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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을 간직해 준 친구

by 소풍

얼마 전 친구가 이사를 해서 집들이를 갔었다. 독신인 친구의 집은 깔끔했고 정갈했다. 방 중 하나는 방음벽을 하고 바이올린 연습 방으로 꾸며놓은 것이 특이했다.


그 방안에 작은 인형이 눈에 띄었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하는 인형들. 친구가 말했다. “네가 중학교 때 나에게 선물해 준 인형이잖아.” 나의 기억에선 서서히 지워진 그 선물을 친구는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순간 이 작은 인형을 오래 간직해 준 친구의 마음이 고마워졌다.


그러고 보니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을 다닐 때 어느 날 엄마께서 불쑥 말씀하셨다. “OO이가 고등학생 때 토요일 네 생일이라고 선물을 주려고 집으로 왔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내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돌려보냈어. 그랬더니 OO이가 울먹이며 ‘너에게 잘해주세요.’ 라며 갔다.”라고 하셨다.


한참 지나서야 듣게 된 친구의 이야기. 사춘기라 예민했을 나이에 엄마의 말을 듣고 친구가 혹시 상처를 받진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그리고 친구의 생일을 잊지 않고 멀리서 찾아와 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과 뒤늦게 알게 되어 친구에게 바로 연락하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를 만났다. 그날 이야기를 하니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야지”하셨던 엄마 말씀에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과 오래 상담을 했다고. 하지만 그 덕에 열심히 했다며 웃어 보였다. 멀리서 왔는데 나의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가야 했을 친구의 허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엄마의 말씀이 서운했을 법한데 웃어 보이는 친구에게 미안했고 고마웠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하며 웃으며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15세에 만나 50세가 된 우리.

이제 각자의 삶을 사느라 연락도 만남도 자주 못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금세 중학생 때의 추억을 소환해 내는 우리는 친구다.

35년 전 선물을 간직해 주고 상처도 추억으로 떠올리며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 이런 친구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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