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y May 17. 2024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 오카다 다카시

1장. 회피형 인간의 탄생

도서관에서 꽤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책에 대한 사전 지식 없던 나의 발길을 멈출 정도면, 책 제목을 꽤 잘 정했지 않나 싶다. 신기하게도 최근 내가 관심을 가진 애착유형을 주제로 한 책이었다. 그것도 나의 애착유형인 회피형을 다루고 있었다. '1장. 회피형 인간의 탄생'까지 읽었는데,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나의 생각을 담아본다.


회피형 인간의 본질은 불안감이 강하다거나 소극적이라거나 하는 데 있지 않다. 친밀한 신뢰 관계와 그에 따른 지속적인 책임을 피하는 것이 핵심적인 특징이다. 회피형 인간은 일단 떨어져서 혼자가 되면 상대방을 마음속에서 배제해 버린다. 예컨대, 부모와 몇 년이나 만나지 못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추억도 거의 없고 무엇보다 그립다는 감정을 품는 일이 적다. 또 어린 시절이나 옛날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거나 특히 힘들었던 일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지 않는 경향도 보인다. 냉정하여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회피형 인간 중에도 방치당한 인간 유형이 있고, 부모로부터 강한 지배를 받은 유형이 있다. 후자의 경우 타인에게 의지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의존하는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 그래서 부모 밑에서 벗어나 자립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비난을 받거나 무리한 요구가 들어오지 않을까 하여 긴장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타인과 함께 있으면 어색하거나 거북함을 느끼고 만다. 부모에게 무시당하거나 부정당하면서 부모의 의사를 강요받으며 자란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는 것 자체를 꺼리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자기를 표현하는 기회를 피하다 보니 더욱더 자신의 기분이나 의사를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회피형 인간은 ‘기분을 확실히 표현해 주세요’ 라거나 ‘자신이 느낀 점을 말씀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면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이야기할 차례가 돌아오면 곧바로 말을 하지 못하거나, 주요한 시점에 침묵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평소 감정에 의해 말이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로 생각해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분이 아닌 상대방의 의도로부터 역산하여 그에 대해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표현을 선택하고 말을 짜 맞추는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과도하게 지배당한 회피형 인간은 또 다른 의미에서 책임이나 부담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저항감을 갖는다. 이들은 시키는 일만 지긋지긋하게 하며 어린 시절을 마친다. 스스로 뭔가 하려 해도 실패하면 꾸지람만 들을 뿐이므로 쓸데없는 직은 하지 않는 행동 패턴이 정착되어 있다. 그래서 새롭게 도전하는 일에 겁을 먹는 경향이 있다.


위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공감한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회피적 성향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때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자책으로 스스로를 자학하곤 했다. 나는 엄마로부터 강한 지배를 받았던 회피형 유형이다. 여기에 본래 갖고 있던 의존적 성질까지 더해져, 타인의 반응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내 세계에 나는 없고, 공허한 타인만이 가득했다. 그리하여 나는 타인에게 매력 없는 친절을 베풀며,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무례한, 이중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몸에 배어버린 일명 ‘비위 맞추기’를 시전하고 있었다. 이는 내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 나는 최근까지 내가 이런 줄도 몰랐다. 나는 나의 감정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타인으로부터 야기된 불쾌한 감정이면 더욱 그랬다. 불편한 감정을 내가 흡수함으로써 불편한 상황을 회피해 버리는 것이었다. 나 혼자 오롯이 불편과 불쾌를 감수한 인간관계는 얼마 안 가 모두 망가져버렸다. 나는 늘 자기 확신이 없었고, 타인의 반응을 살폈고, 어떤 것이든 타인이 대신 선택해 주길 바랐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주변의 눈치를 봤다. 어쩌다 내 의견이 있을 때도 상대의 반응이 내 것과 상반된다면, 내 주장을 억누르고 상대에게 휩쓸려 버렸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마다, 스스로를 내어준 것에 대해 몇 날 며칠을 곱씹고 후회했다.


나는 멍청한 편이 아니다. 하지만, 타인에게서 정답을 찾으려는 행동은 멍청했다. 이 세상에 정답이 있는 것이 얼마나 있던가?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공부가 제일 쉬운 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정답이 있기 때문이었다. 온통 애매함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답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내어줘 버린 타인들도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정답은, 내가 만든 기준들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기준에 부합하면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 정답인 것이고, 부합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나한테는 오답인 것이다. 물론 무 자르듯 모든 것을 정답과 오답으로 나눌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들은 적어도 내 삶의 이정표 정도는 되어줄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한 나만의 기준을 정립할 것, 이것이 내가 나아갈 첫걸음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성인애착유형 테스트: 공포회피형 애착유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