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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기 Jan 04. 2023

3시부터 4시까지 사주 카페

흑백으로 젖어든 죽음과 컬러에 맞닿은 미래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 주인공 여자처럼  발 길이 닿은 어느 장소에서 사주를 봤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 : 1962>의 줄거리


가수 클레오는 암 진단 결과를 기다리다 문득 타로 점을 본다. 점쟁이는 불길한 결과를 알려주고 클레오는 불안에 떨며 거리로 나온다. 그녀가 타로 집 문 밖을 나설 때 컬러는 흑백으로 변화한다. 이는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소녀가 폭풍에 휩싸인 켄자스의 한 오두막에서 동화 속 ‘신비의 세계’로 진입할 때 흑백이 컬러로 전환되는 순간과 대조적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파리를 배회하는 시간의 흐름을 영화 <하이 눈>이나 <로프>처럼 실제 러닝 타임과 일치시키는 연출로 그려낸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작품이다.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흥겨운 공연에도 즐거움은 잠시 뿐,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에서 뒤틀린 해골 이미지와 같이 사망의 권세가 불쾌히 도사리고 있다. 그녀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공원을 찾는데, 휴가를 나온 어느 군인을 만나 대화하면서 심적 평안을 되찾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3시 40분부터 4시 20분까지 사주 카페


회사에 들어가는 길에 사주 카페라는 간판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일상 속 현실에서 포착하지 못했던 이미지가 왜곡된 채 부각됐다. 홀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잠시 땡땡이 치기로 결심하고 발 길이 향하는 대로 들어섰다. 대략 40분가량  전반적 사주 풀이를 들었다. 내 직업에 대해 아무 말 하지 않았음에도 ‘고지식한 성격에 남의 말을 듣지 않으니, 말 뿐인 말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과 그 에너지를 글로 써라’, ‘지금 직장에서 언젠가 평론가나 작가 또는 영화감독으로 선회도 좋은 방향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4 넘게 만난  친구에 대해서는 ‘ 좋은 여자를 만나기는 하나, 그것은    일이다라는 말도 첨언했다. 그렇다. 나는 뭐든 쉽게 바꾸지 못한다. <중경삼림>  양조위의 행주와 금성무의 파인애플 통조림처럼 말이다. 이성을 비롯해 친구  인간관계에서도 끝맺음을 용인할  없었다. ‘손절 지나치게 끔직하고, 혹독하며, 가혹한 표현이다. 그것은 내게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자,  세상 밖에 존재하는 생경한 사건으로 다가온다. 엄청난 의리파가 아니어도,   친구는 평생 친구였다. 그래서 더욱 유통기한을 받아들일  없었나보다.


영화 속 클레오는 불안에 떨며 타로 점을 보다 어느 남자를 만나 ‘죽음 충동’을 넘어서게 된다. 업무를 제끼고 3시부터 4시까지 사주카페를 방문한 나는 새로운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을까. 1년 6개월. 고통 속에서 자학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이제는 그나마 작년 보다 올해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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