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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ug 19. 2024

사랑과 얄미움, 그 사이의 족발

"오, 내일은 34도래! 좀 살 것 같겠는데?"


밤이 되면 날씨어플을 들여다보고 살만한 내일에 기대감을 품기도 했다. 그런데 내일이 되면 일기예보의 최고기온은 36도로, 오후가 되면 또 시침 뚝 떼고 38도가 되어 있었다. 마치 '속았지? 사실은 38도였지롱' 하듯.


한동안은 '에어컨 한 달 내내 튼 전기세가 온열질환 1일 입원비 5만 엔보다 싸다'를 주문처럼 되뇌며 하루종일 에어컨을 틀었다. 그런데 하루치 요금이 450엔 가까이 찍혀있는 걸 보고 나니 내 간은 다시 오그라들었다. 무작정 에어컨을 켜는 대신 목에 아이스링을 걸고, 얼음물을 들이켜고, 냉감 스프레이도 칙칙 뿌려보면서 버텨보았지만, 날 말리겠다고 작정한 여름에게는 어쩔 수 없었다. 결국엔 에어컨을 켜게 되고 말지만, 적어도 쓰러지지는 말라고 체력보충용으로 안주에 힘을 쏟아붓고 있다(?). 그래봤자 고기 자주 먹는 정도인데 얼마 전엔 마트 고기코너에서 커팅된 생족발이 눈에 띄었다.

 

마침 할인 중

오랜만에 야들야들한 콜라겐 덩어리를 씹어보고 싶다는 욕망에 바구니에 담았지만 막상 싱크대 위에 풀어놓고 보니 막막하다. I♥BBQ라 쓰여 있으니 굽는 것이 왕도일까 싶어 기름을 살짝 두른 프라이팬에 족발덩이들을 차례로 올린 뒤, 약불에 맞추고 뚜껑을 덮었다. 껍데기에 윤기가 자글자글 해졌을 무렵, 조금 떼어먹어보니 쫀득쫀득하니 괜찮길래 들어있는 소스를 그릇에 짜 상 위에 올려놓았다.


프라이팬에 구운 족발


그런데 이게 참, 어지간한 기술 없지는 먹지를 못하겠더라. 귀찮아 보이는 것엔 아예 손도 대려 하지 않는 남편의 눈빛이 동태 같아졌다. 할 수 없이 한 손엔 집게, 다른 한 손엔 가위를 들고 살점을 잘라 남편 앞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귀찮은 건 싫어도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아기새가 모이 받아먹듯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다. 사랑스럽고 애잔하다. 한편으론 기미만 하고 고기만 자르는 내게 '너도 먹어' 한마디조차 안 하고 오물오물 움직이는 고 입이 얄밉기도 하다. 애정과 짜증, 얄미움과 귀여움, 나는 종종 이 남자에게서 서로 다른 종류의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곤 한다.


친정 우리 집에서 살 때는 나도 받아먹기만 하던 사람인데 사람에게는 이렇게까지 하고 있을까. 입장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나도 우리 집에선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으라며 내 앞으로 그릇 밀어주는 귀한 자식이었는데 아이도 없는 집에서 자연스레 엄마 포지션을 내 옷처럼 입고 있는 내게 위화감을 느끼며, 다음 족발뼈를 집어서는 큰 살점을 떼어 내 그릇에 올려놓고 작은 살점을 떼어 남편에게 주었다. 러브 마이셀프. 이런 류의 불만은 애초에 쌓이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작은 거는 감질나니까 살점 떼줘."


다른 안주엔 손도 안 대고 족발 살점만 그릇에 놓는 족족 집어먹는 빠른 손과 얄미운 그 입이 말했다. '내 입은 입 아니냐? 다 너 주면 난 뭐 먹냐'라고 톡 쏘아주니 금방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 있어봐, 다음 거 큰 거 떼줄게' 풀 죽은 척하던 남편 얼굴은 다시 화색이 돌았다. 아오, 이걸 그냥. 아아, 미치코 상, 아들을 35년이나 끼고 사셨으면 내보낼 때 철이라도 좀 들려 보내지 왜 때아닌 해맑음만 들려 보냈나요. 뾰로통한 중얼거림 뒤로 육아일기 비슷했던 남편과의 일상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역시 나는 남편이 아니라 그 집 아들내미를 받아온 것이었다. 3년 아직 안 됐는데 반품 안 되나? 안되면 A/S라도. 


이런 생각을 해보는 여름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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