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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마 Aug 26. 2024

기어이 아름다움

집에서는 책을 읽을 수 없다. 도서낙하 다발구역이라서다. 어쩜 그리 책이 손에서 잘 떨어지는지 얼굴로 받아내기 일쑤다. 펼쳤다 하면 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싶으면 카페로 간다.


카페 가는 길에 동네 시장 입구에 있는 버스 정류소에서 그 할머니를 보았다. 돗자리 삼은 골판지 위에다 낡은 딸기다라이 네 개를 가지런하게 놓으셨다. 돌나물, 민들레잎, 쑥과 또 쑥이 나란히 담겨있었다. 그 앞을 지나며 짐작했다. ‘찻길 옆 어느 공터에서 뜯어다 파시는 걸 거야.’ 지금은 운전하며 그런 데서 웅크려 앉아 뭔가를 채집하는 노년의 여성을 흔하게 보는 계절이다. ‘그렇게 모아서 버스를 타고 와 여기 내리셨겠지. 내린 자리에서 바로 팔고, 손이 다 털리면 곧장 또 버스를 탈 심산이시겠지.’ 거듭 짐작은 금방 확신이 된다.


할머니가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나는 사람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어서 오세요.” 인사도 일일이 하셨다. 사람들은 아무 관심이 없었다. 하나같이 무심히 지나쳤다. 나도 그렇게 지났는데 뒷통수로 다른 대사가 들려왔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나도 몰래 볼웃음이 지어졌다.


버스정류장 바로 앞의 카페로 들어간 나는 할머니가 정면으로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사무실의 ○○○들」은 페이지를 바로 넘길 수 없는 책이었다. 몇 줄 읽고 나면 받아적고 싶은 구절이 자꾸 나타났다. 읽다 쓰고, 쓸 때마다 떠올렸다. 그런 ○○○를.. ‘암! 역시..’ 곱씹느라 눈을 들면 할머니가 보였다.


어느새 “이리 오너라.”를 연호하셨던 할머니의 입이 닫혀있었다. 지친 기색이었다. 딱했다. 지갑을 뒤져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돌나물을 샐러드에 넣어 먹으면 맛있는데 한 바구니 살까?’ 하다가 곧 도로 집어넣었다. ‘내가 뭐라고 도움을 드리나. 저게 나쁜 물건이라면 안 팔리는 게 저 분께나 이 사회에 결과적으로 더 낫다고.’ 이렇게 해석만 부풀렸다.


책은 재미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건데 아예 한 권 사야겠다.’ 마시던 말차라떼 한 잔이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한편 배가 살살 아파왔다. 그만 일어나야지. 할머니에게로 다시 시선이 갔다. 할머니 표정이 맥없다. 딸기다라이를 정리하고 골판지를 접기 시작하신다. 나는 서둘러 앉았던 카페 자리를 치우고 할머니께로 다가갔다.


“돌나물 얼마예요?”


“오천 원인데 사천 원만 주라.”


“오천 원어치니까 제값 드릴게요.” 주제넘지만 이게 오늘 이분께 행운이기를.


“그라믄 이것도 가져가라. 걍 주께.”


할머니는 돌나물 들어간 봉지에 마저 넣겠다는 듯 민들레를 손으로 검으신다.


“그건 얼만데요?”


“이천 원”


“그것도 주세요. 다른 봉지에 주세요.”


좀전에 비운 민들레 다라이가 흥건한 것이 괜히 돌나물까지 젖으면 금방 물러지겠어서 급히 말렸다. 칠천 원을 건네드리자 할머니가 앉은 자리에서 90도 앞으로 몸을 접어 깍듯한 인사를 하신다.


“고오맙습니다아!”


자본주의라면 내 뼈에 더 깊이 스며있을 터. 그 티가 너무 나지 않을까 자기 검열하는 나에게 대놓고 자본주의적인 그녀의 인사가 오히려 귀엽고 재미졌다.


“안녕히 계세요.”


“오냐.”


집에 오자마자 민들레를 볼에다 쏟아놓았다. 볼에 물이 차오르자 연분홍빛 투명한 것들이 수면에 떠올랐다. 벚꽃잎이다.


순간 할머니가 벚꽃 무리 아래에서 나물을 뜯는 모습이 그려졌다. 새소리도 들려온다. 어여쁜 목소리의 되지빠귀 소리. 노랗고 하얀 민들레 꽃들도 바닥에 흩뿌린 듯 피어있다. 할머니가 쓰신 모자의 넓은 챙 위로 꽃그늘이 진다. 바람이 불어 벚꽃잎이 흩날리면 그녀의 모자 챙에 달린 치마도 찰랑댈 테다. 나는 그려보다 또 볼웃음을 지었다.


“아름답다.” 한 마디를 입 밖에 내어본다.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집어내면 예술가랬다. 그렇다면 그 할머니는 예술가가 아닌가.


그 사이 냄비의 물이 끓어 소금 한 꼬집을 넣고 민들레를 털어 넣는다. 숨죽은 민들레를 건져 찬물에 넣고 두어 번 헹군다. 두 손으로 거머쥐어 물기를 꼭 짠다. 그릇에 양념 재료를 개고 뭉친 민들레잎을 훌훌 풀어 무친다. 조물조물. 한 닢을 집어 맛본다. 윽! 쓰다. 매우 몹시.


‘이거 먹어도 되는 걸까? 혹시 민들레와 비슷하게 생긴 독초라 먹으면 마비가 오는 건 아닐까?’


아름다운 민들레와 이름 모를 독초 사이, 예술가와 의뭉스런 할머니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찰나여서 나는 혼자 웃는다. 아름다움을 찾는 자의 마음이 이렇게 얄팍하다.


‘오늘 민들레를 잘 먹어버려야지.’


스쳐 지나갈 뻔한 아름다움을 다시 붙잡는다. 때론 결론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다. 오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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