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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이 Nov 07. 2022

3. 코드블루

 <가누기 : 365일 24시간>

 코드블루    


 우리 엄마는 아빠가 죽은 지 13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그때 엄마가 아빠 사업하는 거 말리고 몸 관리시켜줬다면, 너희 아빠 지금 살아있었을까?” 아쉬움 때문인지 아빠가 보고 싶어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아빠의 기일이면 연례행사처럼 이 말을 하고는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또 매번 이렇게 말한다. “엄마, 아무도 죽음은 예측할 수 없어.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어. 모두가 자신의 운명이 있는 거야.”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누구도 그 환자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했다. 환자도 보호자도 의료진도 그리고 담당 간호사였던 나도. 


 “코드 블루 띄워주세요!”


 어느 때보다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병원에 근무한 이래로 제일 격양된 목소리였다고 생각한다. 경구약을 주려고 병실 라운딩을 도는데 한 환자가 보이지 않았다. 두 시간 전, 바이탈 상태를 확인했을 때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자주 혼자 편의점에 가 라면을 먹던 환자라 자리에 없는 게 익숙했지만, 왠지 느낌이 싸했다. 그날따라 잠을 못 자겠다며 소리친 환자도 없었고, 섬망으로 인해 집에 보내 달라며 떼쓰는 환자도 없었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조용했다. 그래서였을까? 무언가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나는 홀린 듯 배선실과 휴게실을 돌며 환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환자는 보이지 않았다. 야외 정원까지 가봐도 없어 ‘원내 방송할까?’ 고민하는 순간, 불 켜진 샤워실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 문고리를 돌려봤지만 잠겨있었고, 귀를 대보니 물소리는 들리지 않아 나는 두려워졌다. 다급히 주머니 속 있던 가위를 꺼내 미친 듯 문고리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제발 환자가 안에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딸깍, 문이 열리는 동시에 크게 소리쳤다. “코드 블루 띄워주세요!” 나의 외침에 동료 간호사들은 물론 퇴근하려던 인턴들까지 모두 달려왔다. 그들도 샤워실 안에 상황을 보곤 놀란 듯 보였다. 환자는 나체 상태였고, 이미 심정지가 온 지 오래되어 청색증까지 와 있었다.


 “도와주세요!”


 내 말에 모두 아차 싶었는지 그제야 환자를 침상에 옮기고 심장 마사지를 시작했다. 심장을 뛰게 할 약물을 주입하고, 주치의가 기도 확보를 위해 기관 삽관까지 했지만, 환자의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 환자는 죽었다. 검사상에서도 딱히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6인실 환자 중에서도 제일 건강한 환자였는데. 영안실로 내려가기 전 환자의 짐을 정리하러 온 배우자가 눈물을 닦으며 내게 물었다.


 “제가 옆에 있었으면, 남편이 죽지 않았을까요?”

 “보호자 탓이 아니에요. 여기선 아무도 죽음을 예측할 수 없어요.”


 나 역시 여러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혼자 케어가 가능한 환자였지만 보호자가 그날 면회를 왔더라면, 환자가 죽기 전 누군가 샤워실에서 사람이 안 나온다고 평소처럼 컴플레인이라도 해줬으면 그는 살 수 있었을까? 고민해 봤지만, 내 대답은 아니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죽음이 인간의 영역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단순 미열로 입원한 환자가 입원 전 실시한 기본 검사에서 심장마비 전조증상을 발견해 빠른 스텐트 시술로 위급상황에서 벗어난 적도 있고, 폐암 초기라 수술 잘 마치고 회복해 퇴원할 환자였는데, 밥을 먹다가 음식물이 기도에 걸려 갑작스럽게 사망한 환자도 있다. 가끔은 신이 그들이 필요해 데려간 건가? 싶은 정도로 이해 불가한 죽음이 병원엔 많다.


 환자의 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가보니 침상엔 먹다 남은 빵과 아직 물도 붓지 않은 컵라면이 뚜껑이 반쯤 열린 채 있었다. 아마 환자도 제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환자가 먹지 못한 컵라면을 치우며 생각한다.


죽음이란 건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에 어떤 죽음 앞에서도 허무해지지 않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간호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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