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나의 간헐적 단식은 시즌 2에 접어들었다. 소리소문 없이 중간에 한번 망했다는 소리다.
이게 다 남의 운동 때문이다.
목요일 저녁, 딱 밥 먹을 시간에 탁구가 시작되었다. 제 몸 까닥하는 건 그렇게 귀찮은데 남의 운동을 보는 건 왜 그렇게 재미있으며, 왜 또 그때마다 맛있는 게 먹고 싶어지는 걸까. 한국에서 살 때도 축구를 볼 때는 치맥이나 삼겹살이 빠지지 않았다. 마침 다음 날은 남편 휴가기도 해서 불금을 불목으로 땡겨지내기로 했다.
우리나라 신유빈 선수의 승리를 기원하며 저녁 겸 반주상을 한 상 차렸다. 오늘은 어떤 경기를 보여줄까, 두 근 반 세 근 반 신나 하며 음식을 차리는 나의 모습에서 정성껏 고사상 차리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았다. 어쩌면 남의 운동을 볼 때 술과 고기를 찾는 심리는 단순히 내 입 즐겁자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팀 꼭 이기라고 고사상 차리는 마음, 그런 거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다. 돼지머리는 없어도 내가 술상에 동석하고 있으면 얼추 그림도 맞는다.
신유빈 선수의 상대는 얼굴이 파리한 일본 선수였다. 처음엔 같이 보고 있는 남편 생각도 좀 해서 '어머머?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지금 탁구칠 때가 아니라 집에 가서 누워있어야 할 것 같은데'라고, 걱정(하는 척) 했는데 그 선수는 중간에 옷 갈아입는다고 나가서 패션쇼라도 하고 온 건지 한참 뒤에 나타나서는 갑자기 포인트를 따 올라오기 시작했다. 3:0, 3:1, 3:2..... 아까까지만 해도 여유 있게 경기를 지켜보던 나는 톡-탁-톡-탁 탁구공 소리에 맞추어 나는 말없이 술을 따라 마시게 되었다.
홀-짝-홀-짝.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옆의 일본인은 '정말 재밌는 경기야!' 라며 즐거워했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도핑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우리 선수의 승리로 끝났지만 (아줌마도 눈물 났다 삐약아 ㅠㅠ) 숨 막히는 시간, 애간장 녹는 마음을 무색투명한 음료로 쓰다듬다 보니 다음 날 일어날 수가 없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속이 쓰려 공복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고 말았다.
사람의 결심에 실금이 가기 시작하면 이미 늦었다. 한번 터진 입은 멈출 줄을 몰랐고, 남편은 근 삼주만에 간헐적 단식에 실패하고 자책 중인 사람 옆에서 계속 뭘 먹자고 유혹했다. 올림픽은 절정에 다다라 금요일은 배드민턴 한일전, 다음 날은 배드민턴과 탁구 한일전, 또 그다음 날은 배드민턴과 양궁, 보고 싶은 경기도 자꾸만 추가되었고, 승리기원의 고사상 차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간헐적 단식 따윈 처음부터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낮 경기 보면서 술을 마시고, 저녁 경기 보면서 술을 마셨다. 살라미 소시지를 썰고, 치즈에 올리브 오일도 뿌리고, 닭껍질 꼬치와 족발을 굽고, 곱창도 볶고, 군만두를 데워서. 일요일에는 '월요일부터 다시 제대로 해야 하니까' 염천하의 날씨를 뚫고 고깃집까지 가 비지땀을 흘리며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근 10년 중에 가장 맛있었던 맥주와 함께.
그렇게 목금토일, 시간의 굴레를 벗어던진 나흘을 보내고 월요일이 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휘몰아치던 경기들도 조금씩 잦아들었고, 다시 자유롭지 못한 섭식패턴을 지키고 있다. 숙취 때문에 어제 저녁부터 시간을 재기 시작했으니 실질적인 공복과의 싸움은 오늘부터 다시 시작인 셈이다. 마치 불꽃축제가 끝나고, 어두워진 밤길을 터덜터덜 돌아올 때와 같은 헛헛함이 계속되고 있지만, 올림픽에서 보여준 많은 선수들의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땀방울에 자기 자신을 동기화하며 아침을 참았다. 기분 탓인지 조금 수월했다.
장기전이 될 느슨한 다이어트는 마인드가 절반이다.
사실 올림픽은 이렇게 활용했어야 했다.
아니, 사실은 올림픽을 보면서 운동을 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