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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슬영 Nov 05. 2022

너와 나의 거리 빵 미터 - 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이기 뭐꼬?”

  현구가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우리는 산길 가운데 쭈그리고 앉아 흙을 파기 시작했다. 조금 있자니 둥글둥글하고 오동통한 것이 제 모습을 다 드러냈다. 단단한 돌 인형이었다. 아니, 돌처럼 보이는 흙 인형이었다. 누나가 저번에 가져온 고양이 인형이랑 느낌이 비슷했다. 조소과에 다니는 누나는 재미 삼아 만들었다며 종종 자그마한 흙 인형들을 가져다준다. 물론 누나가 만든 흙 인형들은 알록달록 예쁘다. 그런데 이건 진한 흙빛에 딱 봐도 오래된 것처럼 군데군데 긁힌 자국이 있었다. 한 15센티쯤 될까? 있는 대로 손을 쫙 펴도 한 뼘이 조금 넘는 크기였다. 얼굴은 동그랗고 가슴이 둥실하게 큰데다 엉덩이도 불룩한 것이 어찌 봐도 남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표정은 꼭 부처 같았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서 입꼬리를 슬쩍 올려 웃는 모양이 예전에 누나랑 가 봤던 절에 있는 부처님 얼굴이랑 닮았다.

  “에이, 별거 아이네. 나올라면 억수로 비싼 장난감이나 나올 것이지.”

  현구가 아쉽다는 듯 손바닥을 탈탈 털었다. 실망하는 현구를 보니 또 장난기가 발동했다.

  “빠앙, 이거는 보물이다, 보물!”

  “그런 돌 같은 기 뭐가 보물이고?”

  “니는 영화도 안 봤나? 이래 산속에서 아주 옛날에 만든 보물이 나오고 막 그카는 기다. 그카고 이런 거는 ‘토우’라 카는 기다.”

  “토우? 그게 뭔데?”

  “옛날 사람들이 흙으로 쪼물딱쪼물딱 만들어가 억수로 뜨거운 불에 구버서 만든 인형. 우리 누야가 학교에서 이런 거 공부하고 만들어서 내가 쫌 안다. 이거는 분명히 억수로 오래된 보물이다!”

  “치, 그걸 니가 우예 아노? 여기 놀러 온 사람이 실수로 떨어뜨렸을 수도 있다 아이가.”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가끔 섬으로 대학생 누나, 형들이 여행을 오기도 하니까. 그래도 왠지 보물이었으면 했다. 누가 잃어버린 물건보다는 보물이 훨씬 멋지니까. 뒷말을 어떻게 이어야 하나 머리를 굴리는데 갑자기 현구가 달려들어 내 바지 주머니를 뒤적뒤적했다.

  “그카지 말고 초콜릿이나 먹자, 응? 치국아, 응?”

  콧소리까지 섞어 가며 말하니 더 못 봐줄 지경이었다. 난 토우를 들고 얼른 일어났다.

  “이래 위대한 보물도 몰라보는 사람이 11년째 내 베프라니,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난 이만. 빵, 잘 가라.”

  토우를 들고 너럭바위를 향해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씩씩대는 현구의 숨소리가 들렸다. 저러다 정말 울지도 모른다. 현구는 초콜릿 앞에만 서면 여섯 살 꼬마가 된다.

  “알았다 알았다. 고마해라. 줄 테니까 얼른 오기나 해라.”

  그제야 현구는 환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너럭바위 위에 앉았다. 저 아래로 오랜만에 고기잡이를 나온 통통배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현구 아빠도 있을 거다. 예전 우리 아빠처럼. 나는 초콜릿 하나를 똑 떼었다.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노?”

  “어? 음…… 세 시간?”

  “그래? 그카믄 하나는 먹어도 되겠다. 니, 이따 저녁 먹기 전에 엄마한테 꼭 말해라, 초콜릿 하나 먹었다꼬. 치국이가 줘서 어쩔 수 없이 먹었다꼬, 알겠나?”

  “응응.”

  현구는 고개를 끄덕대더니 세상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초콜릿 한 조각을 혓바닥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오물거렸다.

  “그래 좋나?”

  “으으.”

  현구는 대충 대답하고는 입안 가득 뱅뱅 돌리고 있던 침을 꿀떡 삼켰다.

  “이야, 이제 쫌 살꺼 같네! 아무 때나 못 먹으니까 더 아무 때나 막 먹고 싶고 그칸다. 웃기제?”

  배를 쓱쓱 문지르며 웃는 현구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다.

  “니, 여서 계속 살면 안 되는 거지?”

  내 물음에 현구는 콧김을 한 번 훅 내뱉기만 했다. 내일이 현구가 이사 가는 날이다.





* 위 사진은 김진희 작가님의 토우 <꿈꾸는 소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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