연을 하며 앙숙 같았던 꽃님이와 우정을 나누고 현재로 돌아온다. 물론 일제강점기가 배경인 만큼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자료조사-시놉-합평-초고-합평-퇴고, 퇴고, 퇴고... 의 과정을 거친 원고를 모 출판사 공모전에 보냈다. 최종에서 미끄러졌다. 속이 쓰렸지만 감사하기도 했다. 연극이야기인 만큼 애정이 각별했는데 최종까지 갔다는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다른 출판사 공모전에 또 투고를 해볼까 생각하다가 '서울문화재단 예술가지원 첫 책 지원' 부문에 지원서와 원고를 제출했다.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통해 검증을 받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서울문화재단 선정작이라면 출판사들 쪽에서도 좀 더 관심 있게 보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고를 보내놓고 나면 보통 2~3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대부분의 공모전, 지원서 제출이 그렇다. 그 시간 동안 잊었다가 두근거렸다가를 반복한다. '제발 뽑아주세요!' 기도를 하다가 '아... 왠지 안 될 것 같아...' 실망했다가 이번에도 예지몽을 꾸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가 뿌옇기만 한 지난밤 꿈속을 생각하며 실망하기를 여러 번, 이젠 나도 모르겠다 마음을 접고 있을 때 선정 발표를 확인했다. 선정작 가운데 내 작품과 내 이름이 있는 걸 보고 "우왁!" 소리쳤다. 그날은 집이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방방 뛰었던 기억이다.  


서울문화재단이나 아르코창작지원에 선정되더라도 출판사를 연결시켜 주지는 않는다. 그저 작가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이고 출판은 작가가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 간혹 자신과 맞는 출판사를 찾지 못해 출간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 다행스럽게도 선정이 된 해에 바로 출간 계약을 할 수 있었고 이듬해에 책이 나왔다.


처음은 애틋하다. 첫사랑, 첫 집, 첫 책...

사랑스럽고 좋은 것만큼 미안하고 안쓰럽다. 좀 더 잘해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좀 더 잘해줬어야 하는데... 같은 후회나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인가 보다. 시간을 다시 돌린다 해도 그보다 더 잘할 수 없을 텐데도 말이다.

또한 처음은 고맙다. 그 처음 덕분에 다음이 있으니까. 

고마워, 나의 '경성 무대 스타 올빼미'!


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뿐이란다.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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