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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 Nov 12. 2023

글과 기도는 우리를 구원한다





 시럽이 들어가지 않은 새카만 커피와 커스터드 크림이 겹겹이 발라진 케이크를 포크로 조심스레 떠먹으며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무작정 활자들을 적어 내려간 적은 많지만 그렇게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쓰고 싶어서? 너무 단순하다.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뭐,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소재를 떠올리거나 영감이 찾아오면 급하게 메모장을 켜 두서없이 키패드를 두드리는 모습은 스스로가꽤 만족스럽기도 하니까. 아, 케이크를 우물거리다가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적고 보니 새로 작업할 소설의 첫 문장으로도 괜찮을 거 같다.

‘무명(無名)은 케이크를 우물거리다가 안쪽 여린 살을 깨물었다. 틈새 사이로 피가 맺혀 입 안에 굴러다니는 것들은 금세 비릿한 맛이 되었다.’

만족스러운 문장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또 나의 사유는 삼천포로 빠지고 되돌아오기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결론을 내야겠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마우스 커서가 너무 오랫동안 깜빡거렸다.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질문을 바꿔서 접근하는 게 나을 듯싶다. 나는 어떨 때 글을 썼는가. 언제 글 쓰는 것을 하루도 멈추지 않았지. 몸을 뒤로 젖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떠오르는 것은 2021년 5월.스물셋의 여름. 내가 가장 괴로웠고, 밥을 먹고 잠이 드는 게 역겨워서 뜬눈으로 지새웠던 수많은 새벽. 무탈하고 안온하게 살아왔던 모든 22년이 부정당한것 같아 몸부림치던, 그러나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그때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순식간이었다. 아빠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버리게 된 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14일이 지나면 금방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독한 항생제를 맞고 염증 수치가 떨어지면 바로 퇴원할 거라고. 그러나 아빠는 입원한 지 사흘이 되던 날 의식을 찾을 수 없었고 코를 찌르는 알코올 향이 맴도는 회색빛 중환자실에서나오지 못했다. 여전히 그때 아빠의 정신적 공백은 나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햇살이 눈부시게 스며들었던 거실 한 가운데서 엄마와 나는 두 손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학비를 마련하기 힘들어지면 졸업을 못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퇴하든 고졸로 남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걱정되는 건 우리였다. 아빠가 없는 날이 정말로 오게 되면 남겨질 우리들. 온 세상이 초록을 머금고 강렬한 빛에 반사돼 모든 존재가 반짝거리는데 나는 메말라갔고 심장은 버석했다.

문밖을 나서면 5월은 무채색이었다.

빛 따위는 없었다.


 입 안에 음식을 집어넣는 게 죄스러웠다. 잠이 쏟아져 눈이 감기면 5분도 못가 번쩍 눈을 떴다. 제 아비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허우적거리는데 나는 살겠다고 본능적으로 먹고 자려고 한다는 것이 인간이 할 짓인가 죄책감에 휩싸였다. 화장실에서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마주했다. 죽은 것 같았다. 껍데기만 겨우 붙어있고 영혼은 빠져나간 생체. 옅게 웃어보았다. 그러나 눈은 삽시간에 충혈됐다. 눈물이 고였다. 입 모양으로 내게 읊조렸다.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아빠는 돌아올 거야.’

확신할 수 없다.

‘정신 차려야 해. 이러면 안 돼.’

눈을 감고 영영 깨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인간이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되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재물도 권력도 아무 소용이 없을 때. 그것들이어떠한 힘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아마 기도를 할 것이다. 감히 확신한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했다. 내가 살아오며 지었던 죄에 대해 빌었고, 아빠의 회복을 위해 빌었다. 보이지도 닿지도 않을 테지만 노트에 빽빽하게 적어 내려갔다. 달에게 빌었고, 아빠가 살뜰히 돌보던 길고양이에게 빌었고, 이미 곁을 떠난 이들에게도 빌었다. 출혈이 멈추게 해주세요. 염증 수치가 떨어지게 해주세요. 인공호흡기를 떼게 해주세요. 가족 곁으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제발 우리 아빠를 데려가지 마세요. 혹 그리로 가려고 하거든 아직 아니라고 등 떠밀어주세요. 글씨들은 눈물에 번져 제 역할을 잃기도 했지만 마르면 그 위에 다시 눌러 적었다. 암흑뿐인 방에 앉아 또 조용히 기도했다. 때때로 기도는 응답해주었다. 아빠가 의식을 찾았다. 염증 수치가 떨어졌고 인공호흡기를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가닿았구나. 아빠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나 또한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자책과 번민을 잠재우기 위해 매일 일기를 썼다. 사무칠 땐 울었고, 또다시글을 썼다. 기도했고, 밥을 먹었다. 달과 고양이와 신에게 빌었고, 잠이 들었다. 3개월을 그렇게 살았다.


