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와 닮아있는 너에게.
구의 증명을 읽고 네 생각이 났다.
꼭 네가 구와 닮아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담이 구를 아는 것만큼 너를 알지 못하고,
담이 구를 사랑하는 것만큼 너를 사랑하지 않지만,
또, 구가 담을 사랑하는 것만큼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음을 알고,
나는 너에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고 멍청히 굴러다니는 돌멩이일 뿐이라,
너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지만,
그냥 네 생각이 났다.
사실, 나는 항상 네 생각을 하고 있다.
여름 끝의 습하고 서늘한 그 중간의 어디쯤,
어둠이 내려앉은 밤하늘에 혼자 고고(高高) 히 떠오른 달을 보며 너를 추억한다.
땀에 젖어 말려 올라간 반곱슬의 앞머리가,
입었던 카키색의 티셔츠와 검은색의 바지가,
수줍게 건넸던 장난이,
그때의 차분하고 다정했던 눈빛이,
머리를 넘겨주었던 손가락이,
네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모든 것들이
저항 없이 내 머릿속을 맴돈다.
너는 어딘가 모르게 구와 닮아있다.
너는 네 나이 또래 남자애들의 천진함이 없었다.
너에게는 슬픔이 있었다.
오랫동안 슬퍼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는, 일상이 되어버린 슬픔이 있었다.
그 슬픔 뒤에는 좁고 축축한 이불속에서 외로움을 견뎌냈던 수많은 날들이 있을 것이고,
부모가 무책임하게 떠넘겨버린, 그래서 너를 일그러뜨린 결핍들이 있을 것이다.
담은 구의 모든 것을 알지만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저 너의 슬픈 티끌을 살짝 엿보았을 뿐이다.
오래되어 슬픔인지도 모른 채 휘둘거린 빛바랜 끝동을 보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너의 담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도 나의 구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도 아니다.
나는 너에게 닿을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으나, 나는 언제나 너에게 닿고 싶다.
담이 구를 원했던 것처럼 끈질기게 너를 갈구하다 보면, 나의 마음이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너에게로 닿아, 내가 너의 담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