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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난 이작가 Nov 15. 2022

로보트 태권브이

01. 로보트 태권브이

등장인물 

고진옹(49세 남) - 고공농성 노동자

허수인(49세 남) - 고공농성 노동자

이윤미(43세 여) - 고진옹 아내

도근행(42세 남) – 노조원 동료

안상태(49세 남) – 국회의원 

한우근(48세 남) – 미래자동차 사장

서지만(55세 남) – 미래자동차 팀장 

홍성호(51세 남) – 고공농성 함께했던 동료     

*아래 사람들은 일인 다역 가능

경찰들 / 노조 동료들 (여직원 / 남직원)

국회의원 보좌관 / 기자          


무대     


굴뚝 위 농성 현장

 : ‘노사합의 이행하라!’ ‘노동 악법 철폐하라’ ‘한우근 대표 약속을 지켜라!’ ‘굴뚝 고공농성 ― 372일차‘ 현수막이 굴뚝 밖을 둘러싸고 걸려 있고, 굴뚝을 둘러 이들의 삶의 공간 위로 천막이 쳐져 있다. 천막 안엔 초라한 세간.     


사무실


미래자동차 사장 한우근 사무실 국회의원 안상태 사무실 고진옹 사무실

: 간단한 탁자와 의자, 특정 장소를 나타낼 수 있는 패널을 활용하여 장소 구현.     


구치소     


미래자동차 정문 앞 추모 공간                          





1     

75m 높이의 굴뚝 위고진옹과 허수인     

조명 들어오면

초라한 상 위에 소주 한 잔과 쌀이 담긴 그릇에 향이 꽂혀 있다.

허수인, 상 앞에서 두 번 절을 한다.      

고진옹은 왼손으로 빨간색 조끼 목덜미를 잡고 오른손으로 조끼의 끝자락을 잡은 후, 북쪽을 향해 조끼를 흔들면서 소리친다. 초혼을 부른다.      


고진옹    미래자동차 홍성호, 복! 복! 복!     


빨간색 조끼에 붙어 있는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 노동 3권 쟁취’라는 표어가 흐느끼듯 나부낀다.      

오른쪽에 귀신이 된 홍성호가 밝게 웃으면 예전 모습 그대로 굴뚝 위로 돌아온다.

홍성호, 고진옹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빼앗으려 하자, 고진옹 안 뺏기려 한다.     

 

고진옹    내 건데.

홍성호    난 죽었잖아.      


고진옹, 핸드폰 쥔 손에 힘이 풀린다. 

홍성호, 핸드폰을 가져가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로보트 태권V> 노래를 튼다. 

옛 만화영화 <로버트 태권V> 주제가, 바로 그 노래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 정의로 뭉친 주먹 로보트 태권 /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 / 두 팔을 곧게 앞으로 뻗어 / 적진을 향해 하늘 날으면 / 멋지다 신난다 태권브이 만만세 / 무적의 우리 친구 태권브이~~’     

홍성호, 노래에 맞춰 축지법 쓰듯 잰걸음으로 굴뚝 위를 돌아다닌다.      


홍성호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온 이상, 뭐라도 해내야지. 그러려면 열정적으로다가, 열정적으로다가 움직여야 해. 절대 지치면 안 돼. 이곳에서 축지법과 비행술 수련한다 생각해. 정의로 뭉친 주먹 로보트 태권브이처럼 (잰걸음으로 돌아다니며) 75m 상공 위에서 비행하는 거지.   

   

고진옹과 허수인, 홍성호의 모습을 그리워하듯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진옹    (울컥하며) 형님.

홍성호    뭐 하는 거야? 그렇게 앉아 있지 말고 날아다녀. 비행술을 익히라고.      


홍성호가 고진옹을 잡아끌면, 고진옹과 허수인 마지못한 듯 일어나 움직인다. 

홍성호는 나름 제법 빠르지만, 그를 따라 하는 고진옹과 허수인, 재미있고 우스꽝스럽다.  

    

홍성호    더 빨리 움직여. 더 빨리 날으라니까. (발에 맞춰 리듬을 타며 노래를 부른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 정의로 뭉친 주먹 로보트 태권 /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     


고진옹과 허수인, 탑돌이 하듯 코믹하게 굴뚝 안을 돈다.      


홍성호    이 손바닥만 한 굴뚝은 세상을 축소했다 생각해. 비행술로 덴마크 가서 치즈 사 오고, 미국 가서 햄버거 사오고. 축지법으로 한국에 돌아와 식사한다. 오늘 10시에 올라오는 식사는 햄버거일 거야. 덴마크산 치즈 끼운 미국 햄버거. (손바닥을 비비며 소년처럼 웃는다) 기다려지네.   

   

고진옹과 허수인, 걸음이 느려진다.      


고진옹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허수인    고생만 하고. 

홍성호    뭐 해? 달려. 달리라고. 달려. 가만있으면 못 버텨. 몸이 굳어.      


노래 커진다.

고진옹, 홍성호를 따라 열심히 달리다가 주저앉으면.    

  

홍성호    축지법과 비행술! 우린 로보트 태권브이처럼 세상 위를 나는 거야. 

고진옹    축지법과 비행술? (헛웃음 흘리고) 얼마나 답답했으면. 

홍성호    이제 노동운동도 시대에 맞춰 트랜디하게 해야지. 우중충하게 기타 치고 <아침이슬> 부르고. 에이, 구려! 감각적으로다가 감각적으로다가 해야지. 김 박사가 그랬지. 로보트 태권브이 완성되는 날,  지구의 평화가 완성될 수 있다! 하하하! 우리가 로보트 태권브이처럼 싸워야 우리의 평화가 완성될 수 있다! 우하하하하! 우하하하하!     


홍성호, 양팔을 벌리고 비행기처럼 날며 노래한다.     

 

홍성호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 정의로 뭉친 주먹 로보트 태권 /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     


홍성호, 악당을 물리치러 떠나는 로보트 태권브이처럼, 비행술에 능통한 것처럼 날아간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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