 어느 날 032로 시작하는 숫자에 온 가족이 정지됐다. 병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 설마 하는 공포. 겨우 달래놓았던 위구심이 스멀스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발신했던 번호지만 수신으로 오는 병원 전화는 모두를 패닉 상태에 빠지게 했다.

‘조상태님 보호자시죠? 내일 일반 병실로 옮기시니까 보호자 분 병원에 오셔서 같이 이동하겠습니다.’ 대답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떴다. 직감했다. 좋은 소식이구나. 아빠는 3개월 만에 중환자실을 벗어나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환자의 거동과 소통이 힘들어 회복하고 퇴원할 때까지 병실에서 도와줄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엄마와 오빠는 출근을 해야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짐을 쌌다. 딸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어. 이러려고 엄마 아빠가 날 낳았나 봐. 이건 내가해야 할 일이야. 괜찮아. 병원에서 나를 두고 떠나지 못하는 엄마에게 말했다. 아빠도 나를 볼 때마다 울었다. 부모의 미안함이 오롯하게 자식에게 느껴지는건 마음이 꽤 힘든 일이다.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했다. 난 당신들이 없으면 안되니까.

이건 명백히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이었다.


 병원 생활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빠의 컨디션이 안좋은 날은 조바심이 났고, 불친절한 간호사의 대응에 상처 받고 좁은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치며 욕짓거리를 뱉기도 했다. 염증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퇴원 날이 미뤄질 땐 지쳐 쓰러지고 싶었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 보호자도 밖을 나갈 수 없었다. 한달을 넘게 병원에 갇혀 살아야했다.

그래도 나는 병실이 모조리 소등되는 저녁 9시가 되면 열리지 않는 창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퇴원이 미뤄지고, 아빠의 수치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직은 위험하니 더 좋은 시기에 떠나라고 신이 붙잡나보다. 언제나 그랬듯 기도는 또 내게 응답을 할 것이다. 저 멀리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을 바라보며 조금 부러운 눈빛으로 자리에 누웠다. 아빠의 심장 박동수와 산소포화도는 안정적이었다. 침대의 접이식 난간 사이로 아빠의 손이 빠져나왔다. 빠져나온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내일은 퇴원 여부가 결정되는 날이다.



 가끔 그때의 노트를 펼치면 얼룩지고 휘갈긴 글씨들이 나를 반겨준다. 학창 시절 깜지도 이렇게 빽빽하게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노트에 적힌 글을 보면 책상 앞에 앉아있던 물기없이 메마른 내가 보인다. 마치 다른 사람 같다. 끊임없이 나를 위로하는 문장들, 어떻게 해서든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던 흔적이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행위는 적는 것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적는 것만이 내게 남은 전부였다. 글을 쓰며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이따금 후벼파는 일. 모든 걸 잃을 상황에 놓였던 내가 이렇게 버텨낼 수 있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글은 물기 없던 나를 축축하게 만든다. 마음을 다한 기도는 분명 누군가는 듣고 있다. 글과 기도는 우리를 구원해요. 그 둘은 나를 온전히 마주하는 일이거든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그리 오래 살지 않았지만 훗날 오래 살게 되어도 이것은 변치 않을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2023년의 5월. 내일은 어느덧 어버이날이다. 내일 저녁은 내가 살게. 엄마 아빠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비싼 거 먹어도 돼? 아빠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벼룩의 간을 내먹어라. 엄마가 아빠를 다그친다. 장난스러운 다툼은 계속됐다. 아, 저 모습을 글로적어야지. 그렇게 또 구원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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