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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퀴터 Jul 14. 2023

애도의 과정에 대하여

잘 때도, 잠에서 깨는 순간에도 늘 생각하고 있으니

3년 전에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내가 그 친구를 알고 지낸 시간은 반년 정도로 매우 짧았지만 그 애는 나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냐면, 그 친구를 처음 알게 되고 나서 그 애를 본받고자 ‘〇〇이처럼’이라고 다섯 글자만 띄운 사진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해놓기까지 했다.


그 애는 한 마디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도 자기를 100% 드러낼 용기가 있었다. 상대가 무섭게 생긴 아저씨든 깐깐하게 생긴 여자든 상관없었다. 그 애의 말은 늘 거침이 없었고 늘 재치가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웃길 수가 있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내가 그 애를 만난 곳은 로스쿨이었는데, 그 애는 몇십 명의 동기를 처음 만나는 술자리에서 자신을 ‘꼴페미’라고 소개했다. 첫인상이 다소 급진적이긴 했지만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그 애가 (내가 싫어하는 전형적인)일본인의 정반대의 인간상임을 느꼈고, 바로 다가가 친하게 지내자고 했다. 그 회식 바로 다음날부터 우리는 매일같이 연락하며 공부도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었다. 모든 대화가 너무 재미있었고 가치관도 비슷했다. 그런 친구를 찾았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기뻤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애가 가벼운 사고로 다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나는 다리에 깁스를 한 그 애를 위해 기숙사로 찾아가서 대신 세탁실에 다녀오고 택배도 갖다 주었다. 그리고 수술을 위해 본가로 간다는 그 애를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었다. 심각한 수술이 아니어서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친구는 의료사고로 인해 수술 직후 너무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버렸다.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갔다. 처음 뵙는 그 애의 어머니와 언니를 끌어안고 같이 엉엉 울었다. 겨우 반년 그 애를 알았던 나도 이렇게 속이 타들어가듯 아픈데 가족들은 오죽할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으면 애도의 과정에 더 오랜 시간이 든다고 한다. 당시 나의 경우 함께 애도의 과정을 겪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 애와의 공통 지인이라고 해 봐야 로스쿨 동기들이 있을 뿐이었는데, 세상을 떠난 그 친구만이 내 유일한 로스쿨 친구였다. 게다가 ‘로스쿨생’이란 1분 1초 공부할 시간이 아까운 사람들이라 사적인 대화를 걸어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들은 그 애를 몰랐다. 그리고 내가 그 애의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불편해하는 기색이 있었다. 아마 조심스럽고 어쩔 줄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러다 그 애의 언니와 연락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 혹시 괜찮다면 친구를 추억할 수 있도록 사진을 하나만 받을 수 있냐고 부탁했더니 그 애의 언니는 사진을 잔뜩 보내 주었다. 그 후 자연스럽게 그 언니와 나는 계속 그 친구에 대해 회상하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애의 언니에게 그 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실례가 아니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언니가 무척 적극적으로 대화를 걸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언니와 나는 친구와 어떤 대화를 했었는지 서로에게 공유하며 함께 웃고 울었다.


이후 나는 애도의 과정에서 떠난 이에 대해 충분히 추억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슬픔은 덮어둔다고 날아가지 않는다. 덮어두면 미칠 듯이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러니 가까운 사람을 잃고 많이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떠난 이를 언급하며 위로하는 것은 실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고마워할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떠난 이를 생각하고 있다. 잘 때도, 잠에서 깨는 순간에도, 웃을 때도, 일할 때도 늘 생각하고 있다. 상실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떠난 사람과의 추억에 대해, 현재 심경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물어봐 주는 것은 따뜻한 위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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