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희 Mar 07. 2024

이어폰이 잘못했네!

   일요일 아침 일찍 버스에 올랐다. 종점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앉는 자리는 꽉 차고 서 있는 사람이 없는 한산한 버스였다.

 나는 한참을 창 밖을 보며 멍 때리고 있는데 주변의 웅성거림이 느껴져 정신을 차렸다.  운전기사님이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았고 사람들은 저마다 혹시나 자신을 부는 건지 궁금해했다.

'혹시 나일까?'

 불안함에 버스 앞머리 한가운데에 있는 룸미러를 통해 기사님을 보았다. 기사님이 쓰고 있는 짙은 선글라스 방향이 나는 아닌듯하여 안심했다.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며 누구를 부르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계속되는 기사님의 말에

"나요? 내가 실수했나?" 하며 한 어르신이 몸을 구부정하게 일으키셨다.

"아니에요. 앉아계세요."

 기사님은 한 손으로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그 누군가를 부르기를 멈추었다.


   잠시 후 버스가 신호에 멈춘 사이, 기사님은 좁고 긴 운전석 문을 열어 "거기 빨간 잠바 입은 아줌마 요금 계산이 안 됐다고요"

 그러나 그 말에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고 사람들은 '빨간 잠바'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기사님은 목소리는 슬슬 데시벨이 올라가고 있었다. 하차를 준비하려고 서있던 남자가 기사님을 보며 손가락으로 빨간 후드 점퍼 입은 여자를 가리켰고 기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꾸부정하게 일어났던 어르신 뒷자리에 앉는 여자였다.

청년은 그 여자의 어깨를 톡톡 노크했다.  여자는 청년을 올려다보았고 청년은 "기사님이 부르시는데요" 말하며 여자와 청년의 시선은 동시에 기사님을 향했다.

"요금 처리가 안 됐다고요"

"네???"

"요금 안 냈다고요!"

"네??"

 여자는 오른쪽 귀에 손을 가져가 귀를 막고 있는 이어폰을 꺼냈다. (아마 코르크 마개가 열리듯 '퐁' 소리가 났을 수도 있겠다.)

"요금이요. 요금."

"저 요금 냈는데요?"

"찍어봐요. 동일 노선 환승이 안된다고 소리가 나면 내가 여기서 요금을 눌러줘야 카드를 찍을 수 있어요"

"내가 왜 환승이에요. 버스에서 내린 지 한 시간은 됐는데"

"안된다고 멘트가 나왔는데 그냥 들어갔잖아요. 내가 여기서 눌러줘야 요금을 찍을 수 있다니까요"

여자는 기사님 말을 들으며 다른 쪽 이어폰도 마저 귀에서 꺼냈다.

"누가 환승한대요? 기가 막히네. 나 환승 안 해요"

여자를 억울하다는 듯 말하면서도 기사님 안내에 따라 카드를 단말기에 다시 접촉했다


"처리되었습니다"


 기사님은 그제야 좁은 문을 닫고 운전을 시작하셨고 여자는 자리로 돌아가는 내내 투덜거렸다.

  아마 여자가 귀에서 이어폰을 빼는 순간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상기된 기사님의 목소리까지 당황스러운 세상을 맞이했을 것이다. 상황을 모르니 상황들이 마치 한순간에 갑자기 일어났다고 생각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니다.

 같이 있던 공간에서 차근차근 일어난 일이였다. 그 여자가 모르고 있었을 뿐.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이어폰은 현실과 단절되는 도구인가?

 귀는 이어폰으로 막고 눈은 핸드폰으로 가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앞을 똑띠 보고 다니는 나도 넘어지고 부딪힐 때가 있는데 귀 막고 눈 가리고 다니는 그들은 괜찮은가 궁금하다.

 길을 걸어 다닐 때는 앞 보고 주변 소리 잘 듣고 다니면 좋을 것 같다. 내 안전이, 내 몸이 제일 소중하니까 말이다.

무슨 일과 어떤 일은 갑자기 순식간에 일어나더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